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경展
2015 / 03 / 06
유럽에서 만나는 아시아 고딕
박찬경展 1. 14~3. 21 런던 이니바(Iniva)
/ 박재용(큐레이터,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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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경>전 설치 전경 2015 런던 이니바 Courtesy Kukje Gallery and Artist. Photo by Thierry Bal
<파경>전은 네덜란드 카스코(Casco), 스웨덴 이아스피스(Iaspis), 영국 이니바 등 3개 기관이 2013년부터 운영한 협력 플랫폼 ‘프랙티스 인터내셔널’ 활동의 하나로 출발했다. 2013년 말, 박찬경은 ‘프랙티스 인터내셔널’이 주최한 <스톡홀름 어셈블리>에 참여했다. 그는 본인의 작업 <신도안>과 관련해 작성한 글을 소개하며 발표를 진행했다. 전통과 숭고, ‘아시아 고딕’을 설명했고, 전통 혹은 뿌리 없음에 관한 생각, 서구적 인민의 개념과 민중 또는 포스트 민중이라는 개념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한 어긋남, 그가 발을 딛고 선 문화적 맥락에서 귀신과 영혼이 나타내는 바에 관한 의견 등을 여러 작가와 큐레이터, 학자들과 주고받았다. (박찬경의 글은 《이플럭스(e-flux)》(http://www.e-flux.com/)에서 ‘On Sindoan(http://www.e-flux.com/journal/on-sindoan-some-scattered-views-on-tradition-and-%E2%80%9Cthe-sublime%E2%80%9D/)’이라는 제목으로 찾아볼 수 있고, <스톡홀름 어셈블리>에서 진행한 발표는 practiceinternational.org(http://practiceinternational.org/)에서 영상 기록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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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미술사 #.1>(부분) 2015 런던 이니바 설치 전경 Photo by Thierry Bal
작가가 진행한 발표에서 언급한 많은 문제 혹은 주제는 2014미디어시티서울에서 전시와 컨퍼런스, 상영회, 도록, 별도로 출간한 단행본으로 구현됐다. 혹자는 2014년 비엔날레가 마치 박찬경의 거대한 개인전처럼 보인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박찬경은 작가가 아닌 행정가-큐레이터 격인 예술 총감독을 맡아 제 생각에 잘 부합하는 작가와 작품뿐 아니라 전혀 다른 방향 또는 출발점으로부터 움직이는 지점들을 배치하고 구성했다. 박찬경의 비엔날레는 모종의 불협화음을 섬세하게 조율한 결과물에 다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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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경>전 전시 전경 2015 런던 이니바 Courtesy Kukje Gallery and Artist. Photo by Thierry Bal
비엔날레 예술감독직을 마치고 작가의 위치로 돌아와 치른 <파경>전에 관해, 협력 큐레이터로 전시 기획에 참여한 입장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이번 전시는 네덜란드 카스코 디렉터 최빛나가 기획했고, 필자는 협력큐레이터로 기획에 참여했다.) 이 전시에서 박찬경은 마치 큐레이터(들)의 영매와 같은 노릇을 했다. 작가와 작업보다 작업 이면에 놓였던 참조점들을 가감 없이 꺼내어 보자는 제안을 받아들였고, 전시장 벽면에 수십 개의 이미지를 붙이고 손으로 각각의 이야기를 쓴 신작 <작은 미술사 #.1>에서는 절대적 대타자로서의 ‘미술사’를 내려놓고 제 작업과 미술 일반을 바라보는 작가-비평가의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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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경>전 전시 전경 2015 런던 이니바 Photo b y Thierry Bal
2014년 비엔날레가 박찬경의 거대한 개인전처럼 보였다면, <파경>은 작은 비엔날레와 다를 바 없는 개인전이라고 할 수도 있다. 전시공간 안에서 박찬경의 ‘작업’은 전시장에 놓인 일곱 테이블 위에 쌓인 갖가지 간행물과 전시도록, 이론서 등과 동등한 비중을 지닌 듯 보이기까지 한다. 작가의 영상 작업인 <신도안>(2008)은 흑백으로 색조를 바꿔 존재감을 줄였고, 무속 행위를 기록한 영상에 여러 모니터를 할애해 관람객이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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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신> 스틸컷 2014 Courtes y Kukje Gallery and Artist
전시에 대한 설명이나 해명 대신 김수영의 시 <거대한 뿌리>를 제시하는 전시장 입구, 굿을 마무리하는 의식(파경)의 가사를 전시장 밖 길에서 보이게끔 설치한 가벽은 <파경>이 지향하는 방향을 명확히 보여 준다. 굿을 마치며 그동안 어떤 위로도 받지 못했던 이름 없는 온갖 혼들을 불러 먹여 보내는 의식(파경)과 같이, 이 전시는 작가의 작업 뒤에 놓였던 온갖 존재들을 불러내 소개한다. 실상은 뿌리 ‘없음’에 관해 말하는 김수영의 시는, 작가가 제 작업의 문제의식을 넌지시 비치는 동시에 자신의 뿌리 없음을 돌려 말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여전히 타자주의(Otherism)에 푹 빠진 서양의 관객들이 <파경>을 이국적인 귀신과 간첩 이야기로 오해하지 않을까 걱정된다면, 균질한 집단으로 관객을 상정한 걱정 또한 일종의 타자주의는 아닌지부터 의심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