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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뉴비전]파이널리스트미션작가인터뷰

2012/10/23

②작가 인터뷰 편으로 나누어

정택용 vs 강정호
타인의 고통을 향한 절대적 거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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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택용<기륭-우리가돌아가야일터292>2010

인터뷰 약속 장소인 정동의 한 카페에 내가 들어섰을 때, 정택용은 회의용 탁자가 놓인 어둑한 실내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이미 알려져 있는 인상이긴 하지만 그의 모습은 투쟁 현장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전혀 안들 정도로 차분하고 섬세했다. 처음 만나는 상대방을 향해 건네는 조심스러운 시선과 숫기 없이 나지막하게 울리는 그의 음성은 여러모로 그의 사진에서 나타나는 부드러우면서도 텅 빈 것 같은 시점과 잘 어울렸다. 정택용은 과거로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질문에 반쯤 낯을 가리면서도 익숙하게 대답해 나갔다. 언어학과를 다닐 때 시각 이미지에 관심을 가졌던 기억에서부터, 졸업 후 취업을 하였다가 강남 일대의 무표정한 직장인 행렬에 깊은 환멸을 느꼈던 일, 그리고 늦은 나이에 사진을 배우러 다시 대학에 들어갔던 경험까지 시종일관 담담하게 얘기를 풀어 나갔다. 따지고 보면 예사롭지 않은 일들이 적잖은 삶이었지만, 그는 마치 자신이 가장 평범한 삶을 살아온 듯 무심하게 자신의 인생사를 훑었다.

평탄하게 흘러가던 이야기는 기륭전자 투쟁 현장을 처음으로 접했던 시점에 이르자, 가파르게 응집되었다. 이미 다른 인터뷰를 통해 전해 들었던 대목이었지만, 새롭게 포착할 수 있는 장면이나 뉘앙스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집중해서 귀를 기울였다. 기억의 시점은 2005년이었고 지인과 함께 농성 현장을 찾은 정택용은 기륭전자의 굳게 닫힌 철문 너머에 공장 노동자들이 모여 앉은 것을 보았다. 그 때 여자아이 한 명이 나타나 철문으로 다가갔다. 이어지는 광경은 정택용의 얘기를 그대로 옮겨 본다.

“철문이 쇠창살처럼 되어 있는데 그 틈을 마주서고 한 아이가 엄마를 보러 와서 철문을 사이에 두고 만났습니다. 그 분들이 작업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게 옛날 동일방직 사건 때 사진에 찍힌 여공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어요. 그 때 사진 속에서 봤던 사람들을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이런 모습들이 2000년대 서울의 변두리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게 충격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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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택용<우리는꾸준히살아갈것이다228-쌍용자동차해고자들2>2010

이 체험은 함의가 깊다. 사실 2000년대의 공장 노동의 여건이 1970년대의 공장 노동의 여건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은 어쩌면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닐 것이다. 철문 너머에 농성을 하고 있던 공장 노동자들에게는 익숙하게 경험한 현실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줄곧 대도시에 살았던 한 사내에게는 이러한 체험이 그 사람의 일상의 지반을 무너뜨리는 충격이 될 수 있었다. 말하자면 화려하게 장식되었던 2000년대 한국 사회의 변치 않은 민낯을 본 샘인데, 이 때문에 충격을 받아 무너진 지반 아래에는 그동안 그가 제대로 대면할 기회가 없었던 비정규직 공장 노동자의 세계가 드러나 있었다. “이건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사진을) 찍다가 처음에는 좀 욕심이 있었어요. 이걸로 내 작업을 해봐야지. 그런데 곧 이런 생각은 깨졌어요. 왜냐하면 그 현장들이 급박한 경우가 많았고, 한가하게 내 작업하고 있을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낯설게 펼쳐진 세계를 처음엔 일종의 드라마틱한 소재나 ‘볼거리’로서 받아들였지만, 점차 그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심각성을 깨닫는다. 그는 해고당한 비정규직 공장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에 깊은 공감을 느끼지만, 자신이 느끼는 공감이 단지 공감하고자 하는 의지에 그칠 뿐 그들이 실제로 겪는 고통과는 아득한 거리감을 가졌다는 것을 안다. 그는 공장 노동자로서 일을 해 본 경험도, 해고를 당해 본 경험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발을 빼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들 곁에 남는다. 그들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나눌 수는 없는 외부자로서의 ‘분수’를 지키며, 조금이나마 그들의 투쟁을 돕고자 했다. 그리하여 정택용은 2005~10년 11월 기륭전자 비정규적 투쟁이 타결될 때까지 6년에 가까운 시간을 그들과 함께 하면서 그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기륭전자 투쟁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정택용은 카메라를 든 타인으로서의 자기 절제를 계속 강조했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찍는 사진이 투쟁이 진행되는 섬세한 맥락과 긴밀히 호흡하기를 원했다. 아무리 극적인 순간이라도 투쟁의 전체 맥락을 해치는 사진이 될 것 같으면 찍지 않았다. 아무리 사소한 순간이라도 투쟁의 흐름을 건강하게 북돋아 줄 수 있는 사진이 될 것 같으면 그는 찍었다. 그래서 그의 사진집이나 블로그에 나타난 사진들을 시간 순서대로 넘겨보면, 사진과 사진 사이의 풍부한 행간이 느껴지고 마치 사진 이미지로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인상을 받게 된다. 아마도 이 모든 효과는 그가 투쟁 현장 속의 인물과 풍경이라는 피사체에 대해 거리감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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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8일정동프란치스코회관카페에서이루어진강정호-정택용인터뷰장면

그런데 나는 왠지 이 거리감이 결코 근접한 거리감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것은 정택용의 블로그에 가끔씩 등장하는 인물 없는 장소를 찍은 사진에서 나타나듯 측정할 수 없이 깊은 내면적 거리감일 수도 있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카페 테이블 건너편에 앉은 정택용의 익명적이고도 고요한 모습이 지평선이나 수평선처럼 소실선과 같은 느낌을 준다고 생각했다. 그의 사진이 제공하는 표면적인 시점은 분명 특정한 시간과 장소와 인물을 가리키고 있지만, 그의 사진을 계속 넘기다 보면 으젠느 앗제의 장소 사진이나 아우구스트 잔더의 인물 사진에서 느껴지는 것과 같은 뭐라 말할 수 없이 추상적인 허망한 시선 같은 것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것은 그가 타인의 고통에 대해 느꼈던 것 같은 절대적인 거리감일 수도 있고, 서두에 언급한 블랑쇼와 같이 무한히 바깥에 있고자 하는 바람과 같은 것일 수도 있다.  


권오상 vs 김용진
일상적인 것의 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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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상<뒤엉킨480장의진술서>C-프린트혼합재료180x60x50cm2001

그동안 필자에게 권오상은 잡지 속 상품의 이미지들을 키치적인 작업 방식으로 늘어 놓고 재 이미지화 할 줄 아는 영악한 작가였으며, 입체의 영역인 조각에 현대적 재료인 사진의 평면성을 혼종시켜 개성 강한 결과물로 이끈 작가에 불과 했었다. 더불어 권오상은 그가 내놓은 ‘독특한 결과물’이 미술시장 안에서 높은 상품가치로 치환될 수 있으리라 판단한 아라리오갤러리의 관심에 포착된 운 좋은 ‘행운아’에 불과 했다. 그러나 ‘조각’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필자의 편견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권오상의 조각 작업은 기념비적인 지위를 담지 하는 전통적인 작업 방식과는 상당히 비껴나가 있었는데, 권오상으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선명했다. “존재론적으로 심오하고 아카데믹한 내용은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일상의 내용들이 내 작업의 내용이다. 자연스럽게 일상이 품고 있는 욕망의 목록은 다양한 잡지를 통해서 손쉽게 확인할 수 있으며, 작업에 있어서도 사진 이미지만큼 일상을 구성하는 사람과 사물을 직관적으로 매개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이유로 〈더 플랫〉과 〈데오도란트 타입〉 연작의 재료는 신화화가 소거된 ‘일상’의 결과물 그 자체라 할 수 있겠다.” 권오상의 이러한 진술은 지극히 상징적인 조각의 신성성으로 인해 작품을 대하는 관람객들이 좀처럼 작품과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지 못했던 관습을 흔드는 중요한 지점으로 이해되었다.

권오상의 지난 작품들을 복기하다 다시 마주한 〈뒤엉킨 480장의 진술서〉(2001)는 사진의 증명적 특질이 갖는 ‘투명성(Transparency)’과 공간을 물리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입체적 동세가 기묘하게 결합된 채 ‘어떤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물증으로 제시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샴쌍둥인지 분절된 자아의 충돌인지는 확연히 구분 되지 않지만 사진 이미지로 두른 외피로 인해 어떤 사건이 그 곳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이해하는 데 관람자들은 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그의 여러 작품 중에서 특정한 작품을 제시 했지만, 권오상이 구축해 놓은 세계에선 삶의 부조리와 권태, 갈망 등이 ‘일상’과 조응해 작품으로 나타나는 까닭에 권오상의 조각 작품들은 ‘관념의 표상’에서 내려와 ‘일상의 증거’로 귀화한다. 아서 단토가 ‘예술의 종말’을 고하게 되었던 앤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 역시 숭고한 내러티브 없이 살아가던 일상의 증거였다. 권오상의 작업이 그 재료적 물성이 갖는 특질로 인해서도 외부의 관심을 끌어 냈겠지만 정작 핵심은 그의 작업이 삶의 공감대를 편성하는 일상의 기록이었기 때문이며 일상을 표현하는 방식이 드물게도 ‘조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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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상>전전경2012아라리오갤러리

아라리오갤러리 청담에서 최근 열렸던 권오상의 개인전엔 적지 않은 그의 근황들이 있었지만 필자의 눈을 끈 작품은 무명으로 있다가 이름을 다시 호명 받은 데이비드 호크니였다. 권오상의 작업을 생각하면 어김없이 중첩되는 호크니를 권오상 자신의 작품 속에서 만난다는 것은 필자에게는 진귀한 경험이었다. 호크니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배꽃이 핀 고속도로(Pear-blossom Highway)〉(1986)는 분절된 사진 이미지를 콜라주 형식으로 표현한 풍경화 작품이다. 권오상의 이른바 ‘사진 조각’을 전개도처럼 펼쳐 놓는다면 호크니의 사진 콜라주와 상당히 유사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기에 호크니를 받아들이고 있는 권오상의 생각이 언제나 궁금했던 차였다. 이것에 관한 대답 또한 솔직하고 간결했다. “호크니는 정말 좋아하는 작가다. 그의 사진 콜라주 작업이 나의 작업을 촉발시키진 않았다 해도 사진 이미지를 이어 붙이는 나의 작업 방식에 무의식적인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호크니의 대표적인 사진 콜라주 작품으로 〈배꽃이 핀 고속도로〉를 들었지만 호크니는 풍경보다는 주로 일상의 궤적을 퍼즐처럼 직조하는 사진콜라주 작업을 주된 영역으로 수행하고 있었다. 이 지점에서 호크니에서 권오상으로 이어지는 맥락은 작업을 수행하기 위한 방법적 기술이 아니라 바로 ‘일상’에 관한 지대한 관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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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21일서교동에위치한권오상작업실에서이루어진권오상-김용진인터뷰장면

권오상의 <무제(호크니)〉(2012)의 이미지들은 실재 대상으로부터 얻어 낸 것이 아니라 인터넷이라는 디지털 공간에서 획득한 것이다. 실재하지 않는 가상의 공간에서 이미지를 호출해 내어 실재에 근접하는 아우라를 취득한 사실은 권오상에게도 독특한 경험으로 받아들여지는 듯했다. 실재의 호크니가 권오상의 이 작품을 디지털 공간에서 교신하고 발견하기를 바라는 작가의 인간적인 바람은 파편화되어 있던 일상의 원소들이 웹이라는 디지털 신경망을 통해 경계 없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전제로 한다. 데오도란트 타입의 흥미로운 진화는 권오상이 좋아한다던 이탈리아의 조각가 베르니니의 조각 작품 〈페르세포네의 겁탈〉처럼 신화적이고 장식적인 영역으로 확장하는 경향이 아니라, 작업의 주재료가 되어 온 일상의 영역을 디지털로 전환된 세계에서도 찾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필자의 마지막 질문은 스위스의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 그리고 작품에서 받은 인상에 관한 것이었다. 금속 뼈대에 찰흙을 덧붙인 후 이것을 다시 청동으로 주조하는 자코메티 작품의 미완에 가까운 거친 질감, 형체에서 형태의 무게감을 덜고자 끊임없이 부피를 제거하는 자코메티의 작업 방식에 관한 내용이었다. 권오상은 자코메티처럼 단순화 간결화의 과정을 이루면서 정제된 작품을 하고 싶다고 했다. 작가 스스로도 종국에 얻어 내야 할 궁극이라고 수긍했다. ‘가벼운 조각’을 생각하다 탄생한 〈데오도란트 타입〉과 〈더 플랫〉 연작은 기묘하게도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의식과 영혼이 부재한 채 텅 빈 실루엣만 남은 인간 군상을 떠올렸던 자코메티의 생각과 닮아 있었다. 더군다나 다섯 사람의 장정도 제대로 못 드는 커다란 조각을 바라보며 짜증을 느꼈다는 자코메티의 일화가 권오상의 ‘가벼운 조각’을 생각하는 마음과도 달라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조각가임을 증명하기 위해 시도했던 〈더 스컬프처〉 연작은 더 이상 그의 관심이 아니었다. 권오상의 재료와 자코메티의 재료가 갖는 물성이 극명하게 다르고, 자코메티의 작업이 권오상과는 달리 전통적인 조각의 모뉴먼트를 물려받고 있긴 하지만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을 물리적 심리적으로 정제하려는 두 조각가의 고민은 놀랍게도 서로 닿아 있었다. 어쩌면 이것이 권오상을 만나 여러 질문을 던지며 그 과정의 끝에서 확인하고 싶었던 한 작가의 내면의 의중이었을 것이다.

*필자 주_글의 제목은 미국의 철학자이자 미술비평가인 아서 단토(Arthur Coleman Danto)의 저서 《일상적인 것의 변용》에서 차용했다.


구동희 vs 안소연
의미의 틈새에서 이름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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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희<헬터스켈터>2012<에르메스미술상>전설치전경

작가 구동희가 인터뷰에 응했다. 작업실과 가까운 홍대 부근에서 만나자는 그의 제안에 산울림소극장을 지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극장에 자리한 카페에서 구동희를 만났다. 1990년대 중반 홍익대 교정에서 마주했던 낡은 기억마저 지워져 어색한 외마디 인사를 나누고 녹음기를 돌렸다. 인터뷰 이틀 전 에르메스미술상을 수상한 터라 대화는 거기서 출발했다.

안소연(이하 안) 에르메스미술상 전시를 보고 왔는데, 작품이 그다지 친절한 것 같지는 않았어요.

구동희(이하 구) 제가 친절한 작가는 아닌 것 같아요.(웃음) 나름 친절하려고 하는데 자꾸 엇나가는 것 같아요.
안 그래서인가요? 작품이 상당히 어렵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관람자 입장에서 잘 읽히지 않는 작품의 배후에는 뭔가 난해한 개념을 함축돼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쉽거든요.

구 작품이 꼭 읽혀야 돼요?

안 읽히고 안 읽히고 하는 근본적인 물음 보다는 오히려 구동희라는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도록 일부러 ‘방해’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더 컸다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구 그런 장치들이 조금 있는 건가? 사실 의도적으로 장치를 고안하지는 않아요. 그리고 안 읽히지가 않아요.(웃음) 되게 쉽게 읽혀요. 생산자 입장에서는 어떤 관념적인 의미에서 매뉴얼도 있는데, 그러니까 적어도 저는 작업을 할 때 이 작업을 하게 된 이유는 있어요. 왜, 이게 어떻게 형상으로 이어지는지에 대한 이유는 있거든요. 논리적인 근거는 있는데, 최종 결과물로 가는 전체에 대한 논리는 별로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그것들이 덩그러니 있으면 서로 직조되기가 쉽지는 않을 거예요.

안 이번 미디어시티서울에서 선보인 〈맥 아래서; 주문을 건다〉(2012)에서 인공 산책로를 거닐며 수맥을 찾아 헤매는 사람의 영상을 보면서, 일상에서의 경험마저도 굉장히 모호하게 제시한다고 생각했어요.

구 산책로 주변에 흐르는 물줄기를, 사실은 구청 직원 중 누군가가 수도꼭지를 틀고 잠금으로써 제어할지도 모른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제 추측이에요. 제가 작업의 소재를 찾는 과정에는 간접 경험과 직접 경험이 있는데, 이 작품의 경우 인공 산책로를 걸으며 상상했던 직접 경험에서 오는 소소한 충격에서 시작한 것이고, 〈Overloaded Echo〉(2006)같은 경우에는 간접 경험을 하다가 어떻게 그냥 우연히 제가 충격을 더 먹어 가지고 시작하게 된 작업이에요. 어떤 사회적인 커다란 문제나 화두, 그런 것 자체를 주제화하기 위해서 작업을 한 것은 아니에요. 그냥 그것을 하나의 시작점으로만 봐요. 시각적인 임팩트나 감정적인 임팩트를 얻어서 출발하는 것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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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희<맥아래서;주문을건다>HD컬러비디오,사운드2012

_ 구동희가 언급했던 2개의 영상 작업은 제목이 암시하고 있는 의미를 화면이 충실하게 담아 내지 않는다. 특히 〈Overloaded Echo〉에서는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된 원탁 주위를 침묵한 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과 그 원탁 위에서 복면을 뒤집어 쓴 채 회전하고 있는 벌거벗은 남자가 화면을 채우고 있다. 인터넷 포르노 사이트에 삽입된 알카에다에서의 한국인 인질 사건 영상을 뜻하지 않게 접한 구동희는 그 순간의 과중한(Overloaded) 충격을 작업의 출발로 삼았다. 작가의 설명이 없었다면 도저히 접근할 수조차 없는 시나리오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안 2006년 개인전 제목이 ‘Disturbance(방해)’였잖아요? 가만 보면 항상 강박적으로 의미를 벗어나려는 제스처가 느껴져요. 그러면서도 작품이나 전시 타이틀에서도 작가가 굉장히 ‘언어’에 주목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데, 어떠세요?

구 사실 그 제목을 제가 백퍼센트 자율적으로 지은 건 아니에요. 당시 저를 담당했던 갤러리 큐레이터가 제 작품에 대한 텍스트를 쓰는 과정에서, 서로 이야기를 한두 번 하고 나서 본인이 텍스트를 쓰는데 전시가 ‘방해’로 가는 게 좋겠다고 말하더라고요. 저 같은 경우, 심지어 미술 컨텍스트 안에서 누군가가 자꾸 언어를 생성을 하잖아요. 그러면 ‘아, 그런가 보다’ 해요. 그게 또 전혀 별개는 아닌 것 같아서 그냥 뒀어요.

안 그러면 작품 제목은요? 〈Zip-Run〉 (2006)의 경우만 보더라도 작품 제목이 ‘언어’가 지닌 ‘의미’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은데, 그것이 또 영상 이미지와 직결되다 보니 결과적으로는 관람자가 자꾸 무엇인가를 읽으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요?

구 작품 제목 같은 건 제가 되게 적극적으로 지었어요. 〈Zip-Run〉 같은 경우, 그때가 장마였는데 비가 굉장히 많이 내렸어요. 작업실에서 드러누워 있다가 창문 밖으로 반대편 집이 보였어요. 그런데 그게 약간 회색빛 나는 연두색인데, 페인트가 오래 돼가지고 빛바랜 연두색이 막 내리는것 같더라구요. 수채화같이…. 그 과정에서 파생된 것들을 떠올리면서 이 작업을 하게 된 것인데, 그러면서 뭐 이전의 다른 것들하고 중층적으로 엮이면서 작업이 시작인 거예요. 동음이의어같이 발음상으로 ‘집’인데, 제가 그 ‘집’에서 살았거든요. 어떻게 보면 운동 방향을 얘기하기도 해요. ‘집’이라고 발음할 때, 영어로 ‘zip’ 하면 ‘닫는다’는 뜻이에요. 또 영상에 나오는 사람의 운동 방향에 대한 짧고 명확한 표현으로 ‘zip’과 ‘run’을 함께 적었는데, 그러고 보니까 그게 사전에 없는 합성어잖아요? ‘집’은 음성학적으로 입이 닫히고, ‘런’하면 입이 열리거든요. 그래서 그게 또 사람의 운동하고 비슷하다 해서 이렇게 만든 거예요. 일부러 복잡하게 하려고 생각을 한 것은 아니고, 일종의 ‘잡생각’을 한 거예요.

안 무슨 얘기인지 알겠어요.(웃음) 사람들이 그 ‘잡생각’을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그러니까 작품만으로도 잘 따라오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구 아니요. 아니요. 전혀 아니요. 전혀….(웃음) 개별적이지만 굉장히 비슷한 것들이 있잖아요. 뭔가 굉장히 협소하게나마 묶이는 그런 것들은, ‘이게 보는 사람의 입장인가 보다’ 그래요. 그런데 그런 게 많으면 많을수록 재밌다고 생각을 해요. 그건 제가 강요할 부분은 더더욱 아니고요. 사실은 보는 관점에 대한 제어를 약간 해야 되는 것 아닌가도 고민을 해봤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언어’가 또 개입이 되는데, 그 언어를 제가 하는 순간은 이미 뭐랄까 최초에 작업을 하려고 했던 의도와는 좀 틀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왜냐면 정리가 돼버리거든요.

안 그래서 의미를 겉돌게 하는 일종의 ‘언어 놀이’를 하고 계신 거군요?

구 실제로 언어적인 장애를 일으키고 싶은 그런 충동이 있어요. 그것이 작업 안에 좀 들어가 있지 않을까? 언어 말고도 언어 이전의 무엇이 있지 않을까? 언어적으로 조직이 된 상태, ‘이것을 이렇게 해서 순서대로 쫘르륵, 이렇게 이렇게 간다’하는 것은 이미 인위적으로 머릿속에 정해진 것이거든요. 그렇게 딱 정해져 버린 게 중간에 들어오면 재미가 없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사람이 사고를 하게 되니까 저는 그것을 차단시키는 방법을 계속 찾는 것 같아요.

안 그래서 소위 ‘구동희 스타일’은 없는 것 같아요. 작품도 대게, 어느 정도 고정된 이미지가 존재하는데 구동희는 좀처럼 정의된 스타일이 없는 것 같아요. ‘구동희 스타일’이 뭘까요?

구 몰개성이요. 몰개성이 저의 개성이에요.(웃음) 저는 약간 그런 것에 대한 결벽증이 있는 것 같아요. 스타일이 될만한 것을 축적 안 하려는 게 제 의도인 것 같아요. 스타일화 되는 것 자체에 대한 약간의 구역질 같은 게 있었던 것이죠. 저는 되게 단순하게 생각을 하는데, 어떻게 보면 ‘도둑과 순경’ 같은 그런 관계인가? 그런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좀 거칠게 얘기하면 ‘게임’ 같기도 하고요. 작업으로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약간 먼 얘기인 것 같아요. 그럴수록 약간 ‘쌩 까는 게 더 옳은 전략 아닌가?’라고 한다면 저는 아니면서도 약간 쌩 까는 척 하는 연기를 좀 해야 한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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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5일산울림소극장카페에서이루어진안소연-구동희인터뷰장면

_ 인터뷰가 끝났다. 구동희와의 인터뷰는 왜 오늘날 이렇게 많은 작품들이 더 이상 읽히지 않고, 두꺼운 벽에 부딪쳐 다시 내게 돌아오는 메아리 같은가에 대한 회의에서 시작했다. 그래서 40여 년 간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공연되었던 이 난해한 무대로 구동희를 불러냈다. 애초에 ‘고도’가 등장하지 않는 이 연극의 결말처럼, 구동희는 잘 짜여진 시나리오를 들고 역설적으로 의미를 빠져나가는 게임을 즐기고 있는 듯했다. 그의 말마따나, ‘적극적으로’ 작품의 타이틀을 짓고 있지만(naming), 어느 순간 그 언어에 몰입하기를 부정하는 ‘틈새’로 의미를 숨겨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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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료]고흥군청(2024.11.01~2025.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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