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이 아니라 '확장'으로
2022 / 05 / 11
NFT아티스트가 말하는 NFT의 현황과 전망 / 한재열

한재열 개인전 <The Gathering, Bystanders> 전경 2021 갤러리BK 한남
저는 2021년 2월 16일 음성 기반 SNS인 ‘클럽하우스’에서 ‘비플’로 알려진 마이크 윙클만 작가가 크리스티에 내놓은 <Everydays: The First 5000 Days>의 경매 낙찰가를 청중과 함께 스포츠 경기처럼 중계하고 축하하는 방에 우연히 참여하면서 NFT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약 860억 원의 JPG…, 그 후 1년이 지났습니다. 많은 일이 있었지만 두 가지가 기억에 남습니다. 비플은 차기작으로 1분짜리 클립이 24시간 동안 매분 바뀌는 영상작품 <Human One>을 크리스티에 입찰해 357억에 판매하였습니다. 베를린의 쾨닉갤러리는 레픽 아나돌이 ‘AI 데이터 조각’으로 명명한 비디오 NFT <Nature Dreams>를, LG전자의 협찬을 받아 12개의 대형 OLED를 합친 10×10m 스크린에 상영하는 전시 <Machine Hallucinations: Nature Dreams>를 개최했습니다. 특히 아나돌의 전시는 강력한 추위와 코로나 규제에 따른 관람 인원수 제한에도 불구하고, 길게는 3시간 동안 입장을 기다린 인파가 관람했습니다. NFT 중개자로서 이 두 사건을 상징 권력의 위치 및 역할 변화를 엿볼 수 있는 대표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The Gathering, Pilgrims> 캔버스에 피그먼트 바 193.9×259.1cm 2021
내일 완전히 새로운 것이 등장하고 모든 것이 사라져도 어색하지 않은 NFT의 타임라인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여전히 ‘디지털 매터(matter)를 공식적으로 인증하고 소유할 수 있다’라는 개념입니다. 그 가능성에 기대어, 회화 외의 사진, 조각, 영상, 퍼포먼스 등 여러 형태의 미디엄으로 다양한 시도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디지털에서 할 수 있는 것, 디지털이기에 의미 있는 것, 그리고 디지털을 다시 아날로그와 연결하는 것의 필요를 느끼고 있습니다. 한편 NFT라는 새로운 세일즈 메커니즘이 등장하더라도, 전시를 통해 느린 호흡으로 세계관을 구축해 온 작가는, 때때로 카탈로그 레조네를 만드는 기분으로 스스로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보고, 작품 간 순차적인 서사의 시퀀스를 염두에 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개자와 수집가의 위치 변화
저는 작년 11월 한남동의 갤러리BK에서 열린 개인전 <The Gathering, Bystanders>에서 약 10년간 진행한 <Passersby> 연작을 일단락 짓고, 새롭게 시작하는 연작을 소개했습니다. <Passersby> 연작은 아이티 파병의 재난 경험을 시작으로, ‘지나가는 자’로 명명한 인물들의 얼굴을 잠시 응시하고, 이때 획득한 잔상을 수분 내로 드로잉해 페인팅으로 번역한 10년간의 프로젝트입니다. 처음 목격한 실존 인물의 특징을 모두 제거하고, 무너진 초상화에서 존재를 강하게 드러내기 위한 조형적 요소를 부각해 누군가가 누구라도 될 수 있는 이미지로 남기는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품고 있던 ‘조각을 통해 조형적 발전을 도모하려는’ 열망을 전시로 마무리하며, 이 프로젝트를 매듭짓는 시기가 적절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더불어, 떠나간 회화를 본떠 디지털 조각으로 다시 불러내고 확장하고 계보를 잇는 작업을 떠올렸습니다. 프로젝트의 이름은 조르주 디디-위베르만이 주목한 로마시대 박물학자 플리니우스의 저작 속에서 이미지라는 낱말의 기원이 된 ‘이마고(imago)’의 의미에서 영감을 받아, <Deathmask>로 명명했습니다. 이마고는 곤충학에서 유충이 탈피한 껍질을 의미하기도 하고, 심리학에선 이상화된 사람, 주로 부모의 이미지를 지칭합니다. 이는 어린 시절 형성돼 성인이 되어도 무의식적으로 지속됩니다. 로마시대 때는 막 세상을 뜬 인간의 얼굴을 왁스로 본떠 만든 장례용 가면을 일컫는 단어였습니다. 아이패드로 조각하고 완성한 작품은 50초 분량이며, 소리가 없는 싱글채널 비디오 파일의 형태로 ‘오픈씨’에서 NFT화했습니다. 이 연작은 지금까지 총 20점이 공개되었고 하나의 작품은 5개의 에디션을 가집니다. 지금까지 총 14개의 작품이 컬렉터에게 소장됐습니다.
단 14번의 거래에서도, 컬렉터는 국내외의 완전한 타인, 동료 작가, 저의 전시를 지켜보고 회화부터 소장해 왔던 사람, 컬렉팅을 NFT로 처음 시작하는 경우까지 다양합니다. NFT는 중개자와 수집가의 위치를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미 인스타그램에 순응하고 축소되며 변화를 맞았던 오프라인 미술시장의 공간 운영자로서, 중개자의 역할은 구매자와 생산자가 DM도 생략한 채 직접 관계를 맺는 NFT시장에서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수집가의 소장 기록은 곧 NFT 전송 기록으로 블록체인에 영구 기록되며, 소장 작품이 진열된 계정과 함께 모두가 언제나 접근 가능한 상태로 공개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일종의 소장품 전시를 대신합니다. NFT 등록과 소장 뉴스는 주로 트위터를 통해 시간을 타고 흐르는 물처럼 전파되고, 대화는 클럽하우스, 트위터, 디스코드, 단톡방에서 파편적으로 이뤄집니다. 이미 소규모 그룹이 NFT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가장 큰 플랫폼인 오픈씨의 경우에도 검열과 무단 복제에 관한 간섭은 이뤄지지만, 특유의 큐레이션 알고리즘은 인스타그램 시절과 달리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대량 업로드를 할 때 등록비에서 장점이 있는 것 외에 별다른 상징 권력이 없습니다. 오히려 50MB의 업로드 용량 제한이 아직 증량되지 않은 것이 놀랍습니다.

<Deathmask #15 – Passerby, It Was Nothing Link That, February> NFT, 5개 에디션 2022_작가가 지난 10년간 제작한 대표 연작 <Passerby>를 NFT화한 작품. 지금까지 각 5개의 에디션을 가진 20점의 작품을 공개했다.
머지않아, ‘메타마스크’에 저장된 모두의 NFT는 소셜미디어 프로필을 넘어 더 넓게 전시될 메타버스를 찾을 것입니다. 그곳은 갤러리의 모니터이거나, 뉴욕 타임스퀘어의 전광판이거나, 코엑스의 90도로 꺾인 대형 스크린일 수도 있고, 디센트럴랜드나 제페토 같은 가상 공간일 수도 있습니다. 나아가 당대 미술계, 영화계, 트리플A 게임계가 NFT 생태계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면 그 전개는 대단히 흥미로워질 것입니다.
10년 남짓한 시간 동안의 경험으로 언급할 수 있는 것은, 작가에겐 작업과 삶을 지속할 동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언제나 나와 나의 작품을 지켜보고, 가치를 발견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NFT는 이제 겨우 시작 단계이고, 지금까지의 새로운 것들처럼 의심할 여지 없이 수많은 겨울을 지날 것입니다. 또한 앞으로 더 많은 변화를 만들겠지만, 그것은 혼란이 아닌 확장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미술사를 통해 알고 있듯, 변화는 도구가 아니라 ‘도구를 다루는 사람’으로부터 탄생합니다. 동료의 건투를 빌며, 흥미로운 근미래를 기대합니다.

한재열 / 1983년 부천 출생. 수원대 서양화과 졸업. 갤러리BK 한남(2021), 국회의원회관 (2016), 부천 아트포럼리(2014), 가회동60(2013), 갤러리41(2012) 등에서 개인전 개최. <The Great Artist>(포스코미술관 2015), <코쿤>(스페이스K 과천 2014), <이종교배>(부산 오픈스페이스배 2014) 등 단체전 참여. 룩셈부르크예술상 및 포스코미술상 파이널리스트, 서울디지털대학교미술상 우수 작가상 등 수상. 화이트블럭미술관, 아트포럼리 등에서 레지던스 프로그램 참여. 현재 베를린에서 거주 및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