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다카시 〈해파리 눈(Jellyfish Eyes)〉 상영회
2014. 5. 25 시카고현대미술관 에들리스니슨극장(Edlis Neeson Theater, Museum of Contemporary Art Chicago)(http://www2.mcachicago.org/event/mca-screen-takashi-murakami-jellyfish-eyes/)
스타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Takashi Murakami)의 첫 장편 영화작품 〈해파리 눈(Jellyfish Eyes)〉이 미국 투어를 시작했다. 5월 1일 달라스를 시작으로 6월 5일까지 보스톤, 시애틀, 워싱턴D.C, 로스앤젤레스, 뉴욕, 샌프란시스코 등 미국의 8개 도시에서 상영된다. 시카고에서의 상영은 5월 25일 시카고현대미술관의 에들리스니슨극장(Edlis Neeson Theater)에서 진행됐다.
〈해파리 눈〉은 최근 아버지를 여읜 외로운 소년 마사시(Masashi)가 어느 비밀스러운 실험이 진행되고 있는 작은 마을에 이사오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린 공상과학 판타지 영화다. 이 곳에서 마사시는 희귀한 생물체를 만나게 되는데, 그 모습이 해파리 같다고 하여 ‘쿠라게-보(해파리 소년, Kurage-bo)라고 이름 붙이고 친구가 되어 남들 눈을 피해 책가방에 넣어 다닌다. 그런데 곧 알게 되는 놀라운 사실은 새로 전학 간 학교의 모든 학생이 이런 이상한 생물체를 하나씩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프렌드(F.R.I.E.N.D.)’라고 불리는 이 존재들은 ‘디바이스(Device)’라는 휴대폰 비슷한 개인용 기계를 통해 아이들에 의해 조종된다. 마사시의 등장으로 ‘프렌드’의 존재와 연구소와의 관계가 점점 밝혀지는데….
무라카미는 이 영화의 오리지널 스토리 제작과 캐릭터 디자인도 맡았다. 주인공의 ‘프렌드’인 쿠라게-보뿐만 아니라, 여주인공의 정의로운 ‘프렌드’인 회색 털로 덮인 거대한 ‘룩소(Luxor)’, 돌연변이 개구리 같이 생긴 악당 ‘유피(Yupi)’, 강철 박스로 된 머리를 가진 ‘쉬몬(Shimon)’, 까불까불 원숭이를 닮은 ‘유키(Ukki)’ 등이 앞으로 무라카미가 ‘미는’ 캐릭터들이 될 전망이다. 쿠라게-보와 룩소는 이미 패션잡지 화보를 통해 화려하 소개되었다. 미스터도브(Mr. DOB)나 미스코코(Miss Ko2) 등 그의 이전 캐릭터글과는 달리, 여러 동물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것이 이번 캐릭터들의 특징이자 공통점이라 할 수 있겠다. 극장 밖에는 간이 상품점이 마련되어, 이 캐릭터들이 그려진 티셔츠, 인형, 열쇠고리 등 관련 상품을 판매했다. 이 상품들은 모두 무라카미가 운영하는 회사 ‘카이카이 키키(Kaikai Kiki)’에서 제작됐다.
필자가 가장 기대했고 관심있게 봤던 ‘캐릭터’는 뭐니뭐니해도 무라카미였다. 그는 영화 시작 약 15분 전, 쿠라게-보와 룩소 인형들(인형옷을 입고 탈을 쓴 퍼포머들)과 함께 상영장 밖에 등장해 관객들과 포토타임도 갖고 사인도 해주었다. 쿠라게-보 인형이 달린 모자를 쓰고, 사진 찍힐 때마다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반복하는 그는, 이 날 완벽한 엔터테이너였다. 그리고 영화 상영 후 질의응답 시간 중 “어떻게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사람들이 날 잊어도 괜찮다. 난 지금 [충분히]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무라카미와 시카고현대미술관의 수석큐레이터 마이클 달링(Michael Darling)과의 대담 시간은 관객 입장에서 시간적, 내용적으로 조금 아쉬운 면이 있었다. 〈해파리 눈〉은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일본의 환경, 종교 등 사회문제를 다루고 있다고도 볼 수 있고 또 작가 역시 <크리에이터스 프로젝트(Creators Project)>와 같은 매체에서 이를 언급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번 행사에서 달링이 구체적인 설명을 유도했을 때 작가는 명쾌한 답변이나 작품 설명/해석을 꺼렸다. 자신의 예술작품의 ‘의미 없음(meaninglessness)’에 대한 언급도 곁들였다. 달링(Michael Darling)과의 대담 중 “이런 말이지?”, “아, 뭐, 그렇다고 할 수 있겠다.”라는 식으로 뭉뚱그려 넘어가는 부분도 꽤 있었다. 어쨌든 작가의 이런 태도는 이 작품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해석할 여지를 마련해 준다.
무라카미는 이미 이 영화의 후속편을 만들고 있다. 회화나 조각 작업과는 달리 영화에서는 다양한(혹은 무한한?) 스토리텔링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 영화 시리즈가 상당히 ‘장수’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인기 많은 일본 망가나 아니메 시리즈처럼 말이다. 무라카미의 인기와 작업/사업 스케일 또한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무라카미 랜드’에 두 시간 넘게 앉아 있다가 현실로 돌아와서 드는 생각은, 이러다가 언젠가 그는 디즈니 랜드를 넘어서는 최고의 테마파크를 만들지도 모르겠다.
무라카미 다카시(Takashi Murakami) 1962년 일본 도쿄 출생. 도쿄예술대학 일본화과 학사(1986) 및 동 대학원 미술학 박사(1993) 졸업. 1996년 회사 ‘히로폰 팩토리’ 설립(2001년부터 ‘카이카이 키키’로 변경). 2001년 그가 기획한 그룹전 〈수퍼플랫〉이 LA현대미술관에서 크게 주목 받은 후, 다음 해 2002년 럭셔리 패션 브랜드 루이비통과 협업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LA현대미술관(2007), 브루클린미술관(2008), 프랑크푸르트현대미술관(2008), 빌바오구겐하임미술관(2009)에서 회고전. 이 외에도 도쿄현대미술관, 삼성미술관 플라토, 카타르박물관기구(Qatar Museum Authority), 베르사유궁전(Palace of Versailles), 카르티에현대미술재단(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 서펜타인갤러리(Serpentine Gallery) 등에서 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