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큐레이터 실험실
지난 5월 서교동에 전시진행중이 문을 열었다. 자본과 시장의 논리에서 벗어나, 큐레이터들이 자유롭게 실험을 펼치는 장을 추구한다. 전시를 원하는 기획자가 제안서를 보내오면, 내부 논의를 거쳐 채택하고 이를 구현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개관전으로는 배종헌과 박대조의 2인전이 열렸다. Art는 설립자 이은주를 만나 공간의 정체성과 향후 목표를 물었다.
— 설립 계기는? ‘전시진행중’이라는 이름이 독특한데, 그 뜻이 궁금하다.
Lee 이름 그대로 ‘전시가 진행 중인 상태’, ‘어떤 논의와 실천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선언’이다. 무언가를 완결된 상태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과정에 머무르며 질문을 확장하고 실험을 계속하는 태도를 담았다. 현재 미술생태계에서 젊은 기획자들이 자유롭게 실패하고, 시도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구조가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그동안 쌓아온 네트워크와 경험이 새로운 시도를 막지 않도록 일종의 ‘텅 빈 틀’을 마련하고 싶었다.
— 비영리 기획 단체를 표방한다. 공간의 정체성과 비전을 자세히 들려달라.
Lee 전시진행중은 단순히 작품을 전시하는 장소가 아니라, 큐레이터와 작가가 함께 현재의 조건을 해석하고 개입하는 실험의 플랫폼이다. ‘전시’라는 명확한 틀보다 ‘EIP 프로젝트’라는 느슨한 호명으로 공간의 성격을 정형화하지 않고 유연하게 나아가려 한다. 큐레이터가 주도적으로 서사를 구성하고, 자율적으로 환경을 설계하는 곳이다. 장기적으로는 비주류의 언어가 주변부에 머무르지 않도록 전시의 방식을 끊임없이 전환하려 한다.
— 비영리 기관인 만큼 공간 운영을 위한 현실적인 기반은 어떻게 마련하는지 듣고 싶다.
Lee 기획자의 자발적 기여, 후원자의 협조, 공공 지원 사업 등으로 예산을 마련하고 있다. 아직은 시작 단계지만, 지속 가능한 운영 모델을 실험 중이다. 특정 프로젝트를 위한 리서치 펀딩, 장기 협력 큐레이터 제도, 공동 기획 프로그램 등을 고려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원의 한계 때문에 실험 자체가 위축되지 않도록 탄력적인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다.
— 당신은 오랫동안 갤러리스트로 활동해 왔다. 전시진행중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인가?
Lee 나 자신조차 ‘실패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고 되새겼다. 왜 전시를 만드는가, 관계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무엇이 남고 또 사라지는가…. 나는 큐레이터의 언어가 하나의 독립된 목소리로 존중 받는 생태계를 꿈꾼다. 기획자가 작가와 제도 사이의 중재자가 아니라, 자신만의 감각으로 사회에 개입하는 토대를 닦는 일이 중요하다. 결국 전시는 ‘관계와 시간의 밀도’라는 점에서 공동체적 실험이다. ‘전시가 끝나지 않는 상태’로 남는 것. 그 자체가 목표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