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를린 카펜터展
농담 뒤에 숨겨진 날카로운 메세지
메를린 카펜터展 9. 19~11. 1 베른 쿤스트할레베른(http://www.kunsthalle-bern.ch/)
/ 노경민(작가, 로잔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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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를린 카펜터 개인전 〈Midcareer Paintings〉 전시 전경 2015 베른 쿤스트할레베른
쿤스트할레베른에 올해 새로 부임한 디렉터 발레리 크놀(Valerie Knoll)이 두 번째로 기획한 전시는 영국 작가 메를린 카펜터의 개인전이다. 전시 제목 <Midcareer Paintings>는 중견 작가의 회고전을 연상시키지만, 정작 전시장을 둘러보면 ‘Courtesy Simon Lee Gallery’ 또는 ‘Courtesy Formalist Sidewalk Poetry Club’ 등 그를 대표하는 갤러리들을 작품의 제목으로 내세우고 있다. 또 이사할 때 혹은 회화작품을 운송할 때 보호 차원에서 사용되는 헝겊이 ‘2016년작’ 그리고 ‘비매품’이라는 미묘한 캡션을 달고 같은 사이즈의 캔버스 틀에 나란히 설치되어 있다. 사실 오프닝 때까지도 해당 갤러리스트들은 이 캡션에 관해 몰랐다고 한다.
이렇게 무심한 듯한, 농담과도 같은 작품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필자는 이 전시가 마음에 들어 제네바대 교수이자 비평가 친구인 다니엘 엘미거에게 추천했다. 다음날 전시를 보러 간 친구는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의 소감을 이야기해 줬다. 일단 기분이 나빴다는 것이다. ‘그래, 네가 이겼다’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너’란 미술(특히 현대미술) 또는 작가를 칭한다. 이 전시가 취하는 지적, 인식론적 태도 앞에서 미적 경험은 무시되고, 작가가 추구하는 개념에 이르기 위해 잘 만들어진 작품 앞에서 감성적, 내적 우연성이 끼어들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허탈함이랄까. 그러나 그는 전시장을 떠날 때 이미 이 전시와 ‘화해’하게 될 것을 예상했다고 한다.
크놀은 처음 작가를 초대했을 때 먼저 그의 회고전을 고려했다고 한다. 그러나 작가는 이에 반대했다. 쿤스트할레베른의 유서 깊은 역사적 가치는 이곳에서 개인전을 가졌던 작가들의 작품 가격에 반영돼 왔다. 여기서 한번 개인전을 열고 나면 작품 가격이 오른다는 것이다. 부인할 수 없는 미술시장의 현실이다. 카펜터는 현대미술 생산 구조와 조건에 대하여 오랫동안 비판적인 태도를 보여 왔고, 컬렉터, 갤러리스트, 작가 사이에 존재하는 시스템을 풍자하는 전시를 수차례 가진 바 있다. 그중 〈The Opening〉 시리즈는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 아무도 알 수 없는 빈 캔버스에 전시 오프닝 직전이 돼서야 그린 그림, 컬렉터를 향한 욕설이 칠해진 그림 등으로 채워진 수행적 회화 전시다. 진부하다고 느껴질 수 있으나 ‘중견 작가’라는 그의 위치를 생각해 보면 꽤 도발적이다. 그는 이렇게 ‘오프닝 직전에 그린 회화의 가치는 어떻게 정해지는가’에 대해 질문한다. 작가의 이력? 유명 상업 갤러리의 과두제적 파워? 아니면 이것 또는 저것도 될 수 있는 회화의 본질적 가치? 제작비와 작품 가치가 보장되는 쿤스트할레베른 같은 곳에서 미술의 근본 가치에 대해 유머러스하게 도발하는 이 전시는 작가의 비판적 시각에 대한 지속적 실험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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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작가 블레이크 래인(Blake Rayne)과 함께 선보인 〈Formalist Sidewalk Poetry Club〉 프로젝트 2015
때로는 전시를 본 직후와 시간이 지난 후의 소감이 바뀌기도 한다. 무엇을 보았는지 아예 잊어버리기도 하고, 왠지 싫었던 것이 되려 좋아지기도 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전시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하고 그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논쟁, 그리고 그에 따라 생각이 바뀌는 것이 아주 재밌는데, 앞서 말한 친구 다니엘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우리는 전시를 관람한 지 2주 정도 지나서 다시 만났다. 이 전시가 생산한 담론, 개별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 미술, 현대미술, 미술시장과 시스템을 겨냥한 사유의 기회 등에 대해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 이러한 ‘화해’야말로 (현대)미술이 제공하는 가능성이다. (작품을 사는 이보다도) 전시를 보는 이로 하여금 개념적, 지적인 사유를 이어 가게 하는, 전시장을 넘어선 일종의 연동 효과이자 가장 흥미로운 가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