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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과비평까지과감하게넘나드는‘에디터’로

2015/12/06

‘에디터십’ 확장하기
기획과 비평까지 과감하게 넘나드는 ‘에디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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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의미술잡지아카이브일부.위로《아트포럼》이보인다.

지난 9월부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최하는 ‘2015 ARKO 시각예술 분야 작가·큐레이터 워크숍’에 참여하고 있다. 참여를 결심한 동기는 세 가지였다. 에디터로서 할 수 있는 ‘지면 전시’의 한계를 벗어나 실제 3차원 공간에 기획을 펼쳐 보고 싶은 마음, 지금보다 좀 더 잘 쓰고 잘 말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작가 기획자 비평가의 꿈을 꾸는 또래 동료를 만나고 싶은 마음. 프로그램이 3개월을 막 지난 지금, 돌이켜 보면 새로운 기술이나 능력을 획득했다기보다 오히려 ‘Art의 에디터’라는 지금 나의 정체성을 좀 더 명확하게 느끼게 해 준 계기가 됐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은 2주차 때 작가 워크숍 참여자 23명과 큐레이터 워크숍 참여자 8명이 모두 모여서 장장 5일에 걸쳐 자기를 소개하는 프리젠테이션을 펼친 기억이다. 4개월 동안 함께할 동료들에게 자신의 관심사를 소개하는 자리였다. 어떤 가이드라인도 없이 “당신 자신에 대해서 소개해 달라”는 요청에 응답하는 것은 상당히 고민되는 일이었다. 생각 끝에 내가 편집했거나 직접 쓴 기사의 펼침면을 가지고 나를 소개하기로 했다. Art에서 특히 애착을 갖고 만든 꼭지 및 그동안 해외 잡지에 영문으로 기고했던 기사들을 준비했다. 미술계 현장 비평에 관심이 크고, 한국의 미술을 해외로 전달하는 데에도 사명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전시 리뷰부터 다양한 형식의 작가론 및 인터뷰, 비엔날레 등의 국내외 행사 취재물 및 미술시장 분석 기사 등을 모아 갔는데 “직접 쓴 글 외에 에디터로서 수행한 역할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많아 놀랐다. 그것은 본지에서 에디터의 ‘흔적’은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이기도 했다.

사실 에디터는 원고의 필자나 미술 작가와는 달리, 작업의 결과가 완성품의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작품이 최고로 빛날 수 있게 그것이 놓이는 좌대를 갈고닦는 일꾼에 가깝다. 하지만 알고 보면 에디터는 책의 기획부터 실제 생산까지 모든 과정을 실질적으로 책임지는 ‘일당백’의 능력자다. Art의 에디터는 기획에서부터 필자 섭외 및 원고 커미셔닝(혹은 직접 작성), 사진 촬영, 도판 선정, 레이아웃, 교열, 캡션, 리드(글 앞머리의 안내글) 및 제목을 모두 주도적으로 결정하고 진행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필자, 작가의 의도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그 방향에 맞추어 작업을 해내야 하므로 이들과의 ‘환상적인 호흡’이 필수다. 때로는 이들에게 새로운 제안을 함으로써 더욱 창의적인 편집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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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푸동<TheColouredSky:NewWomenII>5채널비디오설치2014_상하이유즈(Yuz)뮤지엄개인전출품작

마침 10월의 파주에서도 ‘뉴 에디터십’을 논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어 발길을 재촉했다. 출판도시문화재단이 <2015 EDITORS' WEEK>(10. 5~9)의 일환으로 진행한 제2회 파주에디터스쿨(10. 7~9). 그중 ‘북 디자인과 편집자의 역할’ 세션에서 디자이너 김형재의 발표 ‘혼합 격리: 저작, 편집, 디자인의 선택적 교차와 배제’가 흥미로웠다. ‘혼합 격리’는 개체를 혼합시키거나 격리시키는 디자인적 기능을 필자, 에디터, 디자이너 사이의 관계에 빗대어 사용한 용어. 디자이너와 에디터가 서로의 작업 영역을 ‘침범’하여 재미있는 결과물을 만든 사례를 살폈다. 민구홍 에디터가 기획한 안그라픽스의 《16시》가 16쪽으로 형식을 제약하고 그 안에서 필자와 디자이너가 협업하도록 유도한 사례가 돋보였다. 에디터 스스로가 고전적인 역할 분담에서 탈피해 출판의 새로운 플랫폼을 창안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려줬다. 한편, 11월에는 2박 3일간의 중국 상하이 출장 기간 동안 현지에서 ‘핫’하다는 전시장 12곳을 쏘다니며 처음 에디터가 되면서 불 피웠던 열정을 다시금 느꼈다. 비단 새로운 소식을 발 빠르게 전달하는 것뿐만이 아니다. 상하이 미술의 최신 유행과 런던에서 현재 주목받는 미술 조류를 비교하거나, 상하이 현대미술의 현장을 가이드 삼아 중국의 고대 미술로 거슬러 올라가기 등 주어진 지면 안에서 수평 또는 수직으로 시선을 확장하면서 얼마든지 신선한 미술사적 조망이 가능하다는 점 말이다.

“나는 어떤 에디터가 되고 싶은가” 자문해 본다. 에디터 본연의 임무를 꼼꼼하게 되짚고, 에디터가 바깥 영역으로 침범한 긍정적 사례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처음 에디터 일을 시작한 동기인) ‘현장형 비평’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가능성을 몸소 느끼면서, 한때는 스스로 한계 짓기도 했던 ‘에디터십’을 확장시켜 기획과 비평까지 과감하게 넘나드는 ‘에디터’로서 미술 생태계 안에서 좀 더 재미있게 소통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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