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평론가 나카하라 유스케 타계

2007년 베이징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열린 박서보 개인전에서. 나카하라 선생과 김복기 발행인
일본 미술평단의 거목 나카하라 유스케(中原佑介) 씨가 3월 11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79세. 현대미술 평론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면서 비평 활동뿐만 아니라 국내외의 대형 전시 기획에도 큰 성가(聲價)를 남겼다. 특히 그는 1970년대 이후 한국미술의 일본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한일 양국 미술 교류의 교량 역할을 맡았던 ‘친한(親韓) 인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31년 고베시에서 출생. 교토대학 대학원에서 이론 물리학을 전공하다가 재학 중이던 1955년, 미술 잡지 『미술수첩』의 평론 공모에 <창조를 위한 비판>이 당선되어 미술평론가로 전향했다. 과학 사상의 소양을 바탕으로 개념미술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면서도 날카로운 비판으로 미술계에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동년배의 하리우 이치로(針生一郞)와 함께 1950~1960년대 일본 미술저널리즘의 견인 역할을 맡았다. 미술평론가연맹 회장을 역임했다.
1970년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국제전 도쿄 비엔날레의 커미셔너를 역임했다. 특히 일본의 모노화(物派)를 미니멀리즘이 풍미하던 세계미술의 흐름 속에 진입시켰다. 1973, 1975년 상파울루비엔날레, 1976, 1978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일본 커미셔너를 역임한 바 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미술 전시 국제 위원을 맡았다. 교토 정화대(精華大) 총장, 미토 예술관 총감독, 효고 현립미술관 관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넌센스의 미학』등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