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정展
2014 / 09 / 30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전진
2014. 9. 18~10. 15 스페이스비엠(https://www.facebook.com/spacebm)
/ 벨라 정(스페이스비엠 디렉터)

<No worries, the make up guy is with us> 혼합재료 가변크기 2014
요란한 잡지 사진이 사선으로 아무렇게나 붙어 있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은 포스터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곳곳에 설치된 드로잉과 오브제와 함께 전시장 전체는 마치 어느 작가의 작업실 같다. 좀 더 자세하게 전시장을 살펴보면 현대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마르틴 키펜베르거나 이브 클랭 같은 작가로부터 얻은 레퍼런스가 구석구석 숨겨져 있다. 마치 미술가의 뒤죽박죽한 머릿속에 들어온 느낌마저 든다. 이번 전시를 한 장면으로 묘사해 보자면, 모더니즘부터 현대미술까지 정립된 미술 개념들의 잔해(debris) 위에 길을 잃고 앉아있는 아이의 모습이랄까. 런던과 서울을 오가며 작업하는 작가 박은정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었다. 2012년 비엔나 국립미술아카데미에서 열린 개인전 <나의 친구(A Friend of Mine)>가 진화한 형태다. 이 프로젝트는 친한 친구가 모든 살림살이를 작가에게 남겨 두고 어디론가 사라진 에피소드에서 시작됐다. 그 이후 친구가 남긴 노트, 책, 음악, 영화, 작품 등을 훑어 가는 과정에서, 작가는 자신과는 전혀 다른 어떤 존재와 만나게 됐다. 어느새 작가는 그 존재처럼 생각하기 시작했고, 취향조차 달라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창작의 주체가 모호한 상황에서 작가는 전시를 앞두고 ‘UNIT INFRAPROJECT LTD.’라는 유령회사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전진>이라는 제목으로 펼쳐지는 이번 전시는, 존재의 사라짐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남아 있는 자의 삶에 관해서도 언급한다. 전시 제목이 표방하듯, 갤러리스트인 나 역시 좀 더 나은 미래를 그리며 화랑을 운영하고 있다. 대개 상업 갤러리에서는 작품 판매가 용이한 회화 전시를 중심으로 열지만, 우리는 ‘과연 저런 작품을 어떻게 팔 수 있을까?’하는 걱정보다는 갤러리 색깔과 컨셉트에 맞는지부터 먼저 고민한다. 물론 우리가 대안공간이 아닌 이상 잘 파는 것도 좋은 화랑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가 관심 있고 함께 일하고 싶은 작가들의 작품이(특히 설치 작품이나 개념 작업들) 프로젝트에서 끝나지 않고 구매자와 연결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다리 역할을 하는 화랑이 되고 싶다. 꼭 작품 구매를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기업과의 협업이나 커미션 워크 등 작가와 함께 살아남을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항상 고민하는 중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첫 단계가 바로 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