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채플갤러리 아카이브
화이트채플갤러리 www.whitechapelgallery.org(http://www.artwa.kr/tc/owner/entry/edit/www.whitechapelgallery.org)
19세기 영국의 전설적인 연쇄 살인마, ‘잭 더 리퍼(Jack the Ripper)’의 괴담으로 거리의 분위기가 흉흉했던 런던의 동부 지역이 지금처럼 예술가들의 창조적 에너지와 젊은이들의 트렌디한 감성으로 물들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들어서의 일이다. 이곳이 영세 산업에 종사하는 이민자와 노동계급이 모여 사는 낙후지역이라는 부정적인 사회 인식이 지배적이었던 시절, 영국 정부는 정책적 솔루션의 한 방편으로 이 중심에 화이트채플갤러리를 세웠다. 1901년 개관 이래 화이트채플갤러리는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예술을 발빠르게 소개하는 전시를 선보여 왔다. 이제는 지역 문화를 선도하고 지역 공동체와 함께 호흡하는 다양한 차원의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선구적인 미술 교육의 모델을 제시하며 명실공히 영국의 대표적인 비영리 공립 미술관으로 자리매김했다.
1939년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게르니카(Guernica)>를 영국에 처음 선보인 곳, 1956년 ‘인디펜던트 그룹(Independent Group)’을 필두로 영국 팝아트의 첫 신호탄이 된 기념비적인 전시 <이것이 내일이다(This is Tomorrow)>가 개최된 곳, 1956년과 1958년에 각각 미국추상표현주의의 대표주자 마크 로스코(Mark Rothko)와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의 첫 영국 개인전을 선보인 곳이 바로 화이트채플갤러리이다. 처음에는 지역 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작되어 지역 문화 향상이라는 계몽적 목적이 두드러졌지만, 새로운 미술을 영국으로 유입하는 진보적인 태도로 변화와 쇄신을 거듭하면서 동부 지역의 문화적 다양성과 공존하는 현대미술의 비전을 담아내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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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일 리딩룸 (Foyle Reading Room) © Gavin Jack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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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 전시 <이것이 내일이다(This is Tomorrow)>
화이트채플갤러리의 아카이브 기획 전시는 기존의 자료를 상자에서 꺼내어 연대기순으로 나열하는 단순한 형태의 디스플레이 방식을 지양하고 보다 적극적인 방식으로 아카이브에 개입하여 방치되어 있던 과거의 기록을 역동적으로 스토리텔링하는 구조를 지향한다. 또한 기존 아카이브 자료를 직접 재구성하는 경우 외에도 ‘아카이브’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 비판적인 화두를 던지는 아티스트의 작업을 선보이기도 한다. 이를 위해 전시 주제와 관련된 연구자나 아티스트를 초청하여 공동으로 전시를 기획하는 유연성을 자주 발휘한다. 아카이브 자료에 대한 이러한 접근은 현재의 관점에서 옛 이야기에 새로운 이야기를 덧입혀 아카이브의 재해석을 시도함으로써 또 하나의 새로운 아카이브 자료를 생성하는 순환적이고 개방적인 형태의 콘텐츠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과거와 현재가 만나 미래의 이야기를 써 나가는 열린 구조의 아카이브 활용법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2010년 화이트채플갤러리에서 선보인 아카이브 전시 <이것이 내일이다(This is Tomorrow)>는 1956년 개최됐던 동명의 상징적인 전시에 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보여 주는 희귀한 아카이브 자료들이 공개됐다. 여기에는 그 당시 ‘인디펜던트 그룹’ 멤버들이 직접 디자인한 12개의 홍보 포스터와 오프닝 당일의 사진, 전시 작품 사진, 홍보 자료 그리고 다큐멘터리 필름까지 포함됐다. 뿐만 아니라, 미술사가 존 폴 스토나드(John-Paul Stonard)는 이 전시의 대표 작품인 리차드 해밀턴(Richard Hamilton)의 <오늘날의 가정을 이토록 색다르고 멋지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Just what is it that makes today's homes so different, so appealing?)>에 사용된 각 콜라주 이미지들의 출처를 꼼꼼하게 추적하여 밝혀낸 리서치 결과물을 함께 전시하였고, 스페인 건축가 후안 카벨로 아리바스(Juan Cabello Arribas)가 재연한 전시장 도면들도 함께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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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슈카 마구카 <야수의 본성(The Nature of the Beast)> 전시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