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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문화와사람에대한크고작은선입견깨기

2016/04/05

‘베일’ 벗은 샤르자에서 ‘문화상대주의’ 생각하기
아랍 문화와 사람에 대한 크고 작은 선입견 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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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르자출장첫날,회의장으로의출근을준비하며.

샤르자마치미팅(Sharjah March Meeting, 이하 MM) 취재차 아랍에미리트 샤르자에 다녀왔다. 지금 이 글은 5월호 기사의 프롤로그라고 해 두자. 인접한 두바이까지의 비행시간만 10시간 45분, 실제 도심까지는 꼬박 12시간이 걸리는 샤르자. 먼 거리는 물론이거니와 익숙잖은 문화 때문에 주워들은 이야기로 선입견을 극대화시키기 딱 좋은 도시였다. 실제 샤르자는 과연 ‘상상 속’ 아랍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MM 현장에도 흰색의 전통 아랍 복장을 한 남자들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어 신비감을 더했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과 실제 대화를 나누며 자칫 빠져들 뻔한 ‘편견의 덫’에서 다행히 무사할 수 있었다.

잠깐 열렬한 무슬람 교인으로 오해할 뻔했던 이 흰 옷차림은, 실은 서양의 턱시도나 한국의 한복과 같은 정장이었다. 이는 낙타를 끌고 유랑하던 옛 문화에서 비롯된 것인데, 한낮의 뜨거운 햇볕에서 몸을 보호할 수 있는 빳빳한 소재의 흰색 의상과, 낙타를 잠시 세워 둘 때 유용한 검은색 노끈을 머리 위에 둘렀던 복장이 현대까지 남게 된 것이라고 한다. 현장 스태프들은 샤르자를 찾은 귀한 손님들을 위해 격식 차린 복장으로 최상의 모습을 보여 주고자 했던 것이다. 온몸을 덮는 검은색 전통 복장인 ‘아바야’를 입은 한 여성이 가부장제의 지배에 심하게 매여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기자의 고정 관념도 여지없이 깨졌다. 심지어 얼굴이 나오는 면적이 적을수록 ‘귀한 집 여인’이란 통념도 존재한다고. 아랍 여인들이 문화권이 다른 외국에 나가도 ‘아바야’ 차림을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계급 표시’의 일환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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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르자미술관(SharjahArtMuseum)내부통로에서.기획전<노아의방주>전,안젤라불로흐(AngelaBulloch),마리아제레스(MariaZerres)2인전이각각열리고있었다.

물론 이러한 관습은 현대에 들어와 계속해서 변화하는 중이다. MM을 주최한 샤르자미술재단 수장 후르 알 카시미(Hoor Al-Quasimi)의 의상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는 샤르자의 국왕 셰이크 술탄 빈 무함마드 알 카시미(Sheikh Dr. Sultan Bin Mohammed Al Qasimi)의 딸로서 샤르자 최고의 여성 고위인사다. 출장 첫날 MM 회의장에서 만난 그는 얼굴을 제외하고 온몸을 모두 가린 전통 복장 차림이었다. 하지만 출장 마지막 날 샤르자미술재단 사무실에서 가진 1:1 인터뷰 자리에 나온 카시미는 얼굴과 머리카락을 완전히 내놓은 자연스런 모습이었다. 영국에서 유학했고 지금도 런던과 샤르자를 오가며 지내는 그녀의 페이스북에는 아야바를 벗어 던진 패셔너블한 사진들이 가득했다. 18살 때 큐레이터 일을 시작하며 실수를 연발하던 순간까지 털털하게 털어 놓는 그녀는 ‘아랍 공주’라는 수식어만으로는 쉽사리 상상하기 힘든 다양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같은 날 저녁 아트두바이페어 현장에서 다시 만난 그녀는 기자를 오랜 친구 대하듯 살갑게 챙기며 바쁜 일정을 걱정해 주기도 했다.

국가 정체성을 급진적으로 재고하는 ‘코스모폴리탄’과의 만남도 색달랐다. 이집트 출신으로 벨기에가 주 무대인 큐레이터 타렉 아부 엘 페투(Tarek Abou El Fetouh) 얘기다. 그는 2013년 베이루트에서 발표해 호평 받은 바 있는 <시간의 빗장이 어긋나다(Time is Out of Joint)> 프로젝트를 새롭게 발전시켜 선보였다. 샤르자미술재단과 광주아시아문화전당이 공동으로 커미션하여 MM 기간에 샤르자미술재단에서 먼저 발표한 자리였다. 기자는 2명의 다른 기자와 함께 페투가 진행하는 소규모 전시투어에 참여했다. 투어 내내 세련된 매너와 유려한 말솜씨가 인상적이었다. 그는 투어가 끝나고 이어진 토론 자리에서도 5.18민주화운동에서부터 주디스 버틀러의 페미니스트 젠더 이론까지 언급하며 폭넓은 지식을 자랑했다. 세계지도를 끊임없이 수정해야 할 만큼 기존의 국가 및 국경 개념이 급격하게 변화 중인 현 상황을 기민하게 포착하고, 자신의 프로젝트를 통해 초시간적, 초국가적 연대를 꾀하는 ‘야심가’다운 면모였다. 반면 아랍의 실제 통일 연도가 언제였는지,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고문과 같은 탄압 행위는 어디에서 일어났는지와 같은 구체적 정보에서는 곧잘 틀리기도 했다.  자신의 보폭에 세계를 온전히 품으려는 인물이기에 진정성 여부를 공격당할 소지도 있겠단 생각이 언뜻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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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르자이슬람문명박물관(SharjahMuseumofIslamicCivilization)천장에그려진벽화

짧은 시간 샤르자와 두바이를 쉴 틈 없이 누비며 몸은 바빴지만 마음만은 가벼웠다. ‘상식’인 척하는 ‘편견’을 저 멀리 치워 두고 어린아이처럼 ‘다름’과 ‘새로움’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던 듯하다. 상식의 기준을 다른 누구의 것에 예속시키지 않아도 좋은 시간. 국경의 문턱이 어느 때보다 낮아진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에 따라 옳음의 기준은 시시각각 달라진다. 출장이나 여행의 순간이 끝나도, 내가 선 이곳이 꼭 ‘상식적’이지 않아도 괜찮은 곳이 됐으면, 하는 막연한 바람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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