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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리아노展

2014/01/02

A Retrospective

2013. 9. 21~ 2014. 2. 23

<The Singing Butler> 캔버스에 유채 71×91.5cm 1992 ⓒ www.jackvettriano.com, www.heartbreakpublishing.com

촉촉한 모래사장 위에서 멋지게 차려 입은 두 남녀가 춤을 추고 있다. 춤 혹은 상대방에 흠뻑 빠진 것인지, 아니면 분위기에 한껏 취한 것인지 양 옆의 우산을 받치고 있는 가정부와 집사에게는 아랑곳도 않는 눈치다. 스코틀랜드 출신 작가 잭 베트리아노(Jack Vettriano)의 1992년 작품 <The Singing Butler>이다. <The Singing Butler>는 2004년 소더비 경매에서 £744,000(한화 약 12억 원 이상)에 팔리며 스코틀랜드 작가로는 최고가를 기록했고, 그의 작업은 현재까지도 가장 잘 팔리는 그림 중의 하나다. 베트리아노의 그림은 프린트와 포스터, 엽서, 카드, 달력, 다이어리, 머그컵, 우산, 마우스 패드, 비스킷 통 등 오히려 없는 곳을 찾아보기가 힘들 지경이다. 이 작가의 20년간의 작업을 선보이는 대규모 회고전이 글래스고 켈빈그로브미술박물관에서 지난 9월 문을 열었다. 

베트리아노는 스코틀랜드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16세 때 학업을 중단하고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21세 때 선물 받은 수채물감으로 취미삼아 그림을 시작했고 그의 나이 40세에 이르러서야 완연한 직업 작가의 길을 걷는다. 에든버러대(University of Edinburgh) 미대에 지원했으나 낙방했고 정규미술교육 없이 예술가의 길을 걸어왔지만, 현재 나이 61세, 베트리아노의 작품은 수 억 원에 거래되고 작가는 한 해 저작료로만 £500,000(한화 약 8억 5천만 원) 이상의 수입을 거둔다. 또한 그는 ‘하트브레이크(Heartbreak)’라는 출판사와 갤러리를 소유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그의 작품과 인기 즉, 수요 덕분이다. 하지만 역사 깊은 공립 미술관에서 그의 회고전이 열린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언론과 평론가들이 그리 호의적이지만은 않았다. 가령 알라스테어 스마트(Alastair Smart)는 《텔레그라프(The Telegraph)》에서 이번 전시 소식에 “비탄하다(lament)”고 전했고, 모리아 제프리(Moria Jeffrey)는 《스코츠맨(The Scotsman)》에서 “전시에 가느니 차라리 혼자 있는 편을 택하겠다.”고 했다. 조나단 존스(Jonathan Jones)는 《가디언(The Guardian)》 전시리뷰에서 베아트리아노의 작업에 대해 “몹시 싫어한다(deep dislike)”라는 표현을 썼다. 그렇다면 이번 베아트리아노의 회고전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고 또 어떤 의미를 지니는 걸까?

<Bluebird at Bonneville> 캔버스에 유채 60×101cm 2005 개인소장 ⓒ www.jackvettriano.com, www.heartbreakpublishing.com

이번 전시는 지난 20년간 작가의 행적을 좇으며, 개인소장으로 일반 대중이 접하기 힘들었던 작품까지도 한자리에 모았다. 사립기관의 벽에만 걸려있던 ‘블루버드 클럽(Bluebird Club)’의 자동차 시리즈와 ‘투이가(Tuiga)’ 요트 시리즈가 처음으로 갤러리에 전시됐다. 작품 옆의 레이블에는 배우 잭 니콜슨(Jack Nicholson), 로버트 퍼거슨(Robert Ferguson)과 같이 익숙한 소장자의 이름도 종종 눈에 띤다. 더불어 각 레이블에는 작업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와 영감이 적혀 있다. 특히 영화와 음악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베트리아노는 이번 전시에서 영화감독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와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의 이름을 여러 차례 거론했다. <Bird on the Wire>나 <Sweet Bird of Youth>와 같은 작품의 경우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의 노래에서 작품 제목을 그대로 따왔다. 작가는 평론가들이 그의 작업을 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 평하는 것에 대해 당연하다고 말한다.

<Masthead> 캔버스에 유채 60×50cm 2009 ⓒ www.jackvettriano.com, www.heartbreakpublishing.com

“데이비드 린치는 ‘이제 좀 심각해지겠는 걸’ 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었다 … 나는 여전히 그렇게 하고자 노력한다. 방에서 앞으로 벌어질 사건을 표현하고자 하는 방식으로 그 방에 빛을 밝힌다. (David Lynch was able to create an atmosphere that you just knew wasn't going to be funny … I still try to do that now, light a room in a way that tries to portray the events that are going to take place in that room.)”

100점이 넘는 전시 작품 중 인물이 포함되지 않은 작품은 단 한 점도 없다. 베트리아노의 작품은 인물이 주인공이고 그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정한 시대와 장소를 연상케 하는 배경과 소품, 그리고 조명처럼 인조적인 빛은 캔버스 너머의 전후 상황을 충분히 짐작하게 한다. 전시장 입구에는 예상관람시간으로 ‘1시간’이 적혀 있지만, 관객이 한 작품 한 작품 상상의 날개를 펼쳐 보기에, 더욱이 4개에 달하는 비디오까지 시청하기에 ‘1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난해한 현대 개념미술 혹은 지나치게 사실적인 하이퍼리얼리즘의 기교에 지친 관객은 베트리아노의 작품에서 누구나 보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매력을 느낀다.

<Sweet Bird of Youth(Study)> 캔버스에 유채 38×30cm 1995 ⓒ www.jackvettriano.com, www.heartbreakpublishing.com

하지만 이번 전시가 모든 이를 반갑게 맞아주는 것은 아니다. 켈빈그로브미술박물관은 16세 이하의 청소년의 경우 반드시 성인 동반자와 함께 입장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전시는 일명 ‘빨간 방(Red Room)’을 포함하고 있다. 전시실의 방이 ‘핏빛(blood-red)’으로 물들어 있기 때문에, 아니면 전시작이 선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Fetish>, <Night Geometry> 등의 이름이 붙은 10점의 작품은 베트리아노의 작품 세계관의 일부 혹은 근본을 나타낸다. 작가는 본인을 움직이게 하는 것만을 그린다고 하면서 성(性)이 그의 작업에, 인생에, 사회 전체에 중요하다고 말한다. 

베트리아노의 이번 회고전을 두고 시민의 교육과 여가를 우선시해야 하는 비영리 공간으로서 켈빈글로브미술관의 선택을 납득하지 못하는 시선이 많다. 권위 있는 기관의 전시를 통해 자국 작가 띄어주기가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미(美)’는 주관적이라고 하지만 그의 작품의 인기는 대중과 평론가 사이에서 누가 미술사를 만들어 가는지, 그리고 미술 시장의 자본 원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한다.

<Jack Vettriano: A Retrospective>전 중 <Black Friday>(1998) 앞에 선 작가 2013 ⓒ Jack Vettriano, www.jackvettriano.com

잭 베트리아노(Jack Vettriano) 1951년 스코틀랜드 출생. 21세 때 여자 친구에게 선물 받은 수채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특별한 정규교육 없이 서양미술 대가의 작품을 모사하며 연습했다. 1988년 스코틀랜드왕립미술원(Royal Scottish Academy)과 이듬 해 영국왕립미술원(Royal Academy of Arts)에 제출한 작품이 뜨거운 반응을 얻으며 본격적으로 직업 작가의 길을 걷는다. 에든버러, 런던, 뉴욕, 홍콩 등에서 개인전을 가진바 있으며, 런던에 있는 갤러리 ‘하트브레이크(Heartbreak)’와 동명의 출판사를 소유하고 있다.

켈빈그로브미술박물관 전경 Courtesy of the Glasgow City Council(Museums)

켈빈그로브미술박물관(Kelvingrove Art Gallery and Museum)(http://www.glasgowlife.org.uk/museums/kelvingrove/Pages/default.aspx) 스코틀랜드 글래스고(Glasgow)에 있는 공립미술기관이다. 1901년 컬렉터 아치볼드 맥렐란(Archibald McLellan)의 기증품을 중심으로 개관했다. 현재 유럽 거장의 미술작품을 비롯해 글래스고 출신 작가의 작품, 무기와 갑옷, 세라믹과 가구, 이집트 유물 등 8,000점이 넘는 방대한 양의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으며, 2003년부터 2006년까지 3년간에 걸친 보수공사 이후에는 영국 내 런던 외 지역에서 가장 방문객이 많은 박물관 중에 한 곳으로 더 크게 각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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