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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디스토피아로오세요…

말뫼릴리스퍼포먼스스튜디오,기획전<나는너를중세의미래한다2>

2025/04/01

덴마크 출신 큐레이터 야콥 파브리시우스는 전 세계에서 같은 콘셉트, 다른 작가로 동명의 전시를 10번 개최하는 프로젝트 <나는너를중세의미래한다>를 벌이고 있다. 그 다섯 번째 버전이 말뫼 릴리스퍼포먼스스튜디오(2. 13~3. 16)에서 공개됐다. 필자는 미와 추, 성과 속을 넘나드는 ‘아름다운 디스토피아’에서 비선형의 시간을 포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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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마그〈Verksamhetsanalysen〉점토,천,왁스,퍼포먼스가변크기2025_이번전시는덴마크극작가이데마리헤데와협업했다.그의픽션희곡<ProtecttheSalmon>을조각,설치,퍼포먼스등으로구현한다.

<나는너를중세의미래한다2>전은 2016년 덴마크 로스킬레현대미술관에서 첫 에디션을 발표한 후 시리즈마다 외연을 확장해 왔다. 이 ‘의도적’ 비문의 제목은 한국 관객에게도 낯설지 않다. 2019년 아트선재센터에서 네 번째 버전을 한 차례 경험했기 때문이다. 에일리언과 포스트휴먼의 중간쯤을 나타낸 오바르타시의 드로잉, 사람 얼굴을 한 로봇 청소기, 코가 지나치게 긴 달팽이 인간 등 6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당시 모습이 선하게 떠오르는 건, 파브리시우스가 전한 디스토피아로의 초대가 적잖은 시각적 충격과 개념적 사유를 안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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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리마<TheLandscapePuller(M=F/W=F)>퍼포먼스1998/1999/2000/2013/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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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샤톤테이<GardenAmidsttheFlame>싱글채널비디오27분2022

100년간 10편을 진행하는 콘셉트의 <나는너를중세의미래한다>전은 우리 시대의 환상적이고 기묘한 이야기, 디스토피아적 묘사로 미래에 관한 서사적 내러티브를 전하는 비연대기적 전시다. 새로운 암흑기를 불러일으킬 것만 같은 다소 위협적인 제목의 이 전시는 선형 시간에 대한 우리 개념을 성능적으로 잠시 중단시켜, ‘오래된 미래나 새로운 과거’로 다가갈 수 있도록 안내한다. 중요한 사실은 디스토피아 세계를 그리는 것이 유토피아에 반대하는 부정적 개념은 아니라는 점이다. 유토피아의 어원이 태생적으로 ‘없는 장소’라는 사실을 상기해 보면, 존재하지 않는 곳에 대한 부정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디스토피아는 유토피아의 또 다른 얼굴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디스토피아는 ‘유토피아가 결코 완벽히 성취될 수 없음’의 증표로써 기능하는 장소인 셈이다.

파브리시우스 역시 전시에서 이 둘을 필연적 파트너로 상정하고, 서로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작동하게 했다. 그 기저에는 상대를 ‘반추’하는 실천이 있다. 전시에는 아름다움과 기괴함이 역전되고, 이분법으로 지탱되던 긍정과 부정의 기호는 사라진다. 일견 과거-현재-미래의 시차 교환 정도로 보일 법한 서사는 어느새 안팎이 뒤엉킨 혼재의 양상으로 탈바꿈된다. 이로써 정상성의 범주와 기준에 대한 질문이 시작된다. 파브리시우스가 표현하는 세계는 피와 살이 뒤섞이고 축축하고 습윤한 온도로 뒤덮인 사건 같은가 하면, 이름 모를 종들이 혼성으로 출몰하는 현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모습에 불안한 시각을 견지할 찰나, ‘올 것이 왔다’는 깨달음이 먼저 뇌를 스친다. 이는 결국 어딘가에 ‘등장할 법한’ 낯설지 않은 감각적 경험이 정상성을 획득하지 못한 양태로 내게 다가온 까닭이다.

시대를 가로지르는 몸의 대화

이때 내밀한 곳에서 우리를 사로잡는 감정은 도리어 불가해한 쾌감에 가깝다. 가령 묵시록적 상황을 대면하면 파국을 몰고 온 압도적 힘의 실재를 겪음과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생존했다는 현재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마련이다. 파브리시우스는 이를 감각적으로 지각할 수 있도록 크로스오버 전시 형식을 택했다. 15개국 30명의 아티스트와 작품 40여 점, 퍼포먼스 20회를 선보였다. 더불어 인간이 포스트휴먼으로 변하고 있는 현재와 미래의 불안한 저류를 반영한 픽션 희곡 <Protect the Salmon>과 사운드스케이프를 발표했다. 전시 기간에 작품 디스플레이와 전시 레이아웃을 계속 변경하면서 전시의 시작과 끝에 의문을 던졌고, 각기 다른 날 전시장을 방문한 관람객은 서로 다른 구성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관객은 관람 후 서로의 기억 파편을 조립해 서사를 쓰게 되지만, 이내 상대의 기억으로 반추한 본질에 의구심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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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스피셔<PerfectLovers>퍼포먼스2025

이번 에디션은 단연 장면적 연출이 돋보였다. 퍼포먼스라는 살아있는 행위는 과거/미래 시간의 사건을 현재 시점에 소환했다. 그리고 이는 시각적으로 멈춘 듯한 정적인 현장의 타임라인을 늘릴 수 있었다. 말라비틀어진 피부 껍질(에바 매그), 자연의 힘에 대항하는 어리석은 나체(로라 리마), 테크노 지향적인 AI 대리물(남혜지), 생체 실험으로 거대하게 변종된 쥐(크리스토퍼 악셀보)까지…. 이 궤도에 모습을 드러낸 인간은 안타깝고 ‘웃픈’ 영혼 같다. 그런데 왜 이 휴먼을 케어해 주고 싶은 모종의 감정이 드는 것일까? 이 전시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일견 등돌릴 법한 상황에도 호기심이 간다는 것인데, 이는 불편한 감정에서 비롯된 동력이 우리를 행동하게 함으로써 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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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누스발린<BloodyMary>탄산혈가변크기1994/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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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아라오만<TheFiveSisters>도자,실리콘,레진혼합재료가변크기2025

전시는 야외 마당부터 복도, 계단, 화장실, 갤러리 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다. 마당의 피 웅덩이 <Bloody Mary>는 스웨덴 작가 매그너스 발린이 재현한 1994년 작품이다. 전시장을 들어가고 나올 때마다 보이는 일종의 ‘루프’ 상징물로, 시작과 끝이라는 시간의 경계를 희석한다. 인간의 평균 혈액량인 5L의 탄산혈을 전시 기간 중 20번에 걸쳐 마당에 쏟아냈다. 한편 물질적 재료로 형상을 표현한 덴마크 작가 롤프 노보트니와 아니아라 오만은 조각, 설치를 선보였다. 오만의 마스크 연작 <다섯 자매>는 먼 미래의 인류가 박물관에서 볼 법한 포스트휴먼 자화상 같다. 고대 유물, 주술을 연상시키는 소재와 도자, 실리콘을 결합한 얼굴들은 기계/혼성적으로 보이지만 동시에 연약한 감정을 일으킨다. 작가는 ‘바이오-퓨처리즘’을 지향해 유기적인 것과 비유기적인 것을 연합시켜 환경의 연장체로서의 인간을 다룬다. 이는 우리와 문화적 유대감을 형성하면서 대안적 신체를 상상하게 한다.

특히 김희천(한국), 허 쯔커(중국), 리 이판(대만), 나타샤 톤테이(인도네시아), 추아 총옌(말레이시아) 등 젊은 아시아 영상 작가의 약진이 돋보였다. 추아 총옌의 사이버펑크적이고 휘황찬란한 애니메이션은 디지털아트와 게임디자인을 넘나든다. 그의 화면은 집합과 축적의 건설적 행위가 지배적으로 작용한다. 현실감을 강조하는 미장센으로 리얼리티를 배가시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매 장면 탈출을 열망하는 공허한 서사에 가깝다. 유일하게 추상적 요소로 기능하는 이근민의 회화와 이미래의 조각은 시차를 달리한 상황적 장면들이 누적되는 상황에서 피와 살, 세포와 장기로 대변될 만한 몸의 물리적 속성을 대표한다. 피와 살의 색이 지배하는 페인팅, 얽힌 조직과 구멍을 특징짓는 조각은 과거 현재 미래 어디에서나 보편적 시간을 담보한다. 전면에서 ‘외침’을 주도하진 않지만, 전시의 중심축을 붙잡는 역할로 비선형적 관계를 형성하는 데 기여한다.

전시는 극단화된 좀비/종말론적 암울한 세계관을 특징으로 하지 않는다. 파브리시우스는 ‘오래된 미래나 새로운 과거’라는 의도적으로 어긋난 시간의 추를 계속 움직이며, 시간적 혹은 공간적 변화에 맞물려 있는 경계 지점을 지워나갈 뿐이다. 이렇게 발로된 그의 큐레이팅은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상황이나 장면을 이미 경험한 것처럼 친숙하게 느껴지는 기시감을 양산한다. 우리는 기억을 간질이던 기시감의 정체를 찾고자 스스로 질문한다. 남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로써 시작과 끝도 없이 이를 추적하는 것이다. 현재는 과거와 다를 바 없으며, 과거의 실수로부터 미래를 배운다고 말하는 파브리시우스. 그의 다음 에디션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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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민<OrganicPlate>캔버스에유채113×162cm(총4점)2024(왼쪽),<CrimsonHead>캔버스에유채291×218cm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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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래<HorizontalForms>삼베,철근,금속,메틸셀룰로오스가변크기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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