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식욕: 미국 미술, 문화, 그리고 요리展
Art and Appetite: American Painting, Culture, and Cuisine
2013. 11. 12~2014. 1. 27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Art Institute of Chicago)(http://www.artic.edu/art-and-appetite-american-painting-culture-and-cuis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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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man Rockwell 〈Freedom from Want〉 1942. Lent by the Norman Rockwell Museum, Norman Rockwell Art Collection Trust. © SEPS by Curtis Licensing. All Rights Reserved.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에서 미국의 음식 문화를 주제로 한 전시 <미술과 식욕: 미국 회화, 문화, 그리고 요리>를 열었다. 지난 2013년 추수감사절에 맞추어 개최해 연말연시에 시카고 시민들뿐만 아니라 외부 방문객들의 많은 관심을 끌었다. 약 100여 점의 18세기~20세기 회화, 조각, 공예품을 시대별로 각각 자세한 설명과 함께 소개하며 미국의 음식 및 소비 관련 문화사(文化史)를 총정리했다. 명절 기간 중 가족 단위 관객을 겨냥한만큼 리서치와 마케팅이 돋보이는, 재미도 있고 유익한 전시였다. 전시와 함께 온라인 요리책도 제작됐는데, 링크된 페이지에서 시카고를 대표하는 32명의 요리사가 알려주는 약 50가지의 미국요리 (칠면조 요리, 미트볼, 팟파이, 치즈 케이크, 진저 비어 등) 레시피를 받아볼 수 있다.
추수감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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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ris Lee 〈Thanksgiving 〉 c. 1935. Art Institute of Chicago. Mr. and Mrs. Frank G. Logan Purchase Prize Fund_추수감사절 준비가 한창인 1930년대 어느 시골집 부엌 풍경. 이제 막 도시에서 도착한 듯한 잘 차려입은 여자(중앙)와 바쁘게 음식을 준비하는 아낙네들의 대비가 재미있다.
전시장의 첫 번째 섹션은 추수감사절을 소재로 한 그림들로 꾸려졌다. 추수감사절은 미국의 대표적 명절 중 하나로, 마치 한국인들이 추석을 지내듯 미국인들은 매년 11월 네 번째 목요일에 고향을 찾아 대이동을 하고 가족과 함께 푸짐한 점심 겸 저녁을 먹으며 지낸다. 이 때 구운 칠면조를 주 요리로 먹는 게 전통이다. 추수감사절 다음 날은 대형 상점 및 소매상들이 파격 세일에 돌입하는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 이로써 미국인들의 소비활동이 가장 활발한 크리스마스 쇼핑 시즌이 시작하고, 이렇게 자본주의의 선두자 미국에선 ‘연말연시’가 조금 일찍, 11월 말에 세일/쇼핑과 함께 시작한다. 그리고 그 축제 분위기는 1월에 시작하는 풋볼 시즌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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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y Lichtenstein 〈Turkey 〉 1961. Private collection. © Estate of Roy Lichtenstein.
본래 영국 청교도들의 종교행사였지만 1863년 링컨 대통령에 의해 전국민적 공휴일로 지정된 이후, 추수감사절은 미국 사회의 산업화와 함께 ‘발전’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20년대 필라델피아, 디트로이트, 뉴욕 같은 대도시의 상점들이 소비자를 끌어모으기 위해 시내 ‘추수감사절 퍼레이드(Thanksgiving Day Parades)’를 후원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명절의 꽃, 연례행사가 되어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이 중 가장 유명한 메이시(Macy’s) 백화점의 퍼레이드는 뉴욕에서 1924년 시작해, 텔레비전이 보급되기 시작한 1952년부터는 추수감사절 날 오전 전국에 생중계되고 있다. 이렇듯 추수감사절은 일찍이 ‘쇼핑’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원예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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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phaelle Peale 〈Still Life - Strawberries, Nuts, and Citrus 〉 c., 1822. Art Institute of Chicago. Gift of Jamee J. and Marshall Field.
원예학은 18세기 후반 농부들은 물론 도시의 학자들 사이에서 새로운 관심사가 되었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이 ‘자연’에 더 관심을 갖게 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고, 그들은 자연의 세계를 보다 현대적, 과학적으로 접근하기를 원하였다. 이 분야에서 중요한 인물은 화가이자 발명가였던 찰스 윌슨 필(Charles Wilson Peale). 그는 독립전쟁 참가 후 필라델피아에 정주하며 원예학 개발, 미술학교 창립, 스팀 버스 발명 등의 다양한 업적을 남겼다. 그 중 특히 미국 역사책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업적은 미술품과 자연물을 함께 수집, 연구하는 박물관을 설립한 것이다. 그의 동생은 유명한 정물화가 제임스 필(James Peale)이었고, 유럽 미술 거장들의 이름을 딴 자식들도 모두 화가로 키워내는데, 그 중 라파엘 필(Raphaelle Peale)은 미국 최고의 정물화가로 칭송받는다. 아래 라파엘 필이 그린 정물화에서 주목할 점은 모두 다른 계절에 수확이 가능한 각종 과일(딸기, 감귤, 약간 마른 포도)과 견과류(아몬드, 도토리)를 한데 모았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의 아버지가 ‘핫하우스’라고 불렀던 고온의 온실에서 계절과 관계없이 재배한 재료들일 것이다. 중국자기도 눈에 띈다.
세계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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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phaelle Peale 〈Still Life - Strawberries, Nuts, and Citrus 〉 c., 1822. Art Institute of Chicago. Gift of Jamee J. and Marshall Field.
무역과 운송시설이 발달하면서 18세기 미국 도시의 특권층들은 남미나 지중해에서 들여 온 오렌지, 레몬, 파인애플, 바나나 같은 열대 과일을 맛볼 수 있게 되었다. 유럽이나 동아시아에서 물 건너 온 이국적 디자인의 자기, 유리 제품도 상류사회에서 인기를 끌었다.
파티와 피크닉
미국에 레스토랑이 생기기 시작한 건 남북전쟁 (1861~65) 이후부터다. 그 전만해도 외식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 각자 집에서 요리/식사하는 게 당연했고, 여행객들은 여관에 딸린 간이 식당이나 선술집을 이용했다. 프란시스 에드몬즈(Francis W. Edmonds)가 그린 〈미식가〉는 미국 역사에서 거의 최초로 이러한 남북전쟁 전의 여관 풍경을 묘사한 그림으로 손꼽힌다. 그림의 주인공은 돼지고기를 서빙받으며 앉아있는 뚱뚱한 ‘미식가’ 남자가 아니다. 구도의 중심부분에 있는 돼지고기와 소고기 덩어리가 이 그림의 포인트다. 소고기가 북부 지역의 표준 메뉴였고 돼지고기가 남부를 대표하는 요리였기 때문에 이 그림은 사실 남북간의 정치적 분열을 상징화하고 있는 것이다. 에드몬즈나 루이스 크리멜(John Lewis Krimmel) 같은 19세기 중반 몇 화가들은 뉴욕이나 필라델피아에서 네덜란드나 영국의 정통 서양풍속화(genre painting)를 공부한 후 이 장르를 미국의 문화에 맞게 접목시켜, 미국인의 일상을 해학적으로 표현하고 미국 정치, 사회를 풍자하는 그림을 그리며 주목 받았다.
전전(戰前) 풍요와 다이닝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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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ed by Theodore Russell Davis. Made by Haviland & Co., Limoges, France, founded 1842. Oyster Plate, designed 1879, produced 1880/87. Through prior gift of Joseph L. Block, Leigh B. Block, Mrs. Oscar Serlin, and Mrs. Daniel Saidenberg in memory of Mr. and Mrs. L.E. Block, Chicago; American Art Purchase Fund_굴 모양 장식이 있는 굴 서빙용 접시. 이렇게 용도에 맞는 무늬 장식을 넣는 식기 디자인이 19세기 후반 유행이었다.
19세기 초중반, 미국의 소비문화가 발전하면서 기존에 상류사회에만 국한되어 있던 집안 꾸미기에 대한 관심이 중산층 가정에까지 확산되었다. 이 새로운 중산층 트렌드에서 정물화 그림은 주요 상품이 되었다.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절주/금주 운동이 벌어졌지만, 이 시기에 제작된 정물화 그림들 안에 와인, 셰리주, 샴페인을 포함 여러 종류의 알코올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면 금주 운동의 사회적 효과는 별로 없었던 듯 하다. 19세기 중반 미국 인테리어 디자인과 관련해 기억해야 할 점은, 당시 다이닝룸은 보통 사냥 도구나 동물 박제 등으로 꾸며진 ‘남성적’인 공간이었다는 것이다. 남성 가장을 중심으로 여러 식사예절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사회생활 에티켓이 교육, 연습, 실천되는 바깥사회의 축소판 같은 곳이었다. 반면 음식을 준비하는 ‘백스테이지’ 같은 부엌은 여자들이 꾸려나갔다. 당시 벽난로가 철제 스토브로 교체되는 등 부엌에도 현대화가 시작되면서 여자들은 최신 기술도 익혀야하는 과도기였다.
전후(戰後) 대호황 시대의 음식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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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J. McCloskey 〈Wrapped Oranges〉 1889. Amon Carter Museum of American Art, Fort Worth, Texas, Acquisition in memory of Katrine Deakins, Trustee, Amon Carter Museum of American Art, 1961–1985.
전후 1870년대부터 1900년까지는 전무한 경제 급성장과 더불어 물질주의도 함께 발전된 시기다. 이런 문제를 비꼰 마크 트웨인과 찰스 두들리 워너의 소설 제목을 따 ‘도금시대(Gilded Age)’ 혹은 ‘금박시대’라고도 불리운다. 당시 구매력이 사회적 지위와 동일시되는 현상이 생겨났는데, 이런 소비 행태를 두고 1899년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 소소타인 베블렌(Thorstein Veblen)은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라고 묘사한 바 있다.
이 때 미술사적으로 주목할 점은, 사치스러운 사회 분위기를 비판이라도 하는 듯 도리어 수수한 주제를 간결한 구도로 묘사한 정물화가 많이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윌리엄 맥클로스키가 그린 〈종이로 싼 오렌지〉에서 작가가 형, 질감, 색감 등 대상의 조형미에 집중한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오렌지를 싼 박엽지의 반투명함과 다양한 주름 묘사가 뛰어난 걸 볼 수 있는데, 이는 당시 작가의 잘 알려진 ‘전공’ 기법이었다. 작가가 오렌지만이 아닌 종이에 싸여 있는 오렌지를 대상으로 삼은 일 또한 특별한 의미가 있는데, 당시 음식을 종이에 싸서 운반하는 것 자체가 역사적으로 새로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종이 포장과 더불어 냉장기차도 발명되어 음식 운반 발달과 음식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트롱프뢰유(trompe l’oeil)와 정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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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Michael Harnett 〈For Sunday's Dinner〉 1888. Art Institute of Chicago. Wilson L. Mead Fund.
1880년대에는 음식을 주 대상으로 한 트롱프뢰유 회화가 눈에 띠게 번성했다. 트롱프뢰유란 불어로 ‘눈속임’이란 뜻으로, 보는 사람들이 실물인 줄 착각하도록 만든 그림을 뜻한다. 이 기법은 회화가 모조/모방이 아닌 창조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미술평론가들 사이에서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폭넓은 중산 계층의 각종 상인들, 특히 음식점이나 백화점 경영인들 사이에서는 큰 인기였다. 상점에 걸린 트롱프뢰유 정물화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었다.
트롱프뢰유 정물화가 대중적으로 익숙해지자, 어떤 작가들은 이를 정치/사회적 논평의 매체로 이용하기도 했다. 기존의 정물화에서 새는 보통 화려한 깃털과 함께 표현되며 부를 상징하는 동물이었지만, 아일랜드 이민자였던 윌리엄 마이클 하넷은 털이 다 뽑혀 거꾸로 매달려 있는 앙상한 닭 그림을 그리고 〈일요일 저녁식사 용〉이란 제목을 붙여 계급사회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당시 펜실베니아 주의 한 탄광에서 아일랜드 이민 노동자들이 파업을 일으켰다가 목 매달리는 사건이 있었다.
금주법과 이후 칵테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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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ed by Norman Bel Geddes. Manhattan Cocktail Set, designed 1934/35; produced c. 1939–41. Art Institute of Chicago. Restricted gift of Charles C. Haffner III_당시 신기술이었던 크롬 도금. 현대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1919년 전국금주법이 제정되면서 주류의 제조, 판매, 운반, 수출입이 금지되었다. 남북전쟁 때부터 미국 내 곳곳에서 금주운동은 계속 있어왔는데, 제1차 세계대전 중 곡물 절약, 작업 능률 향상, 맥주산업을 주도하던 독일인에 대한 반감으로 추진되던 금주법이 마침내 전국화된 것이다. 물론 금주법은 완벽하게 지켜질 수 없었다. 밀조 밀매가 판을 쳤고, 술 가격은 올랐지만, 사람들은 계속 술을 마셨다. 이 때가 바로 그 유명한 알 카포네가 시카고를 중심으로 밀주, 매춘, 도박장 사업을 벌이며 부와 세력을 한창 확장하던 때다. 1920년대는 자동차가 보급되고 재즈가 꽃피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1929년 대공황이 시작되고, 1933년 금주법도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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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ward Hopper 〈Nighthawks〉 1942. Art Institute of Chicago. Friends of American Art Collection.
대량소비시대와 팝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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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yne Thiebaud 〈Salad, Sandwiches and Dessert〉 1960. Lent by the Sheldon Museum of Art, University of Nebraska-Lincoln, NAA–Thomas C. Woods Memorial. Art © Wayne Thiebaud/Licensed by VAGA, New York, NY.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음식/소비문화는 전례없는 속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여기서 가장 주목할 점은 가공식품의 출현이다. 각종 고기나 채소뿐만 아니라 스프까지도 이미 만들어져 통조림되어 판매되기 시작했고, 즉석식 디저트 재료까지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 신세계가 펼쳐졌다. 이런 현상을 위트있게 혹은 역설적으로 시각예술로 풀어내며 미국의 ‘팝 아티스트’들이 같은 시기 부상했다. 뉴욕 작가 톰 웨슬만이 만든 정물화 구도의 콜라주에는 당시 ‘핫’했던 상품들이 등장한다. 맥주 회사 발렌타인(Ballantine)은 1950년대 말부터 뉴욕 양키스를 후원하며 미국의 제일 브랜드로 성장했고, 시리얼 또한 당시 광고에 많은 돈을 투자하며 대중화되었다. 20세기 후반을 다룬 이 섹션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클래스 올덴버그가 1960년대에 제작한 거대한 계란후라이 〈Fried Egg〉와 거대한 껍질 콩 〈Green Beans〉이다.
이처럼 이번 전시는 처음부터 끝까지 ‘미국’과 ‘소비문화’에 초점을 둔 전시였다. 대규모의 음식 관련 전시인만큼 관객 앞에서 직접 요리를 해주는 퍼포먼스로 잘 알려진 리크리트 티라바니야(Ritkrit Tiravanija)나 앨리슨 놀즈(Alison Knowles)의 작업도 선보였을 법하지만 실험미술은 철저히 배제되었다. 대신 대중문화와 상업성에 무게를 두었고, 그래서 앞서 언급했듯이 전시 일환으로 미국음식 요리사들과 함께 온라인 요리책까지 제작한 것이다. 이 전시에 대해 몇몇 시카고 문화미술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 기회가 있었는데, 그 반응은 호불호가 명확했다. 미술관의 이러한 상업성을 마땅찮은 사람들, 미술을 문화의 한 일부로 이해하는 사람들로 나뉘는 듯 하다.
* 위 글에 사용된 그림 설명과 미국 역사 이야기는 미술관에서 제공한 설명서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