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사고 1주년 추모 전시 잇달아 열려
2015 / 05 / 04
함께 슬퍼하고 분노하는 ‘애도의 미술’
세월호 침몰 사고 1주년 추모 전시 잇달아 열려
/ 백기영(경기문화재단 북부사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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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들은 ‘세월호 참사’를 기점으로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한국사회를 조망해 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만큼 지구상의 유래가 없는 초고속 경제성장을 자랑하던 한국사회에서 ‘세월호 참사’가 끼친 영향은 엄청난 것이라는 것을 반증한다. 이 사고는 한국사회가 경제적 성장을 위해서 뒤로 미뤄놨던 많은 가치들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 지난해 4월 16일, 우리는 많은 것들이 물속으로 가라앉는 것을 보았다. 많은 짐을 실은 집채만 한 배가 물 위에 드러누워 빠져드는 것을 보았고 그 배에는 탔던 꽃다운 나이의 아이들과 그들의 수학여행이 가라앉는 것을 보았다. 그것과 더불어 우리 삶의 원초적인 안전도, 배움을 위한 학교도, 따뜻한 위로의 가정도 함께 물속으로 빠져 버렸다. 바다가 이 모든 것을 집어 삼키는 것을 생방송을 통해서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만 했던 목격자들은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사고의 원인과 진실은 밝혀지지 않는 채 ‘세월호의 아픔’은 여전히 진행 중인데, 시간은 벌써 1년이 흘렀다. 정부는 유가족들의 아픔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건을 감추기에만 급급해 보인다. 세월호는 우리 모두의 삶을 닮아서 고통스럽고 이 사회가 그 지경이 되도록 아무것도 할지 못했던 무책임함 때문에 더 가슴이 아프다. 아이들을 감옥 같은 학교에 밀어 넣고 ‘어쩔 수 없으니 참고 가만히 있으라’고만 했던 우리가 아닌가? 이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일조차도 ‘정부가 알아서 할 테니 가만히 있어’야 하는 것인가? 이제 세월호는 어떤 형식으로든 다시 말해져야 하고 어쩌다 이런 참사에 직면하게 되었는지 밝혀져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같은 실수를 계속해서 반복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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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톰슨 〈The Girls〉 인주에 도장을 찍어 한지에 날인하는 방식으로 제작됐다.
그렇다면, 참사의 아픔에 대해서 말하는 예술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노래 〈아침이슬〉의 작곡가 김민기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세월호의 아픔에 대해서 말할 자격이 없다고 했다. 우리 중 누가 과연 그것을 말할 자격을 가졌다고 할 수 있겠는가? 표현할 수 없는 아픔에 대해서 말해야 하는 예술은 그만큼 무겁고 신중할 수밖에 없다. 지난 4월 한 달간 여기저기에서 세월호 1주기를 추모하는 다양한 행사들이 열렸다. 그 중 대표적인 행사는 아이들이 살았던 동네 안산의 고잔동에 세워진 ‘세월호 기억저장소’가 개최한 〈아이들의 방〉전이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개인기록물 수집 사업’에 참여한 사진가 16인의 작품 110 점을 선보이는 이 전시는 수학여행의 출발지인 안산과 도착 예정지였던 제주, 그리고 서울과 광주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됐다. 안산과 서울, 광주 전시에는 단원고 희생 학생 54명의 빈방 사진이, 제주에는 56명 학생의 유품 사진이 전시됐다. 16명의 사진작가가 참여했지만, 사진으로 작가의 개성을 알아 볼 수 없게 중성화된 이 전시는 작가로서의 표현을 최대한 절제함으로서 아픔에 동참하고 있었다. 올해 에르메스재단미술상 수상작가로 선정된 장민승의 〈보이스리스〉도 같은 차원에서 읽혔다. 그의 영상작업에서는 일본의 가장 짧은 정형시 ‘하이쿠’에서 발췌한 시구를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이 검은 배경 속에서 수화로 들려줬다. 이 차가운 애도의 조사(弔辭)는 비밀스러운 손짓 속에 감춰졌으며 소리 없는 움직임으로 다가왔다. 장민승이 애도의 목소리를 손짓에 감췄다면, 홍순명은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한 몸에 안고 울었던 팽목항에 버려진 사물들을 천으로 싸서 감췄다. 가슴 깊이 감춰진 슬픔은 몸 밖으로 터져 나오지 못한 채 응어리져 있었다. 이 전시들이 표현을 최소화하는 방식의 애도미술이라면 다양한 조형언어의 표현을 빌린 전시들도 있었다. 안산 문화예술의전당에서 안산민예총이 주최한 〈망각에 저항하기〉전은 모두 304명의 작가가 참여해서 만든 전시였다. 회화, 조각, 설치와 영상미디어를 활용한 작가들의 작품은 이 아픔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주저하는 모습들이 역력했다. 2007년부터 한국에 정착해서 생활하고 있는 영국 작가 마틴 톰슨(Martyn Thompson)도 〈호사유피 인사유명〉전이라는 세월호 추모 작품전을 갤러리아이에서 열어 애도의 감정을 표현했다. 애도를 넘어서 분노의 감정을 표현한 일군의 작가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이 사고의 원인이 무능력한 정부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한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참여를 호소했다. 최근 독일 베를린 NGBK에서 열린 〈금지된 회화(Verbotene Bilder)〉전에 초대된 홍성담의 〈세월오월〉은 세월호 참사 과정에서 정부의 무능을 노골적으로 비판한 그림으로 지난해 광주비엔날레에서 표현의 자유 논쟁에 불을 지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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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 안산 416기억전시관, 제주 기억공간 re:born, 서울 류가헌 등에서 열린 〈416 세월호 참사 기억 프로젝트 1: 아이들의 방〉전 포스터
세월호 참사와 같은 국가적 재난의 문제는 미국의 9.11테러나 독일의 홀로코스트 또 일본의 3.11 대지진 등과도 비교할 수 있다. 추모의 감정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일은 아픔의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이 아픔을 사회적으로 공유하고 기억하기 위한 가장 숭고한 일 중에 하나다. 9.11 테러가 있었던 ‘제로 그라운드’에 2,977명의 희생자를 애도하는 폭포와 400그루의 참나무를 심은 뉴욕 시나 콘크리트 조형물 2,711개를 설치해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을 추모한 베를린 시의 예술적 노력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망자의 무덤을 외롭게 지키는 한 송이 꽃 같은 애도의 예술이 필요하다. 세월호가 있기 전에는 매년 4월 중순에 피어나는 노란 개나리꽃이 희생자의 아픔을 추모하게 될 것이라고 상상조차 못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