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의 요괴들 발자취_④해외 아트투어
2013 / 01 /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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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셀의 메인 전시장인 프리데릭치아눔의 외부 전경
‘2013동방의 요괴들’ 공모 기간 동안 살펴보는 ‘동방의 요괴들’ 발자취! 그 네 번째 발자국은 ④해외 아트투어. ‘동방의 요괴들’은 출범 이래로 각 년도 별 ‘동방의 요괴들’ 선정 작가를 비롯한 젊은 미술인과 유럽의 주요 아트씬을 체험했다. 2012년 제4회 ‘동방의 요괴들-유럽아트투어’는 8월 중 11일간 런던 파리 베를린 카셀을 찾아갔다. 런던에서 테이트모던의 데미안 허스트 회고전, 티노 세갈의 유니레버 시리즈, 사치갤러리의 <코리안아이>전을, 파리에서는 퐁피두센터의 게르하르트 리히터 회고전, 팔레드도쿄에서 열린 라트리엔날레를 관람했다. 베를린의 주요 갤러리와 유대인박물관, 함부르크반호프미술관, 베타니엔레지던시를 탐방하고 카셀도큐멘타까지 다녀왔다. artwa는 art in culture 2012년 9월호(http://www.artinculture.kr/content/view/970/132/)에 실린 ‘동방의 요괴들 유럽 아트 투어 리포트’를 소개한다.
Europe Art Tour Report
런던-파리-베를린-카셀, 뜨거운 안녕!
BERLIN, KASSEL
글|주지오·2012 동방의 요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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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 보이스 <The Pack> 1969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새내기 작가로서 올해는 특히 생각이 많았다. 허공에 떠다니던 모호한 생각을 붙잡아 줄 계기가 필요한 시점에, 《아트인컬처》의 ‘유럽아트투어’ 소식은 무척 반가웠다. 무더웠던 한국의 8월과 달리 가을처럼 선선한 유럽의 날씨는, 이번 여행이 확실한 전환점이 될 거라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언젠가 베를린에 가면 유대인박물관에 꼭 가보고 싶었다. 베를린장벽이 있던 자리에 세워진 이 건축물은 세계적인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의 작품으로, 날카롭고 과감한 선과 담백한 면으로만 이루어졌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건축가가 고안한 장치들이다. 건축물 자체로 상징적 메시지가 충분히 느껴졌다. 특히 2.5m 높이의 홀로코스트탑에 들어서자,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싸늘한 어둠의 공간의 천장에 있는 작은 틈새로 들어오는 외부 빛은 감탄을 자아냈다. 머리를 세게 맞은 듯 한참동안 멍했다. 사람의 심리를 흔들어 놓는 장치가 예술의 가장 근본적인 뿌리 아닐까? 이렇게 정교하고 압도적인 장치를 실제로 보는 경험은 선물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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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셀도큐멘타13 입장권
카셀도큐멘타13은 ‘유럽아트투어’의 정점이었다. 올해는 다양한 분야와 더 거대해진 규모로 축제의 성격이 강화된 느낌이 들었다. 미술 분야뿐만 아니라 과학 환경 문학 등이 한데 어우러져 관람객에게 예술로 세상을 바라보는 포괄적인 시선을 던졌다. 전시장 안내 표시와 각종 설치물은 카셀의 정취를 물씬 느끼게 해 주는 동시에, 쉼없이 전시장을 찾아 이동하면서 복잡한 생각을 곱씹을 수 있는 여백을 만들어 주었다. 나는 주로 실내 전시장을 찾아다니며 관람했다. 전시장을 의미하는 노란색 표지판을 볼 때마다 보물을 찾은 듯 기뻤다. 이번 도큐멘타는 20년 만에 한국작가가 참여했다는 점에서도 특별했는데, 실제로 작품을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특히 기차역에 설치된 양혜규 작가의 블라인드 작품이 인상 깊었다. 과감하고 엉뚱하면서도 치밀한 작가인 양혜규가 이번에는 독특한 생명체를 만들었다. 군무를 하듯 움직이는 블라인드는 근대화됐거나 아직 그렇지 못한 사회에 대한 메시지일 것이다. 블라인드의 공기를 가르며 시공간을 넘나드는 흐름은 아찔했다.
메인 전시장인 프리데릭치아눔에 있던 아이다 애플브룩의 작품도 인상 깊었다. 마치 화상을 입은 듯 일그러진 여자의 드로잉이나, 군인들의 인형 같은 얼굴, 무성영화처럼 이어지는 메마른 드로잉, 성적인 농담이 적힌 팻말, 창고 안에 쌓인 것 같은 상자들은 작가의 어릴 적 트라우마를 토대로 한 것 같았다. 전시장 곳곳에 나치정권의 희생자인 유대인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들이 많았다. 도큐멘타의 전시에 대해 호불호가 갈렸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주제를 담은 작품의 솔직한 표현이 마음에 더 와 닿았다.
전시를 모두 둘러보지 못한 점은 아쉬움이 남지만, 작품을 보며 느꼈던 에너지와 감성은 잊지 못할 것이다. 작품 이외에도 넓게 펼쳐진 공원과 호수, 자유롭게 공중을 떠다닌 노래, 건물과 하늘의 혼란스러울 정도로 멋진 색감은 정신이 몽롱해질 정도로 나를 카셀에 빠져들도록 만들었다. 5년 뒤는 또 어떤 거한 만찬이 기다리고 있을까? 짧을 수도 있고 길 수도 있는 여행이지만 확실히 나에게는 작업으로나 일상으로나 생각을 정리하는 반환점이 되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PARIS
글|정지혜·조선대학교 가구디자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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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네트 메사제 <모션/이모션> 혼합재료 가변크기 2012_라트리엔날레 출품작
나의 오랜 로망이자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열정의 도시! 하지만 파리에서의 첫 시작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았다. 너무나 큰 기대를 했던 탓일까? 영화에서나 보던 로맨틱한 파리의 모습과는 달리 거리를 가득 메운 수많은 관광객, 특히 모두의 미간을 찌푸리게 만든 그 케케묵은 냄새를 맡는 순간, 파리에 대한 나의 기대도 무너져 내렸다. 파리의 아쉬운 첫 느낌을 뒤로 한 채 우리는 퐁피두센터로 향했다.
‘이 작품을 보면 무슨 느낌이 들어요?’ 올해 ‘유럽아트투어’를 하면서 내가 스스로 가장 많이 했던 말이다. 예전엔 ‘이 작가는 무슨 의도로 이 그림을 그렸을까?’에 초점을 맞춰 전시를 관람하기 바빴다. 하지만 끝내 답을 알아내지 못하고 의문만 품은 채 집으로 돌아오곤 했었다. 그렇게 한두 번, 언제부터인가 내게 작가의 의도는 중요하지 않았다. 작품을 보는 그 순간은 작가의 의도가 아닌 내 느낌과 감정에만 충실했다.
퐁피두센터에는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회고전을 비롯해 수많은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된 작품을 하나하나 볼 때마다, 나는 일행과 서로의 생각과 느낌을 나눴다. 어떤 사람은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감동을 받고 즐거워했으며, 누군가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기도 했다. 같은 작품을 보면서 어쩜 그렇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그 안에서 나는 몰랐던 나의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작품을 관람하는 퐁피두센터 안의 모든 사람의 생각마저 궁금해졌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정신 없이 전시를 보다보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다. 퐁피두센터를 뒤로하고 라트리엔날레를 보기 위해 팔레드도쿄로 향하는 길, 실망스러웠던 파리의 첫 느낌은 아스라이 사라졌다.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모인 파리가 낭만적으로 보이기 시작했고, 나도 그 열정에 함께 스며들었다. 새롭게 공간을 확장한 팔레드도쿄의 트리엔날레도 인상 깊었다.
똑같은 작품이지만 보는 사람이 처한 상황 환경 관점 철학에 따라 서로 다른 생각과 느낌을 받는다. 꼭 작가의 의도와 같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작품은 작가가 또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 것일 뿐이지 교과서가 아니다. 정답을 찾듯이 작품을 볼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어떤 전시건 전시장을 나올 때 자신만의 느낌을 받았다면 그것이야말로 성공적인 관람이 아닐까? ‘유럽아트투어’를 다녀온 후, 간혹 주변사람들로부터 ‘미술작품은 어떻게 감상하는 거야? 난 아무리 봐도 이해가 안돼’라는 말을 듣곤 한다. ‘유럽아트투어’를 마친 지금! 이제는 의연하게 대답할 수 있다. “정답은 없어, 너가 느끼는 대로!”
LONDON
글|정희선·그림숲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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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트모던 앞에 설치된 데미안 허스트의 <Hymm>
서울에서 출국일 아침, 창밖으로 빗줄기가 흘러내렸다. 어김없이 비는 나를 따라 런던으로 갈 모양이다. 잠시 일상을 내려놓고 느리게 호흡하며 천천히 마음을 가다듬는 여행을 상상했다. 암스테르담의 석양을 지나 런던에 가까워질 즈음, 비행기 아래로 보이는 빨간 벽돌의 장난감 같은 건물과 거리를 보며 런던에 왔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런던의 첫 일정으로 테이트모던을 찾았다. 화력발전소를 개조한 거대한 미술관에 대해서는 잡지에서 읽어서 익히 알고 있었다. 언젠간 꼭 가보리라 다짐했는데, 실제로 눈앞에 미술관이 나타나자 나도 모르게 ‘우와!’라는 탄성이 흘러 나왔다. 무엇보다 데미안 허스트의 회고전을 볼 생각에 들떴다. 죽음이라는 철학적이고도 무거운 주제를 직접적이며 그로테스크한 방법으로 연출한 그의 작품을 만나기 위해, 전시장을 들어서자 충격의 연속이었다. 포름알데히드 용액을 채운 유리 상자에 통째로 담기거나, 전기모터로 분해된 상어와 양의 모습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할까? 가족과 함께 이런 작품을 보는 꼬마들에겐 앞으로 어떤 엄청난 영향을 미칠까? 형이상학적 주제를 시각적으로 명징하게 드러내는 작가의 천재적인 발상이 돋보였다.
약병, 알약, 담배꽁초, 살아 있는 나비, 화초, 스핀 페인팅, 소의 머리, 파리 등 그의 작품은 죽음과 탄생의 반복을 연상케 했다. 역겨우면서도 숭고한 감정이 동시에 들었다. 가벼움과 무거움, 유한함과 무한함에 관한 탐구와 성찰! 죽음 앞에 선 인간이란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앞으로 그는 또 무엇을 우리에게 제시할까? 이런 상념에 빠져 테이트모던 창 너머를 바라봤다. 미술관 앞 잔디밭에는 자유로이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어둑해진 하늘과 강 건너로 세인트폴성당까지 한눈에 보였다. 화실을 운영하는 내가 보기엔 아이들이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교육 시설도 보기 좋았다. 잠시의 휴식을 즐기고, 사치갤러리를 향했다. 도심 속에 자리잡은 모던하면서도 미니멀한 사치갤러리의 전경에 반했다. 사치갤러리에서는 〈코리안아이〉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런던에서 한국의 작품을 보는 기분은 새삼 뿌듯하면서도 다른 감정으로 다가왔다.
다음 날 아침, 지하철을 타고 하이드공원에 도착했다. 숲길을 따라 풀내음을 맡으며 서펜타인갤러리로 향했다. 갤러리 앞에는 아이 웨이웨이와 헤르조그&드뫼론의 2012년 파빌리온 건축물이 있었다. 우리는 코르크 의자에 모여 앉아 늦은 아침을 먹었다. 마침 갤러리에는 오노 요코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그의 전시를 보기 전, 존 레논이 먼저 떠오른 건 사실. 오노 요코의 작품을 제대로 본적이 없어, 낯선 기분으로 전시장에 들어섰다. 하얀 전시장에 놓인 그의 무심한 표정, 실물 오브제, 직접 쓴 글, 존 레논과 함께 한 영상이 내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자르기〉의 과거 공연과 최근 공연이 동시에 상연되었다. 관객이 한명씩 다가와 오노 요코의 옷을 자르는 모습이 이어졌다. 작가, 관객, 개인과 사회, 자아와 성(性), 개인의 체험, 존재 자체에 관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노 요코의 작품을 통해 예술이 우리의 상상을 자극하고, 상상의 무한한 가능성을 일깨우며, 작가와 관람자가 작품으로 긴밀한 교감을 나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어느덧 나도 모르게 낯설던 그의 작품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전시장을 나서며 〈소망의 나무〉에 나의 삶이 더 넓은 세상으로 이어지길 바라며 소원을 적은 종이를 매달았다. 8월의 가을 같았던 런던. 낯선 도시와 사람들과 시작된 그림 여행은 그곳에 머물러 있는 것만으로 행복한 나날이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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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레이 <Limited Art Project> 2012
각 년도 별 해외 아트투어
2009년 _제1회 유럽아트투어_파리-베니스-런던 10박11일
2010년 _제2회 유럽아트투어_파리-런던-리버풀 9박10일
2011년 _제3회 유럽아트투어_파리-베니스-베를린 9박10일
2012년 _제4회 유럽아트투어_런던-파리-베를린-카셀 10박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