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포스의 시간
시에 테칭(Tehching Hsieh, 1950년생)은 감금, 결박, 노숙 등 자기 자신을 극한 상황에 몰아넣는 퍼포먼스로 삶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어왔다. 그가 최근 디아 비콘에서 개인전 <Lifeworks 1978–1999>(2025. 10. 4~2027. 10. 4)를 열었다. 작가가 20여 년간 실행해 온 6번의 주요 퍼포먼스 기록물을 한자리에 모았다. 필자는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시에 테칭의 예술을 이민자로서의 정체성과 결부해 다시 읽는다.
대만에서 태어난 시에 테칭¹⁾은 현지에 퍼포먼스 담론과 실천이 활발하지 않았던 시절부터 퍼포먼스에 도전해 왔다. 그가 미술계에 이름을 알린 작업은 일생을 오롯이 작업에 투자하여 일상과 작업의 시간을 동기화한 ‘생애 퍼포먼스’다. 뉴욕에서 이뤄진 이 퍼포먼스는 실험성을 인정받았고, 작가는 행위예술의 선구자로 우뚝 섰다. ‘생애 퍼포먼스’는 여섯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바로 삶의 조건을 설정하고 1년간 수행을 이어나간 다섯 번의 <One Year Performance>와 13년간 예술활동을 하되, 발표하지 않는 <Thirteen Years Plan>(1986~99)이다. 이번 전시는 에이드리언 히스필드가 시에의 예술에 관해 집필한 최초의 단행본 『Out of Now』(2008)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히스필드는 오랜 기간 시에를 연구한 큐레이터다. 그래서인지 퍼포먼스 기록 영상을 제외하면, 전시는 대체로 책이 기술한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간 질적으로 높다고 평가되었던 작업을 미니멀한 방식으로 전시해 온 디아 비콘다운 태도로도 보였다. 그렇지만 작가는 대표작 이전에도 다수의 회화를 제작하고, 실험적 퍼포먼스를 행한 바 있다. 이번 회고전은 그의 주요 작업에 집중할 자리를 만들었으나, 여타 작업을 적극 소개하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삶의 돌파구, 불온한 퍼포먼스
더불어 전시 구성에선 작가의 여섯 번에 걸친 퍼포먼스에, 대만에서의 시절이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 누락됐다. 기존 화단의 폐쇄성에 반발하면서 태동한 대만 모더니즘은 시에의 초기 작업과 예술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작가는 냉전과 계엄령으로 억압된 분위기에서 야수파, 입체파, 표현주의를 비롯한 서구 미술과 당시 대만에 유행한 실존주의 문학을 받아들였다. 의무 군 복무 시절에도 폐쇄적인 분위기에서 그림을 그려 나갔다. 이후 1973년 개인전을 열었으나, 스스로 충분한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여긴 작가는 퍼포먼스아트라는 새로운 돌파구를 꾀했다. 회화가 자신의 실험 정신을 펼치기엔 불충분하다고 느꼈다.
대만에서의 퍼포먼스는 위기에 처한 실존과 육체성, 시간의 흐름에 관한 작업이었다. 그 밖에도 작가는 미국의 액션 페인팅, 해프닝을 비롯해 일본 구타이그룹 등에 간접적 영향을 받았으리라 짐작된다. 시에는 계엄령으로 무겁게 가라앉은 대만을 벗어나, 급진적 퍼포먼스를 도모하려 1974년 미국으로 밀입국했다. 그리고 세계 미술의 중심지라 여겼던 뉴욕에 다다랐다. 1978년 한 해에만 <Half Ton>, <Paint Stick>, <Throw Up>, <Manure Buckets> 등 자학적 퍼포먼스를 행했다. 대만에서 형성된 실존적 고뇌에 빠진 인간상의 표현이자, 이주민으로서의 정체성 고민, 두 나라에서 받은 사회적 압력에 대한 갈등을 표출했다. 이는 작가가 첫 번째 <One Year Performance>인 <Cage Piece>(1978~79)를 도출하는 계기로 작동했다.
도미 후 미등록 이주민으로 지내던 시절, 시에가 여타 중화권 이민자들과 교우 관계를 맺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이번 전시의 서문에는 관련 있는 예술가로 솔 르윗과 온 카와라, 한네 다보벤이 언급됐다. 서구에서 이미 정전(canon)이 된 작가들과의 맥락에서 시에의 작업을 서술한 것이다. 그러나 전시 개막식에서 작가는 뉴욕에서 오히려 대만 작가와 소통하고 있었음을 이례적으로 밝혔다. 시에가 정착한 소호는 중국, 대만, 홍콩 출신 이민자 다수가 거주하는 차이나타운 인근 지역이다. 중화권 이민자들이 작가의 생활과 작업에 실질적 도움을 준 것이다. 그와 관계한 예술가로는 아이 웨이웨이, 프로그 킹, 쉬 빙 등이 있다. 이들은 현재 세계적 명성을 얻은 미술가다. 이들과의 관계는 사적 영역으로 밀려나 잘 드러나지 않았으나, 작업을 재독하는 중요한 단서임이 틀림없다. 이러한 맥락을 간략하게나마 논한 의도는 시에의 작품을 정체성의 표상으로 환원하지 않고, 그의 사유의 역사적 조건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이번 디아 비콘 회고전이 소위 ‘완성도 높은’ 작업으로만 구성되고, 미국의 정전에 오른 작가와의 관계성에 국한하여 논의된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짚어볼 것은, 시에 본인이 여섯 퍼포먼스의 완결성을 중시해 습작을 거의 숨기다시피 했다는 점이다. 여기엔 작품의 역사성보다 예술성과 퀄리티를 중시하는 고전적 태도가 깃들어 있다. 또한, 작품의 의미가 출신 국가나 소수자 정체성으로 국한되는 것을 피하려 했던 작가의 의도를 큐레이터가 반영한 것으로도 보인다. 하지만 정체성 표명이 시에의 궁극적 목적이 아니었다 할지라도, 그의 작업을 대만과 미국 내외부의 상황으로부터 완전히 단절한 채 읽기는 힘들다.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보편성으로 읽히기를 바라는 작가의 의도가 꼭 역사적, 지역적 관점의 독해와 충돌한다고 볼 필요는 없다. 이러한 독해는 오히려 작업의 보편성이 공감받는 계기가 될 뿐만 아니라, 넓고 풍부한 해석을 가능케 한다. 작업을 1970~80년대 미국 동부의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면, 그의 출생지인 난저우나 그와 같은 시대에 퍼포먼스아트를 전개한 한국 미술의 맥락에서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여타 형식주의 예술가의 작업이 ‘서구 백인 남성’과의 연관성 아래 연구된 지도 오랜 시간이 흘렀다. 시에 테칭의 작업도 지역 및 역사적 맥락을 생략해 보기보단, 그가 실존주의적 보편성을 화두로 가져온 역사적 계기와 비서구 출신 유색 인종 남성으로 살아온 시공간을 되짚는 방식을 대안 삼아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1) 시에 테칭(謝德慶)은 영미권에선 ‘Tehching Hsieh’, 한국에선 이를 음차한 ‘테칭 시에’로 불려왔다. 그러나 이 글은 시에의 대만 시절과 미국 내 중화권 출신 작가와의 교류를 논하기에 출신지에서 사용하는 ‘성-이름’ 순서로 기재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