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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적인불협화음

불협화음조차 깨뜨리는 비명
기능적인 불협화음 3. 13~4. 18 문래동 일대

/ 박준상(숭실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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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선영〈기능적인불협화음에복무하는영화스크립트〉2015

지난 3월 13일 오후 4시 30분, 큐레이터 오선영이 주관하는 7 1/2의 프로젝트 <기능적인 불협화음>의 개막 행사 ‘가이드 투어’가 문래동 3가 세계로 안전 앞에서 시작됐다. 누군가 인사말을 하고 또 누군가 그 의의에 대해 설명하는 의례적 개막 행사가 아니었다. 참석자들이 오래전부터 철공소 밀집 지역인 문래동의 한 골목을 둘러보고, 그 투어의 상황과 장면들을 스크립트에 따라 영화화(무대화)하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통보받지 못한 참석자들은 졸지에 영화(제목 <기능적인 불협화음에 복무하는 영화 스크립트>, 감독 김숙현, 주연 이계영)에 출연하게 됐다. 추후 큐레이터로부터 관련된 글을 써 달라는 말을 들은 나는 스크립트와 동영상을 보내 달라고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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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은〈몽상충돌Ⅱ〉종이에잉크58×76.5cm2014

3월 중순의 날씨는 쌀쌀했고, 난생 처음 가 본 문래동 철공소 골목은 불현듯 1970년대의 한 풍경을 연상시켰지만 도리 없이 낯설었으며, 영화의 장면들을 연출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약간은 뜨악해 하면서 투어 대열의 맨 뒤를 따라갔다. 대열의 한 사람이 “전통적으로 철공소 거리인 이곳 주위에는 이곳의 노동자들과 오래전부터 공생해 온 여자들의 유곽이 아직까지 남아 있고, 작업실 임대료 때문에 이곳으로 몰려든 예술가들 또한 그 노동자들과 공생하고 있다”고 말해 줬다. 그제야 이 개막 행사, 투어 또는 영화의 의도가 분명히 드러났다. 오래전부터 그리고 언제나 먹고 사는 일상의 익명적 노동 행위로 인간의 모든 행위가 축소돼 온 이 장소에, 인간의 행동과 기계의 움직임이 분명히 구별되지 않고 인간이 내는 소리와 기계 소리가 늘 뒤섞이는 장소에 예술이 개입하겠다는 것. 설사 ‘기능적인 불협화음’을, 간단히 말해 노동과 예술 사이의 ‘불협화음’을 어쩔 수 없이 낼 수밖에 없다 할지라도 그것이 가당한 일인가? 주연 배우 이계영이 자조적이자 냉소적이자 위악적으로 투어 대열에 속한 자들을 “당신은 서울 서부권 르네상스를 책임질 영등포구의 야심 찬 정책 전문가, 예술로 포장되어 신비로움을 가진 컬처노믹스, 문래동 예술촌의 승화를 염원하는 명품코리아, 창조경제자, 문화적 트렌드 리더, 도시재생 프로젝트, 강압적 헤게모니, 전문가 집단” “충분한 문화자본을 가진 관객”으로 규정한다 할지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분명 문래동의 이 철공소 골목을 지배하고 있는 기계적-비인칭적 노동과 우리가 소위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 사이에 과연 교집합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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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수〈기능적인불협화음에복무하는맞춤작업복〉2015

이 의문을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 줬던 사람은, 예술에 종사하거나 관심 있는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아니었고 바로 우리의 대열을 향해 “무엇 하는 짓이냐” “왜 함부로 남의 건물을 보고 낡았다 하느냐” “여기서 40년 이상 장사해 왔지만 이런 건 처음 본다” “빨리 지나가라”고 소리 지르며 항의했던 새한철강상사의 주인이었다. 바로 그의 항의가 ‘기능적 불협화음에 복무하는’ 이 영화에서 가장 영화적인 동시에 가장 사실적인 장면을 연출해 냈다. 이미 들려오고 있었던 불협화음 사이로 터져 나오는 외침, 불협화음조차 깨뜨리는 비명. 여기서 예술에 대한 노동의 우위를 대전제로 삼았던 1980년대의 민중예술을 환기시키거나 복권시키자고 주장하려는 의도가 내게는 없다. 다만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말하고자 한다. 문래동 한 철공소 주인의 그 행동은 우연히 발생한 한 해프닝이 아니고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남아 있어야 할 물음이라는 것을, 어떠한 예술도 벗어날 수 없는 익명적 삶과 일상(노동을 포함해서 모두가 공유할 수밖에 없는 삶의 최저치), 즉 생로병사(生老病死)에 예술의 모든 것이 한계 지워져 있다는 사실을, 예술은 예술 그 자체를 무한히 부정할 때에만 겨우 ‘예술’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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