[IMAGE&ISSUE] 로켓, ‘장식의 과학’을 쏘다
2012 / 06 / 12
<<art in culture 2012년 6월호(http://www.artinculture.kr/)>>
로켓은 실체를 알 수 없는 이미지의 과학이다. 근접할 수 없는 당대의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로켓은 대부분 이미지로만 우리에게 주어진다. 각종 IT 기구의 과잉 기능부터 사람들에게 심리적 위안을 주기 위해 고안된 가짜 테크놀로지까지, 우리는 일상에서 과학 자체가 아니라 ‘장식의 과학’을 경험한다. 로켓 또한 마찬가지이다. 명확한 용도를 알 수 없던 광명성 3호의 발사와 실패의 장면을 목도하면서, 역사적으로 우리를 경이와 공포에 빠뜨렸던 로켓 이미지의 사례를 추적해 보자.
글 | 이영준·이미지 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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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1월 28일 미국의 챌린저 우주왕복선이 이륙 73초만에 고체 연료 추진기 이상으로 폭발했다. 이 사고로 탑승한 승무원 7명 전원이 사망했고, 약 4,865억 원의 손실을 입었다.
V2와 <코야니스카치>
로켓을 인류 최초로 실용적으로 사용한 예는 나치 독일이 연합국을 공격하기 위해 1944년 만든 V2 로켓이었을 것이다. (V2는 독일어로 Vergeltungswaffe. 즉 보복무기의 약자이다.) 나치 독일은 그해 3천기의 V2 로켓을 런던과 앤트워프에 발사하여 7,250여 명의 인명을 살상했는데, 이 로켓을 만드는 도중 강제노동으로 죽은 사람은 12,000명에 달했다. V2는 타격 목표보다 더 많은 인원을 생산과정에서 희생시킨 아이러니한 로켓이었다. V2는 초음속으로 날아왔기 때문에 어디서 날아오는지 알 수 없었고, 런던 시민들은 자기 집에서 아무런 경고도 없이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히틀러가 V2 로켓에 별 관심이 없었고, 전쟁이 거의 끝날 무렵에 실전 배치됐으며 비용이 많이 들어 많은 대수가 생산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V2는 관성유도장치가 정밀하지 못해서 정확도가 떨어졌으며, V2 로켓 한 발당 대략 2명만 살상했으므로 무기로서의 효율은 극히 떨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V2 로켓은 전쟁 이후에 더 주목을 받았다. V2는 2차 대전 이후 50년간 계속된 냉전시대 핵무기 경쟁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탄의 원형이 됐다. 전쟁이 끝나자 미국은 독일에 제대로 사무소를 차려 놓고 V2의 기술을 이전하게 된다. 이때 화물열차 300대 분량의 로켓 부품과 126명의 과학자, 엔지니어들이 미국으로 건너간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사람이 이후 아폴로 11호를 달에 보낸 로켓인 새턴5를 만든 베르너 폰 브라운(Wernher von Braun)이다. 미국에 와서 이름의 발음이 워너 본 브론으로 바뀐 폰 브라운이 달 탐사의 주역이 됐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보복무기가 우주로의 꿈을 열어준 것이다.
갓프리 레지오(Godfrey Reggio)의 영화 <코야니스카치(Koyaa nisqatsi, 인디언 말로 ‘엇나간 삶’이라는 뜻)>는 현대문명의 초조한 밀도를 초조한 앵글로 잘 보여 준다. 도시의 건축물과 도로망, 교통수단들이 어지럽게 얽혀서 빠른 속도로 진행하는 영상들은 우리가 그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 놀라게 만든다.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마지막 부분이다. 피날레는 발사되어 하늘로 올라가던 로켓이 공중에서 폭발하는 장면이다. 카메라는 사방으로 흩어지는 파편들을 따라간다. 먹잇감을 쫓아 지형의 굴곡을 요리조리 따라가는 맹수처럼, 카메라의 시선은 뱅글뱅글 돌며 어지러이 추락하는 파편 하나를 끝까지 추적한다. 이 장면은 공식적인 기록영상으로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추락하는 로켓의 전체를 보여 주지 않고 오로지 파편 하나만 쫓아가고 있기 때문에 묘하게 다가온다. 마치 그 파편 하나가 폭발사고의 비극 전체를 나타낼 수 있다는 듯이 영상은 끝까지 제유적(提喩的)으로 그 파편에만 집중한다. 그 파편은 이리저리 빙빙 돌며 죽음의 춤을 추듯이, 마치 영원히 추락만 할 것 같이 끝없이 추락한다.
필립 글래스의 느리고 미니멀한 음악은 폭발사고의 비극성을 잔인할 정도로 관찰한다. 이 마지막 장면은 앞의 영상에서 보여 준 온갖 어지럽고 현란한 문명의 수단들이 닥치게 될 파국이라고 볼 수 있다. 현대문명이 이루어놓은 엇나간 삶의 궤적 끝에는 결국 추락이 기다리고 있다는 듯이 말이다. 로켓의 뾰족한 끝은 초월적 의지의 상징인 고딕성당의 첨탑 끝을 닮았다. 모양만 그런 게 아니라 끝없는 하늘을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닮았다. 그러나 로켓은 일단 추락하면 너무나 비극적이고 처참하기 때문에 화려한 겉모습 뒤에 몰락의 징조를 품고 있는 현대문명의 양면성의 화신인 것 같다. <코야니스카치>는 로켓을 주인공이자 희생물로 삼아 현대문명에 대해 경고한다. 지나친 밀도와 고도는 몰락을 가져올 수 있다고.
챌린저호와 광명성 3호
1986년 발사 도중 폭발한 우주왕복선 챌린저는 당시 레이건 대통령이 내건 ‘선생님을 우주로!’라는 정책에 따라 선발된 학교 선생님 크리스타 맥컬리프를 태우고 있었다. 발사한 후 회수해서 반복적으로 쓰는 우주왕복선의 특성상 그 발사 장면은 항상 생중계되는 것은 아니었다. 챌린저도 단 한 개의 채널에서만 생중계했기 때문에 미국에서 그 장면을 생중계로 본 사람은 많지 않다. 맥컬리프가 선생님으로 있던 뉴햄프셔의 콩코드고등학교만 아니라 전 미국의 많은 학교 교실에서 어린 학생들이 텔레비전으로 발사 장면을 보고 있었고, 그들은 그 처참한 폭발의 광경을 가장 생생하게 목격한 미국인이었다. 단, 처음에는 그것이 사고로 인한 폭발인지 로켓이 분리되는 정상적인 장면인지 구별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태의 실상이 점점 분명해졌고 엄청난 비극의 실체가 드러났다.
사실 우주 개발에서 비극적인 실패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챌린저의 비극을 두드러지게 하는 것은 처참한 사고의 순간이 미디어를 통해 증폭됐다는 점이다. 그것은 흡사 걸프전쟁 때 생포된 다국적군 포로의 겁에 질린 모습이 알자지라 방송을 통해 방영되어 비아랍권의 수많은 나라 사람들에게 테러 효과를 가져다 준 것과 비교할 수 있는, 미디어를 통한 테러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로켓도 실패했고 한국도 인도도 실패했건만 미국 로켓의 실패가 더 처참해 보이는 이유는 미디어에 그만큼 노출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챌린저의 이미지는 종이에 물이 번지듯이 점차로 번져서 비극성이라는 성분만 남게 됐다. 오늘날의 비극은 결국 영상의 비극이고 미디어의 비극이다. 그게 챌린저의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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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지난 4월 13일 발사한 광명성 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