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의 방: 한국과 중동의 남성성展
2015 / 01 / 18
한국과 중동의 만남, 남성성 담론의 장을 열다
그만의 방: 한국과 중동의 남성성展 2014. 12. 19~2015. 1. 25 아트선재센터(http://artsonje.org/14_12_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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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연 〈남자세상〉 단채널 비디오 6분 57초 2013
‘한국과 중동의 남성성’이라는 부제를 단 〈그만의 방〉전은 구체적이면서도 의아하다. 한국과 중동이라는 특정 지역에 한하여 남성 담론을 펼친다는 점에서 구체적이지만, ‘남성성’에 관해 이야기를 시도해본다는 점에서 의아하다. 예술에서 주된 주제로 다뤄지는 여성성과는 다르게 남성성은 다소 생소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 이후 연이어 대형 전시로 치러진 〈쉬린 네샤트(http://www.mmca.go.kr/exhibitions/exhibitionsDetail.do?menuId=1030000000&exhId=201403060000061)〉나 〈이불(http://www.mmca.go.kr/exhibitions/exhibitionsDetail.do?menuId=1010000000&exhId=201409050000142)〉전이 여성성을 내세운 전시였다는 사실을 고려해 본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만의 방〉전은 왜 남성성에 주목한 것일까? 이에 전시는 가부장적 인식이 깔려있는 우리나라에서 최근 발생하고 있는 기이한 현상에 관한 의문으로부터 출발했다고 답한다. 여성 차별을 완화하기 위한 제도가 오히려 남성 역차별을 유발한다고 주장하면서 남성 권익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점차 확대돼 가고 있다는 것. 이러한 상황에서 전시는 한국 작가와 한국과 마찬가지로 남성중심주의 사회로 알려진 중동 지역 작가를 초대해 남성 담론에 관한 이해를 넓히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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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작품은 이동용의 〈아버지〉다. 이것은 일반 가정의 가족사진 수백 장으로 한 원기둥 전면을 감싼 작품이다. 이 사진은 모두 각 가정의 아버지가 찍었기에 사진에서 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전시장 중앙에 위치한 박재영의 〈P 씨의 아지트〉는 가상의 우익단체에 소속된 60대 후반 남성 P 씨를 소개하는 컨테이너 설치작품이다. 이는 흔히 기득권층으로 분류되지만 사회에서나 가정에서나 권위를 상실한 무직 중·노년 남성들의 처지를 암시한다. 이처럼 일부 한국 작가는 ‘아버지’라는 존재를 통해 남성성을 재고하고 있다. 한편, 오인환의 〈나의 아름다운 빨래방 사루비아〉는 작가가 제작한 밀폐된 빨래방에 성인 남성을 한 명씩 초대해 그들의 옷을 세탁해 주는 작품이다. 옷을 어느 정도 벗을지는 관객의 선택이며, 빨래가 진행되는 4시간가량 작가와 관객은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동성애자인 작가와 다른 남성들의 관계를 탐구하는 이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는 사진 결과물을 프로젝션하는 형태로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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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지역 작가 중에는 특정 지역의 사회상과 결부된 남성성을 보여 주는 작가도 있었다. 자히 하크몬의 소형 경비실 설치작품인 〈임시자율공간(T.A.Z.)〉은 군 복무를 갓 마친 미혼 남성이 주로 경비원으로 일하는 이스라엘의 사회상을 보여 주며, 아흐메트 오구트의 〈쌍방의 이슈: 발명 행위〉는 음식을 운반하는 터키 남성 배달원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 연작이다. 그런가 하면, 칼레드 라마단의 〈카이로의 마을버스 X〉는 2013년 카이로의 한 버스 안에서 녹음된 세 남자의 대화를 바탕으로 한 사운드 작품이다. 관객이 듣는 이들의 대화는 1년 후 이집트에서 벌어진 군사정권의 집권을 예고하는 것인데, 작가는 국가의 폭력을 고발하는 동시에 세 남성의 목소리를 여성의 목소리로 바꿔 여성운동가의 입장으로 확대, 조명했다.
출품작 이외에 마련된 특별 공간들도 주목을 끌었다. 그중 하나가 ‘남학생 휴게실’이다. 이곳은 최근 모 학교의 ‘여학생 휴게실’을 둘러싸고 일어난 역차별 논쟁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제작된 공간이다. 전시장 한편에 실제 휴게실처럼 컴퓨터와 소파, 각종 잡지가 배치된 이 공간은 남성의 주된 관심사를 조망하는 서적이나 이슈들을 통해 전시와 연관된 남성성 담론을 한층 확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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