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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일쉐먀킨展

2013/09/03

파리의 보도(Sidewalks of Paris)
2013. 5. 29~8. 5 국립러시아미술관(The State Russian Museum)(http://www.rusmuseum.ru/eng/exhib/lenta/exhibitions_2013/mihail_chemiakin_sidewalks_of_paris/)

오페라 <수도원에서의 약혼> 의상 에스키스 30×19cm 2008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러시아미술관(The State Russian Museum) 별관 대리석 궁(Marble Palace)에서 미하일 쉐먀킨(Mihail Chemiakin)의 70세 기념 개인전 <파리의 보도(Тротуары Парижа/ Sidewalks of Paris)>가 열렸다. 쉐먀킨은 상트페테르부르크 비공식미술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소련 비공식미술은 공식미술인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획일성에 반대해 1960년대부터 자생적으로 나타났다. 작가 개인의 자유로운 개성과 창의성을 중시하고 때로는 사회 비판적인 성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소련 공안당국의 탄압 대상이 됐다. 이러한 시기에 쉐먀킨은 1961년 “다른 학생을 미학적으로 타락시킨다”는 이유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례핀미술아카데미(Ilya Repin St. Petersburg State Academy of Painting, Sculpture and Architecture) 산하 중등미술학교에서 퇴학당했다.

<까마귀 깃털> 의상 에스키스 30×19cm 2007

미술학교에서 수학한 4년이 그가 받은 정규 미술교육의 전부였으나, 쉐먀킨은 이후 단순 노무직을 전전하며 자신만의 미술세계를 발전시켜나간다. 그는 소비에트 정권 당시 ‘레닌그라드(Leningrad)’라고 불리던 도시의 원래 이름을 딴 ‘페테르부르크(Peterburg)’라는 지하 미술단체를 조직해, 전 세계 종교미술에 나타난 도상적 상징물과 기법을 연구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3년간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되는 등의 탄압을 받기도 했다. 그는 결국 1971년 소련을 떠나 파리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한다.

<불구자> 30×19cm 2007

18년간의 망명생활 동안 미국과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쉐먀킨은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를 맞아 개혁개방이 이루어지던 1989년에야 고국에서의 활동을 재개할 수 있었다. 그는 돌아온 고국 러시아에서 종교적 상징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독특한 초현실적 작업을 선보이는 동시에 소련 공산당의 정치적 숙청으로 인한 희생자를 기리는 기념비 조각 등 각종 공공미술작품을 제작하기도 했다. 또한 발레 <호두까기 인형> 및 오페라 <수도원에서의 약혼> 등의 무대와 의상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등 실용미술 분야에서도 왕성히 활동했다.

<거리의 여배우> 30×19cm 2007

이번 개인전에서는 실용미술과 순수미술에 대한 구분 없이 다방면에서 이루어진 쉐먀킨의 활동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통섭적인 창작활동은 1920년대 소련의 미래주의자와 구축주의자의 활동을 떠올리게 한다. 미술관에 격리돼 소수 특권계급을 위한 단순 감상물로 머물러있는 미술이 아닌 사회를 직접적으로 변화시키는 실용적인 미술을 추구한 자들이 바로 미래주의자와 구축주의자였다. 그들의 ‘생활미술’ 운동은 정치적 탄압에 의해 결국 실패했지만 이후 바우하우스와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에 큰 흔적을 남긴다.

모놀로그중인 셰익스피어 연극의 주인공 30×19cm 2007

이번 전시는 210여 점의 작품으로 구성된다. 그 중에는 작가의 유년기 기억을 더듬어 만든 초현실적 분위기의 개인적 작업, 수많은 아사자를 발생시킨 소련의 ‘신경제정책’과 레닌그라드 봉쇄를 주제로 한 비극적인 연작, 작가가 담당한 화려한 오페라 및 발레 의상 에스키스 등 저마다의 독특한 분위기를 지닌 다양한 작업이 포함돼 있다. 특이한 점은 개인적 창작물이든 실용미술을 위한 에스키스든 모두 같은 기법, 즉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거리의 쓰레기를 사진으로 찍고 그 위에 드로잉을 덧붙여서 재탄생시키는 방법으로 제작했다는 것이다.

작가는 지난 12년 동안 전시 제목 그대로 밤마다 파리의 보도를 돌아다니며 발견한 쓰레기와 도로 위의 얼룩, 아스팔트의 균열 등을 사진에 담아왔다. 그러고 나서 출력한 사진 위에 파스텔, 잉크, 구아슈 등으로 자신의 드로잉을 덧그렸다. 이렇게 만들어진 최종 결과물을 보면, 아무렇게나 버려진 담배꽁초, 비닐봉지, 신문지, 과자 포장지, 나뭇잎, 페인트 얼룩, 깃털 등 의미 없는 요소가 작가의 눈과 상상력을 통해 화려한 복장을 입은 귀부인, 기묘한 몸짓의 광대, 아이를 안은 여인 등의 모습으로 새롭게 생명을 얻어 재탄생한다.

<여배우> 30×19cm 2009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는 자신의 《회화론》에서 미술가를 위한 상상력과 창조력 훈련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떤 소재를 찾으려 할 때 여러 가지 얼룩으로 더럽혀진 벽이나 얼룩진 무늬가 있는 돌을 보라. 그 속에서 산, 바위, 나무, 평야, 대협곡, 언덕 등이 조합되어 아름답게 꾸며진 다양한 풍경과 흡사한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또는 여러 전쟁터와 활 쏘는 사람들,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얼굴과 복장들, 잘 다듬어진 형태들을 유추해낼 수 있는 한없이 많은 사물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벽과 얼룩진 돌을 보면 마치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들을 때처럼 떠올리고 싶은 어떤 이름이나 단어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쉐먀킨은 이러한 다 빈치의 조언을 충실히 이행해, 우리가 무관심하게 지나쳤던 거리의 사물로부터 놀랄 만큼 아름다운 결과물을 만들어 보여준다. 그가 이번 전시에서 보여준 창작활동은 생활 속에서 성인은 물론 어린아이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다. 전시장 끝 부분에는 작가가 찍은 사진 위에 사인펜, 색연필 등으로 관객이 직접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 있다.

미하일 쉐먀킨(Михаил Шемякин/ Mihail Chemiakin) 1943년 모스크바 출생. 현재 파리 거주 중. 화가, 조각가, 무대디자이너. 례핀미술아카데미(Ilya Repin St. Petersburg State Academy of Painting, Sculpture and Architecture) 산하 중등미술학교 중퇴. 샌프란시스코대(University of San Francisco) 명예박사. 러시아 연방 국가 훈장 수여, 러시아 대통령 훈장 수여, 프랑스 문화부 기사작위 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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