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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때리기대회’의인기와‘포스트인터넷아트’의범람

2016/06/02

디지털 네트워크와 정보의 ‘과잉’ 속 예술가의 자세?
‘멍 때리기 대회’의 인기와 ‘포스트 인터넷 아트’의 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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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5월22일열린'한강멍때리기대회'에참여한작가최선

지난 5월 22일 오후 3시, 이촌한강공원의 청보리밭에서 이색 대회가 열렸다. 바로 ‘멍 때리기 대회’다. 멍 때리기, 즉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가장 오래 유지하는 사람을 뽑는 자리다. 15분마다 심박 수를 검사하고 시민 투표를 통해 최종적으로 우승자를 가리며, 우승자에게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턱을 괴고 앉은 사람 형상 위에 갓을 씌워 놓은 모양의 트로피가 주어진다. 작가 웁쓰양이 주최하는 이 대회는 “쉴 새 없이 돌아가는 현대인의 뇌를 쉬게 해 주자”는 취지로 2014년 서울 광장에서 처음 시작했다. 이번 4회의 사전 신청엔 무려 2천여 명의 인파가 몰렸다. 실제 대회는 주최 측의 심사를 통과한 59명이 참가했다. 이들의 면면이 주부 어린이 회사원 가수 마술사 기자 미술가 등 매우 다채롭다. 가능한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는 이들을 초대하려던 주최 측 의도가 반영된 것.

나는 작가 최선에게 본인이 참여한다는 말을 듣고 현장을 찾아가 보았다. 미술인의 ‘멍 때리기’ 퍼포먼스는 과연 어떨지 궁금했기 때문. 그는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멍을 때려 보고 싶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했다. 그런데 TV, 신문, 인터넷 뉴스 등 각종 매체가 몰려 취재 열기가 대단했다. 최선은 개인 자격으로 참여한 가수 크러쉬와 가깝게 앉은 덕에 졸지에 플래시 세례를 함께 받았다. 혼잡한 상황에서도 제대로 멍을 때린 그의 ‘포스’는 왼쪽의 사진으로 확인하길. 그는 “꼼짝 않고 앉아 있기,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가 의외로 쉽지 않더라. 완주하고 나니 뭔가 후련하다”고 했다. 한편 1위에는 가수 크러쉬가 선정됐다.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뇌에 휴식을 줄 필요가 있어” 참가하게 된 그의 우승 비결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있었다.” 2위를 한 코스프레 차림의 두 소녀들이 내 놓은 소감도 걸작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던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마음이 참 좋다.” 각양각색의 소감 속에 공통분모가 있다. 바로 바쁜 일상 속 정보와 속도의 ‘과잉’에서 벗어나 잠시라도 ‘쉼’을 가지려 했다는 점. 사회자의 한마디가 마음을 울린다. “언제 한 번 이렇게 맘 놓고 멍 때릴 기회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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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인터넷서바이벌가이드>전전경2010베를린더퓨처갤러리

사실 우리의 뇌는 쉴 시간이 너무나 부족하다. 노트북 타블렛 스마트폰 스마트워치에 이르기까지 점점 더 소형화되고 몸에 밀착시킬 수 있는 디지털 기기와 함께 문자 그대로 24시간 ‘연결 중’. 카카오톡 왓츠앱 스냅챗 같은 메신저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SNS가 날려 보내는 각종 알림 문구에 조건반사적으로 스마트폰을 확인하다 보면, 정작 오프라인의 상황에 집중해야 할 순간에 손 안의 온라인 세상에 빠져 있는 나를 발견할 때도 많다. 그뿐인가? 매일매일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뉴스의 분량은 개인이 따라잡기 버거울 정도. 신문 지면으로 보는 뉴스는 이미 ‘느리다’고 여기며 끊임없이 업데이트되는 SNS의 타임라인을 어느새 습관적으로 ‘새로 고침’한다. 수많은 정보 덕택에 굉장히 똑똑해진 것 같은 기분도 들지만, 과연 그럴까? IT미래학자 니콜라스 카(Nicolas Carr)는 상당히 회의적이다. 그는 저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The Shallows)》(2010)에서 마셜 맥루한이 미디어 콘텐츠를 정신의 도둑이 던져 대는 고깃덩어리로 비유한 이야기를 꺼낸다. 그리고 한술 더 뜬다. 인터넷 시대에는 “한 단계 한 단계 거칠수록 지난번보다 육즙이 더욱 풍부한 고기가 던져져 한 입씩 베어 물 때마다 숨도 제대로 내쉬지 못한다”는 것. 중독성 있는 인터넷 서비스에 익숙해지고 의존하게 되면서 뇌는 굶주리게 됐고, “인터넷은 나를 초고속 데이터 처리기기 같은 물건으로 바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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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workers:네트워크로서의아티스트>전전경2015파리시립근대미술관

이렇게 우리의 뇌와 스마트폰이 알게 모르게 ‘동기화’되어 가는 상황에서 예술가들은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인터넷과 친숙한 젊은 예술가들은 이미 상황을 민감하게 감지해 낸 듯하다. 2010년경부터 전 세계적으로 급격히 늘어난 포스트 인터넷 아트 관련 전시가 그 증거. 가상현실 속 디지털 네트워크의 작동 방식과 시각적 환경을 실제 현실 위에 거꾸로 재현해 내는 사례가 많다. 최근 한국에서도 관련 전시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2014년 말경부터 활성화된 신생공간들의 크고 작은 이벤트가 네트워크의 작동 방식을 차용한 사례를 다수 보여 줬다. 2015년 <뉴스킨> <평면탐구>(일민미술관), 2016년 <언더 마이 스킨>(하이트컬렉션) <실키 네이비 스킨>(인사미술공간) 등 일련의 전시는 ‘표면’ 자체 혹은 그 안과 밖에 대한 인식을 각각 점검했다. 세대론을 접합시킨 <시대정신: 비-사이키델릭; 블루>(아마도예술공간)도 막 오픈했다. 앞으로의 전개를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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