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희展
2015 / 10 / 07
금속에 새긴 한국미의 ‘풍경’
김승희展 8. 4~30 한국미술관(http://www.hartm.com/home/)
/ 박남희(예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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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희 〈하염없는 생각〉 적동, 황동, 백동 100×60×80cm 1987
지난 8월 한국미술관에서 열린 김승희 개인전 〈다시 보는 풍경〉은 작가가 1970년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제작하고 있는 설치 작품과 다채로운 금속 작품의 면모를 풍부하게 보여 주었다. 즉 작가의 초기 작품인 〈황동병〉부터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설치 작품 〈십장생 풍경〉까지 작가가 오랫동안 쌓아 온 ‘작품사’를 한눈에 관통해서 관람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더군다나 작가가 한국 현대공예의 역사를 만들어 온 장본인으로서 시대적 요청과 작가적 욕망을 작품에 투영해 왔음을 금속을 다루는 기법과 다양한 오브제를 통해 마주할 수 있었다는 데 큰 의의가 있었다. 어언 50여 년에 이르는 작가의 작품사적 궤적에는 한국의 전통적인 사물에서 기인하는 미적 형질과 이를 현대적인 감수성으로, 그리고 자신만의 독자적 언어로 승화하려는 열정이 투사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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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희 〈색동풍경 브로치〉 정은, 황동, 금속 채색 및 옻칠 7×5cm 2015
작품에 나타난 표현과 형식의 측면에서 보자면 김승희는 금속 자체의 질료가 지니고 있는 물성을 차갑고도 간결하게 정돈하는 양식을 특징으로 내세우며 꾸준히 작업해 왔다. 작업의 초기 단계였던 1970년대에는 정서적 형태감과 부드러운 선에 의한 단순함을 크게 부각시켰다면, 80년대는 풍경을 모티프 삼아 금속 그릇에 회화적 표현을 강하게 드러냈다. 90년대 이후부터는 회화적인 것을 넘어 조각적인 특징이 나타나는 평면 작품 또는 입체 작품 등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 속에서 한국의 금속 공예가 단지 기능이나 용도에만 고착되어 소통을 확대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의 작업들, 즉 2007년 한국미술관 기획전 〈백남준 가시고 365일〉에 출품했던 대형 비디오 작품인 〈그릇에 비디오아트를 담다〉와 같은 조각적인 스케일을 지닌 작품, 또는 기하학적인 형태로 철 구조물을 제작한 후 채색하고 십장생 형상의 평면 요소를 한 개씩 가미한 설치 작품 〈십장생 풍경〉을 보면, 작가는 기법에 얽매인 금속이 아니라 그 재료가 지닌 표현적 가능성을 개방함으로써 작가 자신의 삶과 적극적인 융합을 이루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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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희 〈산〉 시리즈 1983
그런 의미에서 금속이라는 특정한 질료를 통해 드러난 김승희 작업의 다양성은 이 질료에 대한 작가의 강렬한 표현 욕구와 열정을 방증해 준다. 이러한 강렬함은 무엇보다 한국적인 것을 좇아 온 관심과 의지로 꾸준하게 이어져 왔다. 〈십장생 풍경〉은 이와 같은 작가의 의식을 직접적으로 가시화해서 보여 준 드문 사례 중 하나다. 기존에 작업해 온 작품 양식과 다르게 〈십장생 풍경〉은 금속재로 이루어진 색채 드로잉처럼 조금 더 편안한 분위기와 정서를 향하고 있다. 즉 평소에 작가가 작품을 제작하면서 보여 줘 왔던 오브제로서의 완결성보다는 내면에 기인한 미적 세계의 내러티브에 포커스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금속의 곡면, 직선 판곡과 상처 그리고 무엇보다 선명한 오방색과 함께 드러난 완만하고 다소 느슨한 여유를 가진 십장생의 상징 이미지들을 선보인 것이다. 그동안 작가가 선보여 온 작업에서 십장생이 작품의 소재로 빈번하게 등장했을지라도 이번 전시에서처럼 설치로 이어진 규모와 회화적 오브제로서의 표현적 면모는 새로운 시도로 간주된다. 금속 기(器)나 오브제 등에서 보이는 조형적 섬세함이나 현대적 감수성과는 분명히 거리가 있어 보이는 이 작품은 한국인의 의식 지평에 자리한 평화로운 삶의 이상향에 대한 이미지를 재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작가의 예술적 여정 속에 여실히 보이는 작업을 향한 열정은 고스란히 새로운 시도로 이어지고 있다. 금속 질료의 새로운 표현 세계를 개척하고자 하는 의지는 이미 작가의 숙명처럼 작업을 하는 손과 태도에 깃들어 있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