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키 사와展
Lenticular
2013. 10. 5~2014. 1. 5 던디컨템포러리아트(Dundee Contemporary Arts)(http://www.dca.org.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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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een Park> HD컬러비디오, 사운드 8분 40초 2006 Courtesy the artist and James Cohan Gallery and OTA Fine Art, Japan. Photo by Ruth Clark for DCA.
기호와도 같은 난해한 현대미술에 머리가 지끈하는 사람에게 ‘미디어 아트’는 미지의 영역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더욱이 작가의 손길을 통한 따뜻한, 인간적 자취를 풍기기보다는 기계를 통해 생산/재생되는 미디어 아트에 차가움과 삭막함을 느끼기도 십상이다. 하지만 비디오 아트 작가 히라키 사와(Hiraki Sawa)를 언급할 때면 ‘몽환적(dreamlike)’, ‘향수(nostalgic)’ 같은 수식어가 흔히 따라 다닌다. 일본에서 태어나 영국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작가 히라키 사와의 개인전 <Lenticular>가 지난해 말 던디컨템포러리아트에서 열렸다. 총 8점의 영상 작업을 선보인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첫 작품인 <Airliner>를 포함,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Lenticular>를 만나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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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nticular>전 전시 전경 2013~2014 던디컨템포러리아트 갤러리 2 Courtesy the artist and James Cohan Gallery and OTA Fine Art, Japan. Photo by Ruth Clark for DCA.
전시 제목 ‘렌티큘러(lenticular)’는 영어로 렌즈 모양을 뜻하는 형용사다. 렌즈 두 개를 붙여 놓아 양면이 볼록 튀어나온 렌즈콩(Lentil)과 같은 모양을 지칭한다. ‘렌티큘러’는 특별히 구름과 은하계의 모양을 설명할 때 주로 사용되는 단어로, 이러한 천체 현상에 깊은 관심을 갖은 작가의 세계관을 반영하고자 전시 제목으로 삼았다. 그래서 전시의 전체적 분위기가 몽환적인 밤하늘과 깊은 심연의 우주를 닮아 있었다. 또한 ‘렌티큘러’는 인쇄의 한 방법을 의미한다. 여러 개의 이미지를 겹쳐, 보는 각도에 따라 움직임이나 모양 등이 달라 보이게 하는 기술을 말한다. 쉬운 예로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을 보았을 법한 오른쪽, 왼쪽에서 보면 달라 보이는 입체 책받침을 들 수 있다. 던디컨템포러리아트의 프린트 스튜디오를 방문하고 렌티큘러 기술에 대해 알게 된 히라키 사와는 이에 큰 인상을 받고 현재 그 방법을 사용한 작업을 제작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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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eament> 이중채널 컬러비디오, 사운드 18분 47초 2012 Courtesy the artist and James Cohan Gallery and OTA Fine Art, Japan. Photo by Ruth Clark for D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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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eament> 이중채널 컬러비디오, 사운드 18분 47초 2012 Courtesy the artist and James Cohan Gallery and OTA Fine Art, Japan. Photo by Ruth Clark for DCA.
작가의 가장 최신작인 <Lenticular>는 하나의 스크린 위에 펼쳐지는 영상 작업과 지붕 모양을 닮은 조형물, 그리고 그 위로 투사되는 또 하나의 영상까지 합쳐져 하나의 작품을 이룬다.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된 이 작품은 던디 밀즈천문관측소(Mills Observatory)에서 촬영됐다. 한 벽면을 가득 채운 대형 스크린 위로, 비록 정규 교육은 받지 않았지만 관측소에서의 오랜 경험으로 태양계와 별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천문학자 로버트 로(Robert Law)가 천천히 지나가며 그와 관측소, 하늘과 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동시에 관측소의 천체 투영관(planetarium)을 닮은 반구형 돔에서는 밤하늘의 별들이 눈부시게 펼쳐진다. 돔 밑에 직접 서서 머리 위로 바라본 하늘은 짙은 흑암이 아닌 아련한 빛을 품고 있었다. ‘몽환적’ 단어가 저절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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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nticular> 이중채널 컬러비디오, 사운드, 혼합재료 6분 2013 Courtesy the artist and James Cohan Gallery and OTA Fine Art, Japan. Photo by Ruth Clark for D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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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nticular> 이중채널 컬러비디오, 사운드, 혼합재료 6분 2013 Courtesy the artist and James Cohan Gallery and OTA Fine Art, Japan. Photo by Ruth Clark for DCA.
<Inhere>과 <Unseen Park> 두 작품이 전시 된 갤러리 1은 갤러리 2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2004년 히라키 사와는 런던의 헤이워드 갤러리(Hayward Gallery)와 램버스 구청(Lambeth Council)과 협업하여 8살짜리 아동들이 그린 그림을 소재로 작품을 제작했다. 그 작품이 바로 <Inhere>이다. 작가는 전형적인 일반 가정집 배경에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군데군데 배치했다. 세탁기 옆에서는 우주선이 날아가고, 금붕어 어항 속에는 회전목마가 있다. 비디오와 드로잉이 합쳐지고 현실과 비현실이 만나 꿈과 동화 같은 공간을 만들어낸다. <Inhere> 제작 이후 작가는 한 발 더 나아가 9살 아동들에게 믿기만 하면 만들어지는 그 무언가를 타고 여행하는 상상을 해보라고 권했다. 그 결과물로 탄생한 <Unseen Park>에서는 텅 빈 놀이 공원을 종이로 접힌 물체가 배회한다. 이처럼 히라키 사와의 작품은 어린 시절 우리가 한 번쯤 상상해 보았을 법한 세계를 영상으로 눈앞에 펼쳐 놓아 관객의 동심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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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een Park> HD컬러비디오, 사운드 8분 40초 2006 Courtesy the artist and James Cohan Gallery and OTA Fine Art, Japan. Photo by Ruth Clark for DCA.
아쉽게도 히라키 사와의 전시를 놓친 관객이 있다면 반가운 소식이 있다. 백남준아트센터 기획전 <달의 변주곡>(2014. 2. 26~6. 29)(http://njp.ggcf.kr/archives/exhibit/moon_music)에서 히라키 사와의 6채널 비디오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현실에 기반하지만 스크린 위의 현실이기에 믿기 힘든, 다분히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인 공간을 펼쳐 보이는 작가의 작품을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히라키 사와의 작품은 매일 마주하는 평범한 일상을 불편하리만큼 가까이 비추어 그 익숙함에 눈길을 주고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봐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