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추억여행’에서부터 내면으로의 여행까지
급변하는 서울 vs. 한결같은 런던
런던 ‘추억여행’에서부터 내면으로의 여행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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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근교의 엡섬(Epsom)에 위치한 UCA(University for the Creative Arts) 캠퍼스. 교내에서 학부 졸업전시가 열렸다.
여행을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단 한 번만 간 사람은 없다고 한다. 그만큼 여행이 주는 가치가 크다는 이야기일 테다. 특히 혼자 하는 여행은 타지에서 자기 자신을 비춰보고 자기의 (어쩌면 부끄러운)진짜 모습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8년여 전, 영국의 두 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한 시간은 혼자 하는 긴 여행과도 같았다. 여행을 마치고 나면 남는 것이 많다. 사진 기념품 쇼핑물품뿐만이 아니다. 닫혀 있던 생각이 열리고 여린 마음이 단단해지는 소득을 얻기도 한다. 내 경우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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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A의 패션 홍보 및 시각화(Fashion Promotion & Imaging) 학부생의 2016년 졸업 작품.
패션 홍보 및 시각화를 공부했던 영국의 학부 생활에서 배운 수많은 레슨 중에서도 내 생각을 완전히 ‘열어 준’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입어도 되는 옷과 안 되는 옷 사이의 구분이 실은 ‘쓸데없다’는 것. (특정 상황의 드레스코드가 아니라 개인의 일상적 복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입고 싶은 옷이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입을 수 있다는 생각의 자유에서부터 새로운 아이디어가 솟아난다는 것을 그때 체감했다. 뿐만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의 경계도 내가 임의로 그어둔 한계였다는 생각에 이르게 됐다. 나는 비교적 늦은(때라고 주변에서 만류했던) 고등학생 때 미술 실기를 시작했다. ‘순수’ 미술 전공을 원했지만 결국 시각디자인학과로 진학했다. 학부 과정에서 미술에 대한 갈망과 미련이 더 커졌다. 디자인 전공을 졸업했으니 현대미술 직군으로 진출할 수 없을 거라 스스로 단정 짓고, 대신 전공과 연관성이 컸던 패션 무역회사의 VMD 일을 선택했다. 하지만 답답함이 있었다. 창작의 에너지를 발휘하기에는 시스템의 한계가 명확했고, 내 역량의 미숙함도 컸다. 두 번째 학사를 위해 영국행을 결심하게 된 이유였다.
영국 생활에서 스스로에 대한 의외의 발견이 또 있었다. 바로 글쓰기의 즐거움이었다. 패션의 역사 및 분석과 관련된 고전문헌 사회문화이론 기호학자의 텍스트를 공부하며 에세이를 쓰는 일이 너무나 흥미로웠다. 이어서 진학한 대학원의 미술이론 과정에서 본격적인 공부에 뛰어들면서, 글쓰기가 현대미술에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다. 언어를 통해 미술을 해석하고 평가하며 전달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온몸으로 느꼈다. 예전에는 그 마음이 진심이라면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꺼내서’ 알아봐주리라 믿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미술을 매개체 삼아 마음과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고, 그것이 정확하게 전달되었을 때의 기쁨을 그때서야 알게 된 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그것을 부정할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는 마음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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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베드포드스퀘어(Bedford Square) 30번지. 기자가 졸업한 대학원 건물의 정문을 등지고 촬영했다. 7월 25일 촬영.
만 5년의 영국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돌아온 지 네 번째 맞는 여름, 오랜만의 긴 휴가를 얻게 됐다. 행선지는 망설임 없이 런던으로 정했다. 귀국 이후로는 처음 가는 것이었다. 콘셉트는 ‘추억여행’으로 잡았다. 지난 영국생활에서 얻었던 소중한 레슨들을 돌이켜 보고 싶었다. 런던에 도착한 날 저녁에 모교 대학원 건물로 직행했다. 편안하고 고즈넉한 풍경이 그때 그대로 남아 있어 반갑고 기뻤다. 다음 날에도 런던 복스홀(Vauxhall)과 엡섬(Epsom), 윔블던(Wimbledon)을 오가며 예전에 살았던 집들과 학부 기숙사를 연달아 방문했다. 당시의 친구들과도 다시 만났다. 이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니 나 역시 바로 어제까지 런던에 살고 있었던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사실 떨어져 살면서도 서로의 일상을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연락을 주고받기 때문에 두 도시 간의 물리적 거리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문제는 변화의 속도 차이였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워지는 서울의 상황과는 대조적으로, 런던의 친구들도 건물도 자연도 한결같았다. 물론 전혀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귀국한 사이 유럽 최고 높이의 호텔(더샤드)이 완공됐다거나 테이트모던이 새 건물을 증축해 오픈하기도 했다. 영국의 EU탈퇴 선언 ‘브렉시트(Brexit)’ 채택이라는 충격적인 정치적 변화도 있다. 그런데 영국인들의 일상은 의외로 평온했다. 잔류에 투표한 친구들도 “영국이 브렉시트를 감행하더라도 결국에는 살아남을 것이고 멀리 보면 세계경제의 질서 속에서 보다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여행이 끝나고, 모든 것이 느린 속도로 차분하게 흘러가는 도시를 떠나 섬광처럼 번쩍이는 속도로 전진해 나가는 ‘메갈로폴리스’로 돌아가려니 다소 아찔해졌다. 하지만 한편으로 당시와는 또 달라진 지금의 내 상황과 앞으로의 가능성도 충분히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의 아트씬에서 종사하면서 이곳의 이야기를 세계로 전달할 수 있는 기회와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