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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트래펄가광장의〈네번째기단프로젝트〉

2015/02/08

역사적 공간에 세워진 현대미술의 기념비
런던 트래펄가 광장의 〈네 번째 기단 프로젝트〉

/ 윤우학(미술평론가, 충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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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리나프리치〈Hahn/Cock〉섬유유리높이472cm2013런던트래펄가광장설치전경

트래펄가 광장은 런던의 중심부에 위치하는 영국의 상징이다. 유럽을 제패해 가던 나폴레옹의 스페인 연합 함대를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격파하고 영국을 구출한 영웅 호레이쇼 넬슨을 기념해 1841년 건설한 영국의 역사적 자존심을 반영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새해 기념일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가장 관광객이 많이 모여드는 광장으로서 중심부에는 50m 높이의 석주와 넬슨의 기념상이 있으며 그 하단에는 전투의 부조가 조각돼 있을 뿐만 아니라 네 귀퉁이에는 젊은이들이 항상 올라타는 사자상(트라팔가르 전투에서 획득한 프랑스와 스페인 군의 병기를 녹여 만든 청동 사자상)이 놓여 있다. 그 밖에도 분수와 기념상 그리고 비둘기 떼들이 하나가 돼 관광객의 마음을 녹여 내는 곳이다.

광장의 전면이 매스컴에 많이 나와 많은 사람들에게 낯익은 이미지와 친밀감을 준다. 바로 그 뒤에 배경처럼 자리 잡은 신고전주의 양식의 돔 건물이 바로 영국의 3대 미술관 중 하나인 내셔널갤러리인 것을 안다면 이곳이야말로 런던의 문화적 자존심을 드러내는 중요한 문화예술의 중심지임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열리는 많은 예술 이벤트는 세계의 이목을 끈다.

그 중에서도 〈네 번째 기단 프로젝트(Fourth Plinth Project)〉는 대중과 현대적으로 호흡하며 광장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 넣고 있다. 광장의 남북 네 귀퉁이에는 조각상을 배치하기 위한 기단이 있었는데 북서쪽의 한 기단은 자금 부족으로 1841년부터 1999년까지 빈 공간으로 남아 있었고, 150년 이상 이 기단에 대해 회의와 토론이 허무하게 계속됐다. 따라서 이 공간을 새롭게 채워 런던의 이미지를 역사로부터 자유롭게 하고자 하는 계획이 바로 이 프로젝트의 취지다. 위원회를 조직하고 일련의 토론 끝에 여러 세계적인 작가들을 공모, 초치해 일정한 기간 동안 이 대좌 위를 채우는 것으로 논의가 귀결됐다. 이 아이디어가 의외로 대중에게 호기심과 호응을 얻어 지금은 세계적인 광장 예술 사업이 된 셈이다.

1999년 첫 작업인 마크 월링거(Mark Wallinger)의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에서 시작해 빌 우드로(Bill Woodrow), 레이첼 화이트리드(Rachel Whitread), 마크 퀸(Marc Quinn), 토마스 쉬테(Thomas Schutte),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 잉카 쇼니바레(Yinka Shonibare), 엘름그린 & 드락셋(Elmgreen & Dragset)을 거쳐 현재 카타리나 프리치(Katharina Fritsch)의 작품을 전시 중이다. 모두 비엔날레나 도쿠멘타 등 세계적인 현대미술의 전시에서 이름을 빛낸 작가들인데, 하나 주목할 것은 모두가 다 그 기단의 장소적 의미를 단순히 동상의 대좌로서가 아닌 예술적, 철학적 성찰의 자세에서 되돌아보며 그 발상을 역전시킨다는 점이다. 예컨대 마크 월링거에게 그 기단은 책형의 십자가였던 셈이고, 빌 우드로는 인간의 파괴 행위를 무심하게 바라보는 대좌의 형상을 기괴한 식물의 이미지로 대체해 또 다른 행성으로 변모시켰다.

특히 2005년 마크 퀸의 작품 〈Lapper〉는 애당초 공공조각의 의미를 새롭게 상기시키는 시금석이 됐다는 점에서 성찰적이다. 임신한 장애인의 누드를 조각한다는 것 자체야 크게 문제될 것은 없지만 그것이 공공조각으로서 제시된다면 여러 측면에서 문제를 야기한다. 우선 특정인의 인권에 관한 문제에서부터 그에 반응하는 대중의 보수적인 정서 등 말이다. 설치 전에 약간의 문제가 있었지만, 작품 공개 후 오히려 호감을 얻어 인권의 신화를 창조했다. 그 뒤 베니스비엔날레 기간 동안 이 작품을 수십 배의 크기로 키워 베니스 시내의 해안에 세운 것은 그 신화의 증거라 할 수 있다. 토마스 쉬테의 작업 〈Model for a Hotel〉에는 비둘기들의 거처가 된 휑한 이미지의 야간 광장에 대한 존재적 인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안토니 곰리의 〈One and Other〉는 2009년 7월 6일부터 10월 14일까지 100일간 미리 선택된 2,400명의 사람들이 각자 한 시간씩 좌대를 차지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일반적으로 ‘동상을 위한 대좌’가 갖는 시공간적으로 고착된 선입관을 역전시켰다는 점이 반성적이다. 그의 프로젝트는 책으로 출판됐고 웹사이트에 참여자들의 인터뷰가 실렸다. 잉카 쇼니바레의 〈Nelson’s Ship in a Battle〉은 트라팔가르 전투에 참전한 넬슨의 전함을 ‘커다랗고 작은’ 유리병 속에 포획시켜 전시한 것으로, 광장의 상징성을 모순적으로 되새겨 보게 하는 작업이었다. 엘름그린 & 드락셋의 작품 〈무력한 구조물들(Powerless Structures)〉 역시 강렬해야 할 동상의 조각대를 역전시킨 작업으로서 공공조각의 의미를 성찰하는 작업이다. 2013년 카타리나 프리치의 〈Hahn/Cock〉은 동상의 좌대가 닭의 횃대, 그것도 방사선처럼 빛나는 성질의 새파란 껍질을 가진 수탉의 횃대가 됐음을 보여 준다. 동상을 위한 좌대를 하나의 패러디로 바꾼 셈이다. 그의 유명한 폴리에스테르와 검은 페인트로 만든 어마어마한 왕 쥐의 떼들(그들은 둥글게 바깥으로 배치되고 꼬리는 호의 안쪽에 서로 묶여져 상호 간의 ‘탈출’과 ‘구속’의 모순적 반복을 연상시킨다)은 이미 조각의 기본적인 테마와 재료 그리고 방법론을 초월한 것이었다.

평범하고 단순한 역사적 광장을 문화예술의 실험대로 활용해 주변에 존재하는 미술관의 이미지까지 승화시키고 있는 이러한 프로젝트의 기획이야말로 21세기 문화의 비전을 복합적으로 상징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례를 통해 미래의 삶이 어떻게 주변의 장소와 터전을 일상성 속에서 만나게 할 것이며 그것이 또한 우리의 내적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2015년부터 선보일 한스 하케(Hans Haacke)와 데이비드 슈리글리(David Shrigley)의 기단 작업이 새삼스럽게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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