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의 민낯
캔버라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큐레이터 댄 투아가 캔버라컨템퍼러리에서 <Paradise*>(7. 26~10. 4)전을 기획했다. ‘퍼시피카(Pasifika)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제3문화권 출신의 젊은 작가 7인을 모았다. 서구적 시선에서 바라본 태평양 섬의 낭만화를 비판했다. 필자는 식민 지배와 개발로 단절된 전통을 예술작품으로 되살린 이번 전시의 의의를 꼼꼼히 분석한다. /
끝없이 펼쳐진 에메랄드빛 바다, 해안가를 따라 늘어선 야자수. 태평양 섬은 흔히 ‘낙원’이라 불린다. 그러나 이 환상적 단어는 우리의 눈을 가린다. 태평양계 혈통의 호주인 댄 투아는 퍼시피카 디아스포라다. 그는 이번 전시 제목에 별표(*)를 붙여, 낙원의 상징성을 다시 정의했다. 전시는 태평양 섬과 주민들을 낭만화, 이상화하며 납작하게 소비해 온 인간의 이기심을 지적한다. 동시에 퍼시피카 디아스포라가 공유하는 전통의 계승과 단절, 경계를 넘나들며 새롭게 확립하는 정체성, 가시성에 대한 열망을 보여준다.
알렉산더 사스필드의 <Standing on the Paepae>(2025)는 도어 매트 25개를 전시장 바닥에 늘어놓은 설치작품이다. 마오리어로 연설자의 자리, 문지방을 뜻하는 ‘파에파에’를 현대적으로 재탄생시켰다. 마오리 국기 색을 입힌 도어 매트에는 환영의 문구가 영어와 마오리어로 적혀있다. 고향을 방문한 마오리족이 느끼는 환대의 감정을 직접 표현하면서도, 소속의 경계를 넘나들며 살아가는 디아스포라의 삶을 비춘다.
시오네 모누의 <Beaded Dreams>(2025)는 경쾌한 형식으로 통가의 전통과 퀴어 정체성을 발화한다. 구름 모양 보드에 비즈 발이 달린 작품은 플라스틱 구슬, 글리터 등 인공 소재로 제작됐다. 더는 자연의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없는 환경에서 통가의 전통 장식예술을 계승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또한 화려한 장식은 기독교가 전파되기 전까지 동성애와 젠더 다양성을 유연하게 받아들였던 폴리네시아의 사라진 전통을 반영한다.
‘별’이 가리키는 새로운 길
티비엔 앤드루스-호머랑은 태평양 제도 국가의 아픈 역사를 되살린다. 1860년대부터 호주는 남태평양 섬 주민을 데리고 강제 노동을 시켰다. 이는 ‘계약 노동’으로 포장되었지만 사실 노예제와 다를 바 없었다. 앤드루스-호머랑은 강제로 끌려가는 원주민의 모습을 푸른색 회화로 그려 축소된 역사를 냉철히 직시하게 했다. 동시에 전통 도구와 현대 물품이 뒤섞인 파푸아뉴기니의 일상을 묘사하며, 낙원이 과거에 멈춰있는 곳이 아니라 현재에도 변화하는 살아있는 공간임을 드러낸다.
티아리아 테아이와 모티머, 니콜라스 모티머, 카테리나 테아이와의 사진작품 <Fear of Flying>(2025)은 키리바시 출신 시인 테레시아 키에우에아 티와의 동명의 시에서 출발했다. 불완전한 키리바시어와 영어로 쓰인 시는 춤과 비행에 대한 두려움을 고백한다. 춤과 비행은 식민 지배로 온전히 승계되지 못한 키리바시의 전통 춤과 항해 문화를 뜻한다. 즉 이 두려움은 고유 언어와 문화를 온전히 전승받지 못한 현실에 대한 지각이다. 그러나 굳은 표정으로 날기를 연습하는 여성과 팔다리를 활짝 벌리며 춤추는 여성을 찍은 사진작업은 불완전성을 극복하고 재탄생하는 정체성을 보여준다.
그레이스 하수 들라빅의 석기는 시간을 건너 모계 조상과 공명한다. 덩굴과 야자 잎으로 감싼 토기를 땅속 구멍에 넣어 굽고, 잎의 수분에서 나온 연기가 도자마다 고유한 무늬를 남기는 파푸아뉴기니의 전통 방식으로 제작됐다.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저마다의 모습으로 태어나는 이 석기들은 여성의 몸을 상징하며, 모계로 이어지는 생명의 흐름을 담고 있다.
고유한 이야기와 복잡한 층위를 담은 작품들은 하나의 서사를 만든다. <Paradise*>라는 제목을 다시 떠올려 보자. 별표(asterisk)는 본래 작은 별을 뜻한다. 태평양 선조가 밤하늘의 별을 따라 항해했듯, 각 작품은 별이 되어 새 항로를 제시한다. 낙원이라는 단일한 이미지 뒤편의 현실과, 끊어지고 이어지며 새롭게 탄생해 온 퍼시피카 디아스포라의 유동하는 정체성을 비추는 항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