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베니스비엔날레아카이브기관ASAC에가다

2015/06/07

120년 비엔날레의 역사를 품은 ‘보고(寶庫)’
베니스비엔날레 아카이브 기관 ASAC에 가다

https://cdn.sanity.io/images/m65sjp4q/production/647d0e6e6e5d53e0a984d94c0ab52654d7e02cf9-500x375.jpg

자르디니중앙관내에있는현대미술역사아카이브(ASAC)도서관내부전경

베니스비엔날레는 미술인 누구나 알고 있지만 ‘ASAC’는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국내는 물론 해외 미술인조차 이곳을 취재하러 간다고 하면 “What is that?”이라는 뚱한 반응이 앞선다. ‘ASAC’는 베니스비엔날레의 아카이브 기관인 ‘컨템포러리아트역사아카이브(Archivio Storico delle Arti Contemporanee)’다. 이 기관은 베니스 섬이 아닌 육지에 있다. 섬에서 육지를 이어 주는 피아잘레로마(Piazzale Roma)의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석호(潟湖)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두 정거장만 가면 ASAC가 있는 VEGA(Venice Gateway for Science and Technology) 단지에 다다른다. 이곳은 베니스 시가 과학과 기술 개발을 위해 조성한 복합 연구 단지다. 그래서 버스에서 내리면 예술과 관광의 도시 베니스는 온 데 간 데 없고 널찍한 근현대식 회색 건물들만 눈앞에 펼쳐진다. VEGA가 위치한 지역인 포르토마르게라(Porto Marghera)는 바로 베니스국제영화제의 창립자이자 베니스 산업화의 주역인 주세페 볼피(Giuseppe Volpi)가 파시스트 정권 시절 개발한 주요 항구이자 산업지대이다.

https://cdn.sanity.io/images/m65sjp4q/production/b58a6e32fc20611379ff9d1f8005fed122c0a6de-500x333.jpg

베니스마르게라항지역에있는ASAC내부전경

기자는 2013년 이미 ASAC를 한 차례 방문해 개인적인 관심사에서 리서치를 진행한 바 있다. 프레스 오프닝 하루 전인 5월 4일, 이번 6월호 특집을 준비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이곳을 방문했다. 말끔한 사무실 같은 분위기에 현대식 집기를 구비해 둔 ASAC는 신생 기관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1930년에 설립돼 장장 85년의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기관이다. 그보다 2년 전 출범한 전신 ‘컨템포러리아트역사기관(Istituto Storico d’Arte Contemporanea)’은 이탈리아와 국외 주요 도록을 수집하는 역할을 맡았고, 1930년 ‘ASAC’로 명칭을 바꾸면서 독립기관이 됐다. 당시까지만 해도 ASAC는 베니스 섬에 있었다. 1975년 비엔날레 측이 현재 프라다파운데이션으로 쓰이는 팔라조코르너델라레기나(Palazzo Corner della Regina)를 구입해 ASAC의 새 둥지를 틀었다. 이듬해 “20세기의 시각예술 건축 도시생활 영화 음악 댄스 연극 미디어 문학에 관한 기록 자료를 수집하고, 제작하고, 재생산하고, 보존한다”는 목표를 발표하며 현재와 같은 아카이브 기관의 기틀을 다졌다. 이후 1990년대 들어 수장고 공간 부족 문제로 고민하다가 마침내 2003년 현재의 자리에 들어섰다.

비엔날레 측은 이 중요한 기관이 정작 행사가 열리는 섬 밖에 있다는 점을 아쉬워했다. 결국 2010년 제12회 건축비엔날레 개막에 맞춰 자르디니의 중앙관 내에 ‘비엔날레 도서관(La Biblioteca della Biennale)’을 오픈해 접근성을 높였다. 이로써, 역대 비엔날레 도록 전권을 포함해 104만 5천여 권 이상의 서적을 보유한 이 도서관은 자유롭게 열람 가능한 공간으로, 그리고 ASAC는 학생부터 전문가까지 연구를 위해 예약제로 열람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개편했다. ASAC는 이 도서관을 포함해 총 10개의 카테고리로 소장 자료를 분류해 놓고 있다. 비엔날레 측이 발행해 온 모든 문서를 보관한 ‘역사 자료’ 300만여 점, 미술가들이 비엔날레 후 남기고 간 작품들을 포함한 ‘예술 자료’ 3천여 점, 각종 카피까지 구비해 둔 ‘포스터 컬렉션’ 1만 3천여 점, 리플릿 전단지 초대장 등과 비엔날레 관련 기사를 모아 둔 ‘문서 컬렉션’ 110만 점을 비롯해 ‘사진 자료’ ‘영화 자료’ ‘미디어 자료’ ‘정기간행물’ ‘악보’ 등이 있다.

https://cdn.sanity.io/images/m65sjp4q/production/78ad55703cb2e5ab333e740d9a362a74e18ee8d8-500x333.jpg

ASAC외부전경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ASAC는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비엔날레 본부가 현재의 카’지우스티니안(Ca’ Giustinian)으로 이전한 2009년부터는 주기적으로 건물 1층 공간에서 아카이브 예술 자료를 토대로 기획전을 개최하고 있다. 올해는 재단 대표 파올로 바라타가 기자간담회에서 강조한 바 있듯이, 전설적 큐레이터 하랄트 제만이 기획한 1999년 제48회 비엔날레를 ‘부활’시킨 〈1999〉전을 열었다. 이 전시는 구글컬처럴인스티튜트와 제휴해 온라인에 전부 공개돼 있다. 바라타는 앞으로 그 이후의 전시들도 모두 온라인 아카이브화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또한 ASAC는 2012년부터 매년 〈아카이브와 전시(Archives and Exhibitions)〉라는 제목으로 국제 컨퍼런스를 개최하고 자료집도 단행본으로 출간해 왔다. 베니스비엔날레에서는 지금 당장 코앞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조차 한눈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하지만 이 거대한 공룡이 지난 120년의 세월을 어떻게 기록해 오고 있는지 또한 주시할 일이다. 베니스에 들어서면 ‘빛과 물의 도시’가 주는 매력 속에 휘말리기 마련이지만 한 번쯤 섬을 등지고 다리를 건너 시간을 역행하는 쾌감을 맛보길 바란다.

가나자와21세기미술관(2024.11.01~)
[만료]고흥군청(2024.11.01~2025.01.08)
[만료]한솔제지(2024.11.13~2025.01.08)
아트프라이스(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