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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展

2013/08/21

Man Ray Portraits

2013. 6. 22~9. 22

<Self-Portrait with Camera> 1930 The Jewish Museum, New York

미국작가 만 레이(Man Ray)의 생애 전반에 걸친 작업을 선보이는 대규모 회고전 <Man Ray Portraits>가 지난 6월 스코틀랜드국립초상화미술관(Scottish National Portrait Gallery)에서 열렸다. 런던의 영국국립초상화미술관(National Portrait Gallery)(http://www.npg.org.uk//whatson/man-ray-portraits/exhibition.php)과 공동으로 주관한 이번 전시는 작가가 활발한 활동을 시작한 초기 1916년부터 생애 후반부인 1968년까지 50여 년간의 업적을 좇으며 사진을 포함한 다양한 작업을 선보인다. 관객은 전시의 동선을 따라 작가의 삶을 시대 순으로 살펴볼 수 있다. 이번 회고전은 100점이 넘는 작품을 선보이며, 올해 초 이미 런던 전시(2. 7~5. 27)를 통해 만 명에 가까운 관객을 끌어 모은 바 있다. 이번 전시가 영국의 북쪽 에든버러에서도 동일한 티켓파워를 보일지 주목된다. 
 
NEW YORK 1916~20
만 레이는 1890년 미국으로 이민한 유대계 러시아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마이클 엠마뉴엘 라드니츠키(Michael Emmanuel Radnitzky)로, 그의 가족이 1912년 당시 미국에 팽배했던 인종차별과 반유대주의를 우려해 ‘레이(Ray)’로 성을 바꿨고 그 또한 ‘만 레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된다. 이를 기점으로 그의 작업 역시 ‘ER’에서 ‘Man Ray’로 새로운 서명을 얻는다. 작가의 가장 초창기 사진 작업은 1916년에 촬영한 다다이즘 자화상과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초상으로 추정된다. 총 5개 섹션으로 나누어진 전시는 바로 이 시점, 1916년부터 시작한다. 다다이즘에 매료된 만 레이는 뒤샹과 함께 뉴욕에서 다양한 작업적 시도를 펼친다. 하지만 다다이즘의 참신함과 실험적 성격이 혼란하고 거친 뉴욕의 모습과 견줄 수 없음을 깨닫고, “다다이즘은 뉴욕에서 살 수 없다. 뉴욕 전체가 다다이며, 뉴욕은 그 라이벌에게 너그럽지 않을 것이다.”라는 기록을 남기며 파리 행을 결심한다.

PARIS 1921~28
1921년 파리에 도착한 만 레이는 뒤샹을 통해 초현실주의의 주창자 앙드레 브르통(Andre Breton)을 소개받는다. 이후 파리에 정착해 브르통을 비롯한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등과 같은 당대 저명한 철학자 및 예술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그들의 ‘비공식 사진사’로서 서로의 작업에 큰 영향을 끼친다.

<Barbette> 1926 The J. Paul Getty Museum, Los Angeles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점은 바로 작품 옆의 라벨이다. 이는 각각의 작품이 얼마나 다양한 곳에서 왔는지 알려준다. 뉴욕, 파리, 런던, 쾰른 등 세계 각지의 박물관과 개인 컬렉터에게서 대여 받은 만 레이의 주요 작품 및 빈티지 프린트는 전시의 규모를 대신 말해 줄 뿐만 아니라 보는 내내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시각적 호사를 누리고 있음을 실감하게 해준다. 따로 떨어진 조각 퍼즐이 맞춰 진 것처럼, 한 공간에서 좌우로 마주하고 있는 소장품은 작가의 작업세계 전개과정과 변천사를 거시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더불어 이러한 전시를 일궈낼 수 있는 박물관의 위상과 신뢰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끔 한다. 

PARIS 1929~37
이번 전시는 다른 각도에서 예술가와 뮤즈의 관계를 다룬다. 전시를 구성하는 5개 섹션은 작가의 작업형태 변화에 기반 하고 있지만, 각 시기 마다 그 곁에 다른 여인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파리 1921~28> 섹션을 가득 채웠던 만 레이의 연인이자 뮤즈인 키키(KiKi)는 간데없고 <파리 1923~37> 섹션에는 사진가이자 패션모델, 그리고 그의 조수였던 리 밀러(Lee Miller)가 자주 등장한다. 작업 기법 또한 이전에는 렌즈 없이 빛의 노출로 인화지에 사진 영상을 만들어 내는 ‘레이요그래프(rayograph)’에 집중했지만, 리 밀러와는 빛의 노출에 따른 반전(反轉)을 이용한 기법인 ‘솔라리제이션(solarization)’ 방식을 발전시켰다. 다만 이번 전시가 작가의 기술적 변화를 충분히 설명해주기보다 그의 사진 속 인물에 더 중점을 둔 점이 아쉽다.

<Solarised Portrait of Lee Miller> 1929 The Penrose Collection Image courtesy the Lee Miller Archives

<Juliet> 1947 Collection Timothy Baum

Hollywood 1940~50
만 레이는 프랑스 생활에 만족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하자 1940년 미국으로 돌아간다. 작가는 곧 그의 여생을 함께할 동반자 줄리엣 브라우너(Juliet Browner)를 만나고 할리우드에 정착해 화가로서의 작업에 몰두한다. 동시에 패션 사진가로도 활동하며 《보그(Vogue)》, 《하퍼스 바자(Harper’s Bazaar)》와 같은 잡지에도 작업을 싣는다. 전시장에서 접한 1922년 잡지 《베니티 페어(Vanity Fair)》는 피카소와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를 찍은 만 레이의 사진을 담고 있었다. 색 바랜 잡지지만 지금 보아도 전혀 시대에 뒤쳐지지 않는 작가의 사진적, 구도적 감각을 엿볼 수 있고, 더불어 그가 당시에 누렸을 명성과 넓은 인맥 또한 짐작할 수 있다.

<Ava Gardner in Costume for Albert Lewin’s Pandora and the Flying Duchman> 1950 Collection Man Ray Trust

Paris 1951~76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만 레이는 줄리엣 브라우너와 함께 1951년 다시 프랑스로 돌아온다. 그리고 남은 25년간 회화, 조각, 사진, 영화 등을 아우르는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하며 86세에 파리에서 생을 마감한다. 2013년 여름, 스코틀랜드에서 만나는 만 레이의 전시는 관람객을 1920년대의 파리로, 1940년대의 할리우드로 데려간다. 더불어 마르셀 뒤샹, 앙드레 브르통, 파블로 피카소, 제임스 조이스,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살바도르 달리,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등과 같이 독창적인 사고로 시대를 사로잡은 인물과의 만남도 주선한다. 하지만 전시장을 나서며 만 레이의 그림 같은 사진, 실험적 기법이 기억에 남기 보다는 너무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만나 누가 누구였는지 기억할 수 없는 뭔지 모를 찜찜함은 어쩔 수 없나 보다.

<Catherine Deneuve> 1968 개인소장

만 레이(Man Ray) 1890년 미국 출생. 어린 시절부터 예술적 감각이 뛰어나고 손재주가 남달랐다. 특별한 정규교육 없이 상업화가,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다가 1912년 페러센터(Ferrer Center)에서의 수학 후, 1913년 뉴욕에서 열린 <아모리 쇼(Armory Show)>를 계기로 정식 작가의 길을 걷는다. 마르셀 뒤샹과 함께 뉴욕에서 초기 다다이즘을 이끌었으며 1921년 파리로 이주 후, 초현실주의와 사진에 눈을 뜬다.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를 선동했고, 그림, 조각, 사진, 영화 등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며, 1976년 파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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