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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트르파블렌스키의행위예술

2013/12/30

표트르 파블렌스키

표트르 파블렌스키 <못박기(Nail/Фиксация)> 2013

지난 11월 10일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충격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마르고 창백한 한 남자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로 차가운 돌바닥 위에 다리를 벌리고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었다. 한 경찰관이 정신질환자처럼 보이는 이 남자를 연행하기 위해 다가가 그에게 일어날 것을 명령조로 지시했으나, 남자는 경찰관을 무시한 채 마치 조각상처럼 미동도 하지 않고 같은 자세로 계속 앉아 있었다. 남자가 경찰관의 지시를 이행하는 것은 애초에 무리였다. 왜냐하면 그의 음낭이 대못에 꿰뚫려 광장 보도블록에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의 이름은 표트르 파블렌스키(Petr Pavlensky)로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 행위예술가다. 자신의 고환을 붉은광장에 못 박은 파블렌스키의 퍼포먼스에 대한 논란이 현재 러시아 미술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의 행위를 매우 용기 있는 행동이며 사회 참여적이고 정치적인 동시에 미학적 의의를 지닌 훌륭한 행위예술로 치켜세우고, 다른 한편에서는 정치적인 시위일 뿐 어떤 미학적 의미도 없으며 혐오스러운 행위로 눈길을 끌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이러한 논란은 지난 15일 파블렌스키가 기소돼 재판 받을 상황에 처하자 더욱 증폭되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퍼포먼스를 “러시아 현 사회의 정치적 무관심과 비관적 결정론에 대한 은유”로 읽어줄 것을 요구했다. 그는 “정권이 공공연하게 국민을 착취하여 얻은 돈으로 경찰 등 통제장치를 강화하는 현 상황에서, 사회는 자신의 주체성 및 (현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수적 우세함을 망각한 채 경찰국가의 승리를 용인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퍼포먼스를 벌인 날짜가 러시아 ‘경찰의 날’이고 장소가 러시아 정치권력의 상징인 크렘린 앞 붉은광장이라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표트르 파블렌스키 <꿰매기 (Stitch/Шов)> 2012

파블렌스키가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는 퍼포먼스를 벌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2012년 7월 23일 상트페테르부르크 중심가의 카잔성당 앞에서 붉은 실로 입을 꿰맨 채 “푸시 라이엇(Pussy Riot)의 퍼포먼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명한 행위의 재연이다.(마태복음21:12-13)”라고 적혀있는 팻말을 든 채 일인시위를 벌였다. 푸시 라이엇은 2012년 2월 러시아 대선 직전 모스크바의 구세주성당에서 반(反)푸틴 퍼포먼스를 벌이다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러시아 여성주의 펑크록 그룹이다. 파블렌스키는 자신의 이 퍼포먼스에 대해 “카잔 성당을 배경으로 자신의 입을 꿰매는 행위를 통해 러시아의 현대미술가가 처한 공개적인 표현금지라는 상황에 관해 말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당시 파블렌스키를 정신이상자로 확신한 경찰은 그를 정신병원에서 치료받게 하기 위해 응급차를 불렀다. 그러나 의사는 그에게 정신적으로 이상이 없다고 진단했고, 결국 경찰은 그를 풀어주었다.

파블렌스키는 2013년 5월 3일 상트페테르부르크 시 입법회의장 건물 입구에서 가시철조망으로 온 몸을 감싼 채 쓰러져 있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철조망의 가시가 작가의 몸에 크고 작은 생채기를 냈지만 그는 주위의 상황에 전혀 반응하지 않고 어떠한 말이나 움직임도 없이 태아처럼 몸을 살짝 구부린 채 마치 죽은 사람처럼 누워있었다. 그의 이러한 퍼포먼스는 경찰이 절단기를 가져와서 그를 철조망에서 꺼낼 때까지 지속됐다. 그는 자신의 퍼포먼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시민의 활동을 억압하고 국민을 위협하며 정치범을 양산하게 될 법률들, 즉 (외국으로부터 자금지원을 받는 비영리단체의 정치참여를 금지한) 비영리단체법, (문화콘텐츠에 대해 연령등급을 부여하는) 18세이상법, 검열법, 정보통신감청, 동성애홍보반대법 등은 범죄자를 막기 위한 법률이 아니며 일반 시민이 그 규제 대상이다. 특히 최근의 신앙심 모독에 관한 법도 그러하다. 때문에 다음과 같은 퍼포먼스를 벌였다. 도살된 가축처럼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나체상태의 인체를 가축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가시철조망으로 감싼다. 이는 그 법률들이 철조망처럼 개인을 각자의 우리 속에 가둔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가시철조망은 (2012년 대규모 반(反)푸틴 시위에서 체포돼 실형을 선고받은) ‘5월 6일의 죄수들’의 경우처럼 정치 활동가에게 가해지는 국가권력의 탄압을 은유하기도 한다. 이 모든 (제도와 탄압 같은) 것은 사람을 주체성 없이 소비하고 일하고 번식하는 가축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표트르 파블렌스키 <도살된 가축 (Carcass/Туша)> 2013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고 육체적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벌이는 그의 퍼포먼스는 자신의 몸을 매개로 현실생활과 예술행위를 일치시키고자 했던 비엔나 행동주의자의 행위예술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 행위예술가에게 자해행위는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니다. 앞서 설명한 파블렌스키의 퍼포먼스 이전에도 올렉 마브로마티(Oleg Mavromati)는 2000년 4월 1일 모스크바에서 ‘나는 신의 아들이 아니다’라는 글귀를 등에 쓴 채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마취를 하지 않은 채 벌인 이 퍼포먼스는 작가가 더 이상 고통을 참을 수 없을 때까지 계속됐다. 그는 이 행위로 인해 ‘민족, 인종, 종교적 증오 유발’에 관한 법률에 의해 기소되자 불가리아로 망명 후 2010년 일반 시민이 인터넷을 통해 자신을 심판할 수 있도록 하는 온라인 쇼를 기획했다. 컴퓨터와 연결된 전기의자에 앉아있는 작가를 사형시킬 것인지 네티즌들이 직접 찬반투표를 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2010년 11월 7일부터 14일까지 이어진 7일간의 투표 끝에 작가는 살아남았다. (물론 작가의 생명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투표 결과는 조작된 것이었다.) 1975년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는 <토마스의 입술>이라는 퍼포먼스에서 1킬로그램의 꿀과 1리터의 포도주를 마시고 포도주 병을 손으로 깬 후 면도칼로 자신의 배를 그어 공산주의 상징인 별을 그렸다. 그러고 나서 채찍으로 자신을 혹독하게 때리고 십자가 형태의 얼음 위에 맨몸을 누였다. 파블렌스키의 최근 행위처럼 자신의 성기를 훼손시키는 퍼포먼스로 마브로티의 부인이자 페미니스트 행위예술가인 보랴나 로사(Boryana Rossa)가 자신의 음순을 실로 꿰매는 행위나 루돌프 슈바르츠코글러(Rudolf Schwarzkogler)가 자신의 음경을 토막 내는 행위도 있었다. (물론 그의 경우에는 가짜 음경이었다.)

올렉 마브로마티(Oleg Mavromati) <Do Not Believe Your Eyes!> 2000

파블렌스키의 퍼포먼스는 행위예술이 생소한 일반 대중에게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 자신의 부연설명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행위예술은 역설적이게도 대중의 시민의식과 정치적 경각심을 독려한다는 점에서 다분히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색채를 강하게 띤다. 파블렌스키는 ‘정치, 이데올로기, 인종, 민족 및 종교적 동기에 의한 난폭행위’ 죄목으로 구속기소되었으나 절차 및 서류미비로 법원에서 기소를 중지시켰다. 그러나 경찰이 필요한 서류를 절차에 따라 준비하여 다시 기소를 진행시킬 경우 최저 30만 루블(약 960만원)의 벌금 또는 최대 5년의 징역형까지 받을 가능성도 있다. 현재 파블린스키는 출국금지를 받은 상태다. 미술의 사회적 역할과 그 범주에 대해 전 세계적 논의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지난 해 푸시 라이엇의 투옥으로 인해 불거졌던 러시아 미술계에서의 표현의 자유 논란이 파블린스키의 공판 결과에 따라 어떤 양상으로 진전될 것인지 관심 있게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루돌프 슈바르츠코글러(Rudolf Schwarzkogler) <3rd Action> 1965, 1970년대 초 프린트 ⓒ The estate of Rudolf Schwarzkogler, courtesy Gallery Krinzinger 사진출처: www.tate.org.uk

표트르 파블렌스키(Petr Pavlensky/Пётр Павленский) 1984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생.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슈티글리츠산업미술아카데미(St. Petersburg State Academy of Art and Industry, named after Alexander von Stieglitz) 벽화전공 졸업. 2012년 수감된 푸시 라이엇 멤버를 지지하는 퍼포먼스로 유명해졌다. 옥산나 샬리기나(Oksana Shalygina/Оксана Шалыгина)와 함께 정치적 맥락의 현대미술을 다루는 온라인 저널 <정치적 프로파간다(Political Propaganda/Политическая пропаганда)>를 창립했다. 주요 퍼포먼스로 <꿰매기(Stitch/Шов)>(2012), <도살된 가축(Carcass/Туша)>(2013), <못박기(Nail/Фиксация)>(201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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