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드래곤의 <피스마이너스원> vs. 크리스챤 디올의 <디올 정신>
전시장에 들어온 대중문화의 ‘아이콘’들
지드래곤의 <피스마이너스원> vs. 크리스챤 디올의 <디올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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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지드래곤이 기획에 참여한 <피스마이너스원: 무대를 넘어서>전 2015 서울시립미술관
‘미술관과 대중문화 아이콘의 만남’을 표방한 한 전시를 두고 미술계 안팎이 시끌시끌하다. 초특급 K팝 스타 지드래곤(이하 GD)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서울시립미술관의 <피스마이너스원: 무대를 넘어서>전 얘기다. 논란을 빚는 지점은 공공미술관의 정체성 문제와 기획 자체의 모호함, 크게 두 가지다. 사실 전자의 문제와 관련해선, 과거 블록버스터형 대관전의 맹목적인 영리 추구성 전시 행태에 비하면 오히려 생산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인정해 줘야 한다. 그러나 전시의 구성과 내용 면에서는 아쉬움이 크다. 우선 각 파트 사이의 연결이 매끄럽지 않다. GD의 소장품 사이에 그가 구입하지 않은 현대미술 작품이 기획자에 의해 끼여 있거나, 해외 작가의 작품 중에는 GD와 관계 없이 제작한 작업도 더러 있어 전시 콘셉트에 몰입하기가 어렵다. 무엇보다도 GD라는 콘텐츠가 다채롭게 표현되지 못했다. 결국 ‘화려한 스타의 공허한 내면’이라는 상투적 주제로 수렴될 거라면, GD가 아닌 다른 누가 들어오더라도 문제가 없다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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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호 〈몽테뉴가 30번지: 파사드+페시지+디올〉 2015 〈디올정신〉전 출품작
한편, 럭셔리 패션 브랜드 크리스챤 디올(Christian Dior, CD)의 세계 순회전 <디올 정신>도 DDP에서 비슷한 시기에 개막해 매스컴의 주목을 받고 있다. 브랜드의 유명세와 스타들의 오프닝 참석으로 전시장이 ‘핫플레이스’가 된 것. 이 전시는 온전한 미술관 전시는 아니지만, 여러 면에서 <피스마이너스원>전과 비교될 만하다. 가수 GD와 디자이너 크리스챤 디올 모두 창의적인 문화상품의 생산자이며, 그들 자체가 대중문화의 스타 아이콘으로 ‘브랜드화’되었다는 점에서다. 전시의 관건은 이 아이콘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린 것. GD와 CD 간의 대결이랄까? 결과부터 말하자면, ‘디올의 세계로 몰입(immersion)’하도록 이끈다는 점에서 <디올 정신>전의 압승으로 보인다.
전시는 10개의 테마와 디올 라이브러리 등 총 11개 섹션으로 구성됐다. 각 섹션은 시대 순으로 구성됐는데, 전시와 협업한 한국 미술가들의 신작 및 근작이 중간중간 유기적으로 배치되어 동시대적이면서 지역적인 의미를 만들어 냈다. 서도호는 전시 초입에 <몽테뉴가 30번지: 파사드+패시지+디올>을 선보였다. 디올이 첫 번째 컬렉션을 선보인 ‘몽테뉴가 30번지’를 재해석한 공간으로, 안으로 들어가면 1947년에 만든 전설적인 ‘뉴 룩’ 의상을 만나게 된다. 김혜련의 <열두 장미, 꽃들에게 비밀을>은 디올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은 플라워 모티프 드레스를 전시한 ‘디올 가든’ 섹션에 함께 걸렸다. 마치 한밤중인 것처럼 어두운 화면 위에 연분홍의 꽃봉오리에서부터 검붉게 만개한 꽃까지 다양한 꽃의 표정을 그려 냈다. 작가 이불은 꽃 자수 레이스 5,000개를 이어 붙인 ‘미스디올 드레스’ 맞은편에 아크릴 비즈와 유리, 거울 등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흰색 구조물 <Cella>를 설치해 신선한 시각적 충격을 던져 줬다. 디올의 향수 ‘쟈도르’를 금빛 샹들리에로 재탄생시킨 박선기의 <조합체-출현 1506>은, 쟝-미셸 오토니에가 무라노 유리 공예 기법으로 디자인한 한정판 향수와 함께 전시돼 흥미를 더했다. 작가의 작품이 전시를 위한 장식적 요소로 전락하지 않고, 개별 작품이 완결성을 가지면서도 디올의 ‘정신’을 연상시키는 점이 좋았다. 뉴욕 리만모핀갤러리와 313아트프로젝트가 전시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소속 작가들을 추천하고 작품 제작 과정에서도 적극적인 도움을 주었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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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스털링 루비의 추상 회화에서 영감을 받은 디올 2012년 가을-겨울 오뜨 꾸뛰르 컬렉션
광고 영상처럼 상업성 짙은 요소도 전시의 한 콘텐츠를 이뤘다. 이불의 조각작품과 미스디올 드레스 사이에 설치된 자그마한 스크린에서 ‘미스디올’ 향수 광고 3부작이 상영되고 있었다. 나탈리 포트만의 매력적인 몸짓에 절로 눈길이 간다. 동일한 광고를 맞은편 큰 스크린에서 함께 상영한 것은 아쉬웠지만. 전시의 마지막 파트인 거울로 된 방에서는 디올 광고 무편집본인 ‘패션 필름’을 상영한다. 디올의 첫 흑인 뮤즈가 된 미국의 팝스타 리한나가 베르사유궁전 안에서 헤매는 모습을 연출한 <시크릿 가든 IV>이 거울 방 안에서 무한히 변주되는 장면은 대중문화-패션-미술의 매시업 그 자체였다. 결국 이 전시는 크리스찬 디올의 브랜드 스토리를 중심으로 대중문화와 미술의 스펙터클이 ‘짭짤’하게 버무려진 현장이었다. <피스마이너스원>에 등장했던 GD가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유령’ 같았다면, <디올 정신> 속 CD는 영속성을 뽐내는 아이콘으로 떠올랐던 것. 앞으로도 대중문화 아이콘을 활용한 전시들이 속속 발표되길 기대한다. 하지만, 분명한 맥락을 지닌 콘텐츠만이 제대로 된 성공을 노려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