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터렐展
James Turrell: The Light Inside
2013. 6. 9~9. 22 휴스턴미술관(Museum of Fine Arts, Houston)(http://www.mfah.org/exhibitions/past/james-turrell-retrospective/)
“내 작품은 공간과 공간을 채우는 빛에 관한 것이다.
이는 당신이 어떻게 공간을 마주하고 깊이 파고드는가에 관한 것이다.”
- 제임스 터렐
윌슨 터널(Wilson Tunnel) 내부 전경 Photo by D.CARTER
2013년 미국 미술계에서 가장 많이 거론됐던 작가는 단연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이다. 미국의 세 주요 미술관(동부의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남부의 휴스턴미술관, 서부의 LA주립미술관)이 일제히 터렐 회고전을 개최했기 때문이다. 휴스턴미술관의 <제임스 터렐: 빛 속에서>전은 이은정 뉴욕특파원이 소개한 구겐하임의 <제임스 터렐>전과 공동 기획된 전 국가범위의 터렐 프로젝트 중 하나다.
휴스턴이라는 도시와 터렐은 각별한 인연이 있다. 터렐의 후원자 윌슨 가문(Wilson Family)이 미술관의 두 건물을 있는 ‘윌슨 터널(Wilson Tunnel)’에 작품 <The Light Inside>를 설치하는 프로젝트를 지원했고, 터렐의 작업을 미술관에 대거 기부한 바 있다. 덕분에 관객과 직원은 매일 터렐이 디자인한 터널을 지나다닐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Twilight Epiphany> 라이스대 설치 전경 Photo by Paul Hester
미술관 밖에도 휴스턴에는 터렐의 주요 장소 특정적 작업이 두 점이나 있다. 하나는 명문 라이스대(Rice University)에 있는 <Twilight Epiphany>, 또 하나는 하이츠(Heights)에 있는 퀘이커교(Quaker) 회의실 <Live Oak Friends Meeting>이다. 이 회의실은 금요일 오후에만 일반인에게 공개되는데, 터렐 자신이 신도인 퀘커교의 정기 모임장소로 쓰인다.
<빛 속에서>전에서 선보이는 LED 설치 작업과 30여 점의 드로잉은 50여 년에 걸친 터렐 작품세계의 여정을 보여준다. <Aten Reign> 한 점을 중심으로 전개된 구겐하임의 야심찬 전시가 터렐의 활동을 화려하고 압축적으로 보여준다면, 휴스턴미술관 전시는 작가의 영감원인 빛, 공간, 공기, 비행, 천체 등의 개념을 보다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했다.
<Aurora B: Tall Glass> LED 2010 Photo by MFAH
터렐은 ‘빛의 작가’다. 빛 연구는 자연스럽게 공간과 시각에 대한 연구를 수반한다. 작가의 화두는 빛의 존재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도록 공간을 디자인하고 빛이 들어오는 이상적인 방향과 빛의 양, 색, 각도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는 빛을 인식하는 시지각(視知覺) 연구를 통해 한 번 더 다듬어진다. 미학적인 이해와 해부학적 지식이 함께 요구되는 과정인 것이다.
첫번째 작품<Tall Glass>에서 관객은 티타늄 화이트로 칠해진 하얀 방 안에서 색이 아주 느리게 변하는 빛줄기 혹은 긴 직사각형의 빛을 마주한다. LED로 표현된 하양, 주황, 분홍, 파랑 등의 빛은 색깔마다 가지고 있는 분위기를 조용하면서도 선명하게 공간에 아로새긴다. 분명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데도 빛 터렐의 연출을 거치며 마치 손으로 만져질 것만 같은 촉각적인 존재가 된다.<Tall Glass>의 기다란 빛은 그 신비로운 분위기와 어우러져 십자가를 연상시키고, 일종의 예배당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준다. 퀘이커 교도였던 그의 할머니는 묵상하는 동안 “빛에게 인사를 하러 간다”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 그의 작업이 뿜어내는 신비로움, 경건함, 정신성의 근원을 이해할 수 있다.
<Caper, Salmon to White: Wedgework> LED, 형광등 빛 2000 Photo by Thomas DuBrock
16세 때부터 파일럿이었던 작가에게 7,000피트 상공에서 경험한 하늘은 무한한 영감의 원천이었다. 하늘에서는 지상에서처럼 물리 법칙이 아닌 공기와 빛의 움직임이 공간을 형성한다. <Wedgework>는 작가가 직접 구름과 빛 사이를 비행하며 관찰한 기후현상을 지상의 우리 눈앞에 옮겨 놓는다. 짙은 어둠의 공간을 비추는 붉은 광선은 한랭전선이 온난전선을 만날면서 형성되는 공기층을 나타낸다. 차가운 공기가 따뜻한 공기의 밑으로 가라앉는 수증기의 움직임이 공간을 가로지르는 2차원의면, 선, 깊이감으로표현된다.
<End Around> 2006 Photo by MFAH
메인 작품 <End Around: Ganzfeld>가 뿜어내는 강렬한 빛은 관객의 몸을 LED 빛으로 흠뻑 적신다. 특별히 디자인된 공간 속에서 관객의 눈은 깊이를 지각하는 능력을 일시적으로 잃는다. 빛을 오랫동안 응시하고 있으면 눈이 가볍게 마비되는 느낌과 함께 기분 좋은 어지러움도 느껴진다. 이 상태에서 공간을 둘러보면 모서리가 빛에 씻겨 마치 바닥, 벽, 천장이 하나의 평면처럼 인식된다.
제임스 터렐의 대표작인 <Roden Crater> 조감도 Photo by Thomas R. DuBrock
터렐의 작품에 표현된 빛, 정신성, 무한함을 감상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는 일상과 단절된 고요한 환경일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작가의 공간은 내부에 관객이 존재할 때 더 살아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여느 다른 미국 미술관 전시처럼 <빛 속에서>전에는 안전요원이 작품 내부에 상주해 있었다. 늘 지루해 보이는 안전요원이 작품 안과 밖을 서성거리는 모습은마치 그 안에 늘 있었던 풍경처럼, 작품의 일부처럼 어울리듯, 어울리지 않는 듯 그렇게 터렐의 빛 안에 포함되어있다. 작가의 의도와 관계없이 터렐의 빛이 제도화된 미술관에 전시되면서 겪는 흥미로운 변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