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세계비엔날레대회(World Biennial Forum N°1)
2012 / 11 / 01
Shifting Gravity
역사상 첫 비엔날레는 1895년 베니스에서 개최되었다. 그로부터 117년이 지난 2012년, 매해 동시다발적으로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국제미술행사가 생기고 없어지기를 반복하는 이 시점에 비엔날레의 의미와 역할 그리고 향후 행보를 모색하는 제1회 세계비엔날레대회(World Biennial Forum N°1)(http://www.worldbiennialforum.org/)가 광주에서 열렸다. 이번 행사는 우테 메타 바우어(Ute Meta Bauer) 영국 왕립예술대학 학장과 후 한루(Hou Hanru) 오클랜드트리엔날레 큐레이터 공동 감독의 진행 아래 10월 27일부터 31일까지 진행되었다. 특히 28일과 29일에는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 컨벤션홀에서 ‘중심의 이동(Shifting Gravity)’이라는 주제로 종합 토론이 집중적으로 열렸다. 기존의 서구주도였던 미술계의 중심이 점차 아시아권으로 이동한 후 폭발적으로 성장한 비엔날레를 재조명한다는 기치아래 첫 회 행사 또한 광주에서 개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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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세계비엔날레대회(10. 27~31) 일정 중 주요회의(10. 28~29)는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 컨벤션홀에서 진행되었다.
이번 행사에는 세계적인 비엔날레 대표자 및 감독, 큐레이터가 참가하였다. 왕 후이(북경 칭화대학 창지앙 석좌교수), 니코스 파파스테르기아디스(맬버른대학교 문화커뮤니케이션대학 교수), 샹탈 무프(런던 웨스트민스터대학 교수)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런던 서펜타인갤러리 관장), 르네 블록(큐레이터/전 카셀프리데리치아눔미술관 관장), 김홍희(서울시립미술관 관장), 조나단 와킨스(이콘갤러리 디렉터), 비게 외레르(이스탄불비엔날레 감독), 헬레나 콘토바(플래시아트 발행인/프라하비엔날레 감독), 에리코 오사카(요코하마트리엔날레 감독/요코하마미술관 관장) 등 70여 명. 이외에도 국내는 물론 여러 국가에서 자발적으로 참가한 현대미술전문가 큐레이터 아티스트 등 400여 명과 일반사전예약 신청자들로 회의장이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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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의 시작을 알린 이용우 광주비엔날레재단 이사장
비엔날레대회답게 회의 공간 역시 작가의 손길이 닿아 있었다. 회의장 디자인을 맡은 최정화는 키치적인 1950년대 스타일의 만국기로 천장을 뒤덮고 본래 공간의 정면을 등지고 객석을 무대로 올렸다. 또한 참가자들은 모두 산재한 원탁에 둘러앉도록 하였으며 덮개나 안락한 의자 하나 없이 덩그러니 놓인 탁자와 플라스틱 의자를 '날것' 그 자체로 두었다. 이용우 광주비엔날레 재단 이사장은 이 자리가 불편하더라도 예술가와 늘 함께하는 사람들로서 충분히 감내할 만한 사안이라며 대회의 포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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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세계비엔날레대회의 공동감독. 왼쪽부터 후 한루(Hou Hanru), 우테 메타 바우어(Ute Meta Bauer)
회의일정은 기조발제 후 여러 비엔날레의 사례연구, 종합토론으로 이어졌다. 20여 개가 넘는 비엔날레를 압축하여 살펴보아야 했기 때문에, 각 사례 당 주어진 10여분은 해당 비엔날레를 소개하고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기에 턱 없이 부족한 잔인한 시간이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사례연구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초점을 맞추었다. 캐롤라인 터너(Caroline Turner) 아시아퍼시픽트리엔날레(Asia-Pacific Triennial, 이하 APT) 공동창립자는 현재 미술계 핫 플레이스인 아태지역을 새로이 조명하여 이루어낸 성과, 그리고 APT가 호주 브리즈번 퀸즈랜드미술관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미술관 체계를 통해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쉽고 작품 소장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비엔날레와 미술관의 긍정적인 상호작용에 대해 논하였다. 2012년 광주비엔날레 공동감독 중 한 명이기도 한 알리아 스와스티카(Alia Swastika)는 제11회 족자비엔날레(Biennale Jogja) 큐레이터로, 족자비엔날레가 지금껏 역사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적도(The Equator)국가에 초점을 두어 APT 창립취지와 같이 새로운 지역성을 모색하였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1998년 제11회 시드니비엔날레(Biennale of Sydney)는 지역 정체성이 없다는 이유로 현지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당시 예술감독을 맡았던 조나단 왓킨스(Jonathan Watkins)는 1990년대 후반 일상성과 보편성의 개념이 공론화되고 있었지만 여전히 내부에만 몰두해 있는 예술계의 경향을 타파하고자 ‘일상(Every Day)'이라는 주제를 선보였다. 그러나 일상이라는 명목 아래 작품이 야외에 지나치게 산재해 있다는 점과 비엔날레와 호주의 관계에 대한 정체성의 문제가 대두되었다.
일본 측 발제자들은 정부 주도아래 시행된 비엔날레의 사례를 보여 주었다. 요코하마트리엔날레(Yokohama Triennale)는 2004년 일본 외무성에서 'Creative City Yokohama Policy'를 발표하면서 국가적인 사업이 되었으며, 고베비엔날레(Kobe Biennale)는 1995년 고베 대지진이 발생한 지 10년째 되는 해에 문화예술도시로 발돋움하고자 탄생하였다. 특히 고베비엔날레는 2013년에 4회를 앞두고 있어 회의장에 고베시장까지 직접 얼굴을 내비치는 등 관주도 비엔날레의 적극적인 공세가 엿보였다. 한편 에리코 오사카(Eriko Osaka)는 2011년 제4회 요코하마트리엔날레가 동일본 대지진에도 불구하고 이루어 낸 기록적인 수익과 관객 수를 높이 샀지만 그 과정에 대한 경험을 구체적으로 공유하지 못해 아쉬웠다.
‘Architecture-Design-Infrastructure'라는 주제로 진행된 세 번째 발제에서는 두 도시를 접목시킨 홍콩 심천건축도시계획비엔날레 사례가 흥미로웠다. 중국 대부분의 관공서 앞에 조성된 권력과시용 광장을 소통의 장으로 변모시키기 위해 문제의식을 제기하며 출발한 점은 비엔날레가 가진 사회적 파급효과를 보여 준다. 하지만 2009년 수석큐레이터를 맡았던 우 닝(Ou Ning)은 이 비엔날레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미술관 같은 내부 공간 없이 진행되는 비엔날레의 경우는 수많은 대형설치작품을 재차 만들고 철거하는 소모적인 방식이다. 따라서 도시홍보에 주력하고 아카이브만 남겨두는 현재의 비엔날레에서 장차 지속가능한 비엔날레의 모델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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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첫째 날 사례연구가 모두 마무리 되고 마련된 특별인터뷰. 왼쪽부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 문경원, 전준호
사례연구가 끝난 후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공동 디렉터가 진행하는 특별인터뷰가 있었다. 현재 현대미술계 주요 명사들과의 인터뷰를 책으로 발간하고 있는 그는 2012 광주비엔날레 ‘눈(Noon) 예술상’을 수상한 문경원 전준호 작가와 자유로운 비공식 인터뷰 시간을 가졌다. 두 작가는 그 동안 연계 및 협업을 중심으로 진행해 온 작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지난 카셀도큐멘타에 한국 작가로서 20년 만에 초대되기도 했던 작품 <세상의 저편(El Fin Del Mundo)>과 프로젝트에 관해 설명하였다. 또한 비엔날레의 미래형을 묻는 질문에는 예술이 본래 종교 과학 철학 등을 포괄한 것처럼 현재 각 분야로 나누어진 형태가 아닌 융합적인 하나의 형태로 돌아가야 한다고 답했다. 한편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는 2009년 아트리뷰 선정 미술계파워 1위이자 지금까지 전 세계 250여 개의 전시를 기획하며 초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해 내는 정력적인 인터뷰어답게 쉴 새 없이 질문을 몰아붙여 두 작가를 당황시키기도 하였다.
첫째 날 회의 일정이 마무리되고 참가자들은 광주비엔날레를 관람하였다. 이번 행사 주최 측은 도슨트와 함께하는 전시투어 방식을 진행하려는 듯 했으나 주목해달라는 도슨트의 말이 무색하게 이 세계적 거물들은 각각 뿔뿔이 흩어져 자신의 관심사에 몰두했다. 이번 비엔날레의 수상자이기도 하고 앞선 회의에서 인터뷰를 가졌던 덕분인지 문경원 전준호 작가의 <세상의 저편(El Fin Del Mundo)>은 많은 관심을 받았다. 비엔날레 관람 후 전설적인 큐레이터인 르네 블록(René Block)은 개인적인 대담에서 “흥미로웠지만 전체적으로 집중하는 데 다소 어려움이 있어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개별 작품에 집중했다”며 이번 광주비엔날레의 핵심이자 말썽거리기도 하였던 6인 공동 감독체제를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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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머전시비엔날레(Emergency Biennale) 사례연구 발제 중인 에블린 주아노(Evelyne Jouanno)
이튿날 역시 세 차례 사례연구가 이어졌고 종합토론과 주요 인사들의 비엔날레대표자회의가 진행되었다. 네 번째 사례연구는 ‘Emergent-Alternative'라는 주제 아래 기존의 보편적인 비엔날레들과 다른 맥락을 가진 케이스가 소개되었다. “자금도 없이 체첸 전쟁 중에 기획되어 실용적인 수단이면서 강한 함축적 의미를 가진 여행가방”에 작품을 담아 복수의 공간에서 진행된 이머전시비엔날레(Emergency Biennale). 아직 국가적인 예술지원 제도조차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말 그대로 밑바닥부터 시작하여 쌓아올린 인도의 첫 비엔날레, 코치-무지리스비엔날레(Kochi-Muziris Biennale). 미술관 같은 폐쇄적인 전시 공간에서 벗어나 유목민적 정서에 따라 일종의 걸어 다니는 미술관이라는 창의적인 형태를 제시한 몽골리아대지아트비엔날레(Land Art Mongolia LAM 360°). 비효율적인 정규 학교체제보다 비정규 교육시스템의 유연한 구조를 강조하는 트빌리시트비엔날레(Tbilisi Triennial). 혼란스러운 팔레스타인 내에서 작가 칼릴 라바의 개념미술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출발한 리왁비엔날레(Riwaq Biennale)까지, 우후죽순 솟아나는 비엔날레들 속에서 다변화를 모색하는 신생비엔날레 사례가 소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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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비엔날레(Gwangju Biennale) 사례연구 발제 중인 이용우
다섯 번째 사례연구는 이번 행사의 주최가 광주임을 감안하여 특별히 한국에 중점을 두었다. 광주비엔날레와 미디어시티서울,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역시 각 행사들의 역사를 개괄하였다. 그런데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의 사회부터 시작된 한국의 발제자들이 주최국이라는 권위를 과시하며 다른 발제자들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자 진행자 우테 메타 바우어는 난감해하는 표정이 역력하였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유진상 미디어시티서울2012 전시총감독의 발제는 정부주도 비엔날레가 초래하는 문제점을 시사하며 흥미로운 논점을 제공하였다. 2000년에 광주비엔날레와 비등한 예산으로 출발한 미디어시티서울은 첫 회에 서울 전 도시에 걸쳐 진행되었지만 이후 도시정책이 변경되면서 예산이 삭감되고 공간도 서울시립미술관에 국한되었다. 또한 미디어아트가 마치 동시대미술과 어떤 경계선을 긋고 있는 것처럼 정치제도에 의해 미디어비엔날레가 탄생함에 따라 과연 그러한 설정이 옳은지에 대한 의문점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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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벤션홀 로비에는 각 사례연구 파트별로 해당 비엔날레의 도록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짧은 휴식 시간 동안에도 회의 참가자들은 회의장과 로비를 오가며 많은 정보를 주고 받았다.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은 사회 도중 앞서 발표한 몽골리아대지아트비엔날레를 언급하며 관심을 보였다. 그러자 뒤를 이은 휴식시간 동안 마크 슈미츠(Marc Schmitz) 몽골리아대지아트비엔날레 설립자는 한국 팀에게 도록을 나눠 주며 적극적인 홍보를 펼쳤다. 이는 이번 회의가 모든 참가자들에게 단순한 토론의 장을 넘어 훌륭한 마케팅 장소임을 보여 주는 단적인 예였다. 우테 메타 바우어는 쉬는 시간을 알릴 때마다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도록 권장하였는데 그런 독려가 무의미할 정도로 이미 수많은 참가자들이 명함을 주고 받으며 자신을 피력하였다. 또한 주최 측은 로비 중앙에 각 파트별 비엔날레의 홍보물과 도록을 배치하여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마지막 사례연구의 주제는 ‘Asia and its Margins’였지만 사회를 맡은 후 한루는 ‘아시아’라는 지역의 지리적 모호성을 언급하며 ‘So-called Asia and Multiple Possibilities’로 주제를 바꾸어 생각해 보자고 제안하였다. 이스탄불비엔날레(Istanbul Biennial), 미팅포인트(Meeting Points), 우랄인더스트리얼현대미술비엔날레(Ural Industrial Biennial of Contemporary Art), 샤르자비엔날레(Sharjah Biennial) 순으로 이어진 발제 중에서, 미팅포인트는 유럽 각 도시를 순회하며 개최되는 마니페스타(Manifesta)처럼 초국가적인 성격을 띠어 관심을 끌었다. 미팅포인트는 비엔날레가 항상 도시와 연관되어야만 하는지 그리고 현대미술이 과연 지역담론에 의해 형성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아랍권에서 시작하였다. 타렉 아부 엘 페투(Tarek Abou El Fetouh) 미팅포인트 감독은 비엔날레가 지역적 맥락을 내포하면 해당지역 공공제도권의 간섭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지역 정체성과 세계주의적 관점 사이 매개 역할을 강조하였다. 하지만 역시 국가나 지역정부의 지원이 부재하기 때문에 자금 확보에 어려움이 있었으며, 유럽에서 개최하였을 때 아랍 지역에서 출발한 탓에 아랍적인 색채를 기대했던 현지 분위기와 다른 성격을 보여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여론이 조성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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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모든 사례연구를 마무리하고 이어진 르네 블록(René Block)의 발제
모든 사례연구가 끝나고 종합토론에 앞서 르네 블록의 발제가 이어졌다. 그는 “비엔날레는 2년에 한번 열리는 전시라는 용어적인 정립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장소성과 연계되어 선언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장소를 위해 만들어진 글로벌한 전시이며 이런 전시에는 항상 대규모 워크숍도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의 발표는 다소 늘어지며 지루한 감도 없지 않았지만, 이제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든 르네 블록이 풀어놓은 경험들은 참가자들에게 큰 귀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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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토론에서는 비엔날레에 대한 복합적인 논의가 이어졌다.
본격적인 종합토론에서는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마니페스타형 모델, 정치적인 흐름에 휘말리지 않고 기존에 추구했던 방향성을 지켜나가야 하는 비엔날레의 기본정신, 러시아 내에서 발생하는 검열문제의 심각성 등 다양한 소재가 논의되었다. 후 한루는 회의를 매듭짓는 발언으로 다음과 같이 비엔날레의 역할에 대해 역설하였다. “비엔날레는 일회성 행사이기보다 자신만의 유산을 만들어 내는 하나의 과정이기 때문에 해당 지역 내 담론을 형성하여 다른 기관, 특히 정치 기관에 영향을 끼친다. 우연일 수도 있지만 대체로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는 비엔날레는 사회에 문제의식을 제기하며 활력을 불어 넣는다.” 결국 비엔날레는 단순히 시각적 쾌락을 위한 전시회가 아니라 모든 제반 관계자를 사회 변혁의 주체로 참여시키는 살아 있는 현장으로 기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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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로 진행된 비엔날레 대표자회의(Biennial Representatives Meeting)가 끝나고, 광주비엔날레재단은 이번 회의를 통해 세계비엔날레협회(IBAㆍInternational Biennial Association)를 창설키로 협의했다고 밝혔다.
이번 일정은 마지막 비공개 비엔날레대표자회의에서 세계비엔날레협회(IBAㆍInternational Biennial Association)를 창설하기로 결정하며 막을 내렸다. 전 세계 150여 개의 비엔날레가 겪고 있는 공통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해 앞으로 대륙별 대표자를 선정하고 준비위원회를 구성하여 협회 창설 준비에 돌입할 계획이다. ‘세계비엔날레대회’보다 ‘제1회’가 중요하다는 르네 블록의 말처럼 향후 이어질 세계비엔날레대회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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