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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순천만국제자연환경미술제

2016/12/07

‘큰 뜰’을 지상의 ‘낙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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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리고스 <날개> 대나무, 천, 스티로폼, 시멘트 170×25×30cm 2016

대한민국 국가정원 제1호인 순천만국가정원(이하 순천만정원)이 미술작품을 벗 삼은 ‘낙원’으로 변모했다. 순천시와 국제조형예술협회(IAA)가 뜻을 모아 26개국에서 58명의 작가가 참여한 ‘2016순천만국제자연환경미술제’(이하 순천만미술제)가 열린 것이다. 세계 5대 연안 습지로 이미 그 명성과 가치를 인정받은 순천만과 미술의 만남은 어떤 하모니를 만들어냈을까? 
올해 제1회를 맞이한 순천만미술제는 ‘낙원유람’을 주제로, 크게 야외설치전과 실내전, 퍼포먼스로 구성됐다. 순천만정원을 무대로 한 야외설치전 ‘낙원유람’은 ‘실낙원’ ‘복낙원’ ‘세계의 낙원’ 총 3 섹션으로 이뤄졌다. ‘반생태적인 디스토피아적 문명 세계의 현 상황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도모하는 예술’을 선보이는 실낙원 섹션에는 캔, 병, 신문지 등을 압축한 거대 조각으로 유명한 미국작가 스티븐 시걸(Steven Siegel)의 작품 <순천에서 엮다>도 자리를 잡았다. 작품에 대해 설명을 요청한 기자들에게 시걸은 “나는 나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 지금처럼 내 작품 앞에 서서는 더욱이 그렇다.” 이어 “여러분은 산 속에서 숲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는가?”라며 오히려 기자들에게 반문을 던졌다. 작품을 직접 경험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설명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관객은 나무와 나무 사이에 신문지를 켜켜이 쌓아 만든 작품을 둘러보거나 작품 안으로 들어가 볼 수도 있다. 하얀 천으로 만든 날개 모형이 바람에 따라 움직이는 로저 리고스(Roger Rigorth)의 <날개>와 쪽배 위에 커다란 달의 형상을 띄운 허강의 <만천명월>은 순천만정원의 물 위를 무대로 삼아 바람과 물의 흐름 등 자연현상과 함께 만들어지는 작업으로, 이들 역시 실낙원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복낙원은 ‘낙원 시대의 이상향을 21세기의 시각으로 회복하고 재구출하는 예술’로 꾸려졌다. 잠비아 출신 작가 찰스 참바타(Charles Chambata)의 <신세계 건설을 위한 자연으로부터의 탈주>는 잘리거나 말라 죽은 나무에 인간의 형상을 더함으로써 신세계를 건설하기 위해 자연을 벗어난 사람들의 실패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배재성과 이창희가 협업하여 제작한 <쇠똥구리의 일상>은 철근 조각으로 쇠똥구리가 되어가는 과정을 거대한 스케일로 보여줌으로써 아이들의 포토존 역할을 톡톡히 했다. 순천만 지역 인근의 작가들의 작품도 다수 선보였다. 여수 출신 오태원 작가의 <제로그래비티 빅드롭스>는 하늘에 떠 있는 물방울을 형상화한 것인데, 기술적 측면에서 참여한 해외작가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순천 출신의 배은하 작가는 탄생의 신비를 직접 체험해 봄으로써 스스로의 근원을 생각해 보게 하는 <탄생>을 순천만정원의 푸른 잔디 위에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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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시걸 <Suncheon Weave> 신문지, 나무 225×700×6cm 2016

낙원유람의 마지막 섹션인 ‘세계의 낙원’은 ‘세계의 현재적 낙원을 해석하는 예술’을 위한 자리로 마련됐다. 한국의 원로작가 김구림의 <음과 양 2016: 하늘거울>은 미러 스테인리스 위에 꽃으로 가득 채워진 배를 설치한 작품. 거울에 비친 이미지가 물과 하늘에 떠있는 배를 형상화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이상 세계의 낙원을 유람하는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용백은 순천만정원 한국관에 총 4점의 작품을 설치했다. 작가는 조선의 이상적 가치관이 잘 드러난 왕가의 아름다운 건축에 앉아 지금의 현실을 생각해 보았다고 한다. 현재 한국사회가 배척한 무관심한 상황들을 작품을 통해 말하고 있다. 그중 하나인 <유목하는 섬>은 미군과 한국군의 폭격 연습장으로 사용되는 섬으로, 실제 존재하지만 국내 포털사이트 지도에는 검색되지 않는 섬에 관한 작품이다.  
실내전시 ‘남도의 낙원’ 입구에는 조영아의 <기억의 껍질>이 우뚝 서 있다. 이 작업은 수년간 수집한 매미의 허물들을 엮어 제작됐다. 작가는 이 작업에 대해 “탈피한 매미의 몸은 주로 새로운 변화나 출발을 의미하지만, 나는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는 기나긴 땅 속의 기간들을 연상하며 매미를 인식하게 되었다. 사람들 가까이에 있지만 인지하지 못하고 시야에서 놓치는 현상의 발현물 같은 이 오브제는, 나에게는 체화된 함축성을 지닌 어떤 징조나 징후의 단서로 다가왔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우리에게 익숙한 자연 현상을 작품의 오브제로 끌어와 자연과 인간에 대한 낯선 시선을 제공한다. <기억의 껍질> 뒤편에 설치된 김기라×김형규의 <새로운 세계화_사상화>와 <세기의 빛_정토>는 쌍을 이루는 영상작업. 전북 남원의 실상사와 전남 해남의 미황사와 대흥사, 세 사찰에서 펼쳐지는 일상의 360도 회전 및 24시간의 타임랩스 기법으로 담아냈다. 지구를 어떻게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을지 자신들의 의견이나 생각을 종이에 적어 매다는 <낙원으로의 비행> 앞에 서자 작품을 출품한 멕시코 작가 마가리타 샤코 바흐(Margarita Chacon Bache)는 기자에게 종이와 펜을 건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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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백 <유목하는 섬> 1200×1200×900cm 2016

순천만국가정원의 너른 마당에 펼쳐지는 퍼포먼스 프로그램 ‘큰 뜰 유람’은 ‘큰 뜰’이라는 순천의 어원을 착안한 것으로, 자연과 함께 하는 풍류이자, 하나의 놀이를 표방한다. 수리남 파라마리보 출신 작가 제시 라흐만(Jessy Rahman)이 기획한 이 프로그램에서는 한국작가를 포함하여 뉴질랜드, 터키, 칠레, 크로아디아 등 총 11개국 작가들이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순천만미술제는 11월 15일부터 19일까지 순천만국제습지센터와 순천만습지에서 ‘자연과 조율’이라는 주제로 생태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했다. 총감독을 맡은 김성호는 “올해의 순천만미술제는 잃어버린 낙원의 세계로 관객을 초대한다. 낙원은 더 이상 되돌아갈 수 없는 비가역적인 이상 공간만이 아니다. 우리의 마음에,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에 낙원을 불러올 수 있다. 따라서 올해의 미술제는 실낙원이라 여겨온 ‘현재적 삶의 공간’ 속에서 낙원을 찾아가는 관객들의 ‘복낙원’의 여정에 함께 나선다”라고 이번 행사의 취지를 설명했다. 총감독의 언급대로 자연정원에 개입한 미술이 관객들에게 낙원의 세계를 가져다줄 수 있을까? 이달 18일에 막을 내릴 때까지 관객의 평가를 기다려봐야 할 것이다. / 황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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