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바로 여기展
2015 / 04 / 06
신진작가 공모전, 4인 4색
지금, 바로 여기展 2. 4~15 갤러리그림손(http://www.grimson.co.kr/exhibition/index.htm)
/ 선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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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관 〈선악과(善惡果)〉 철 480×650×800cm 2014
갤러리그림손은 ‘2015년 신진작가 공모전’을 통해 작가 4인을 선정, <지금, 바로 여기>전을 열었다. 선정작가는 김봉경(서울대 동양화과 및 동대학원), 김상연(성신여대 서양화과 및 동대학원), 서병관(경기대 환경조각과), 편대식(고려대 서양화과). 평면/입체, 전통/현대, 구상/추상 등의 작품 양식을 골고루 감안해 선정됐다. 공모전의 미덕은 서로 다른 성향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신인들에게 저마다 가치의 상대성을 가늠해 보는 기회를 제공하는 일. 그럴 경우 작품의 ‘획일성’보다는 ‘다양성’이 더 부각될 수밖에 없다.
김봉경은 비단에 채색 기법으로 동물화를 그린다. 요즘 젊은 작가로는 드물게 전통을 존중하고 고수하면서도 그 내용은 열려 있다. 특히 쥐 같은 동물을 소재로 사회의 집단 이기적인 병리 현상을 넌지시 비꼰다. 기본적으로는 사회적으로 범람하는 니힐리즘에 대한 풍자이지만, 이러한 세태에서 벗어나 반듯하게 살고자 하는, 삶에 대한 스스로의 다짐이기도 하다. 김상연은 숲을 그린다. 재현적인 숲이 아니라 숲에 관한 시각적 촉각적 심리적 경험을 복합적으로 담는다. 그가 그린 숲은 모노톤 색채와 동일한 기법의 반복으로 환원된다. 숲은 하나의 피사체로서가 아니라 작가의 체험 저 깊숙이 내면화된 또 하나의 숲이다. 때로는 깊숙한 바다의 바닥을, 때로는 저 하늘의 구름바다를 떠올린다. 그는 자신의 체험으로 길어 올린 숲, 그 기운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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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대식 〈무제(큐브 No.14)〉 한지에 연필 150×130cm 2011
서병관은 파편화된 인체를 모티프로 한 용접 조각을 제작하고 있다. 철 조각 특유의 차가운 이미지를 선명하게 드러내 작품 내용으로까지 연결시킨다. 반들반들한 인체 형상 군데군데에 부식 표면을 그대로 남겨 상처 입은 듯 비정상의 피부 질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는 단절, 소외, 상실, 고립 등 인간 사회의 소통 문제를 작품 내용의 기본 틀로 삼고 있다. 그는 불완전한 인간 육체를 내면의 세계로 연결되는 ‘정신의 창구’로 설정하고 있다. 육체와 정신의 상호의존성을 적극 피력하는 것이다. 편대식의 작품은 일견 엄격하고 차가운 기하적 추상으로 보이지만, 제작 방식이나 감성은 아주 다르다. 그는 일정한 비율로 점점 작아지는 닮은 꼴 기하 형태를 그려 나간다. 바탕 면(흰 선으로 보이는)을 남겨 두고 연필로 색 띠를 칠한다. 프랭크 스텔라의 <블랙 페인팅>을 떠올린다. 흑과 백에 부여된 ‘그림’과 ‘바탕(지지대)’의 역할을 역전시켜 기이한 일루전 효과를 얻고 있다. 실상 편대식이 그은 선은 기계적으로 보이지만 손맛이 대단히 중시되고 있다. 손 작업은 일정한 규율과 규칙을 세우고 그려 나가더라도, 그 선과 형태는 떨리고 흔들리기 십상이다. 작가는 이 조형의 체험을 자신(혹은 우리 모두의) 삶에 대입한다. 의지대로 풀리지 않는 이 세상살이.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서 자주 목격하는 현상은 작품 형식과 내용의 대립과 충돌이다. 두 요소를 다 잡으려다, 두 요소 다 삐거덕거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이 실험과 방황의 미로를 헤쳐 나와야 비로소 참다운 창작의 길을 걷게 되는 법이다. 이번 전시도 미완의 도정이지만, 신선한 젊은 도전의식만큼은 충분히 감지되는 기분 좋은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