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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정지구

2016/12/11

‘합정지구’에 가다
서교동 444-9 by 이제 작가

국어사전에서 ‘지구’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생각보다 많은 뜻을 발견하게 된다. ‘태양에서 셋째로 가까운 행성’ ‘여럿으로 나눈 땅의 한 구획’ ‘목적에 따라 특별히 지정된 지역’ 그리고 ‘사귄 지 오래된 친구’. 그래서인가? 합정 지구가 이제 겨우 두 돌을 맞는 공간이라는 게 다소 놀랍다. 훨씬 오래전부터 곁에 있던, 미술현장의 ‘오래된 친구’라고 느꼈던 것 같다. 달리 말하자면, 짧은 시간 동안 합정지구가 보여준 밀도가 상당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합정지구의 운영자인 작가 이제 역시, 다른 공간을 운영하는 여타 작가들과 비슷한 고민에서 출발했다.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작가들의 장이 축소되는 것 같고, 작품을 보여줄 기회를 수동적으로 기다리게 되는 갑갑한 상황을 느끼며 이를 능동적으로 돌파해보기 위해 여러 동료작가들의 도움을 받아 2015년 초 합정 지구를 만든 것. 그렇게 단순한 네트워크 공간을 예상하며 시작된 일이 수많은 전시를 열어가면서 새로운 동력을 얻기 시작했다. 그 사이 시대적 현상처럼 곳곳에서 생겨난 ‘신생공간’ 중의 하나로서도 네트워크가 자연스럽게 확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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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에 열린 노승표 개인전 <파울이냐 페어냐?> 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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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에 열린 박지수 기획전 <리플렉타 오브 리플렉타> 전시 전경

조만간 두 돌을 맞으며, 작가는 여러 가지로 진지한 고민을 하는 중이다. 지난 시간 동안엔 특정한 계획보다는 공간으로서의 역동적인 움직임에 몰두해 왔다면, 지금부터는 앞으로 합정지구가 보여줘야 할 성격과 역할을 재구축할 필요성을 느끼기 때문이다. 더불어 공간 운영자이자 기획자로서 보여줘야 할 공공적 책임과 동시에 작가로서의 개인적 삶과 활동 사이에서 유지해야 할 균형에 대한 여러 생각들도 더해졌다. 다양한 관계를 맺고 경험을 쌓으면서 실제 운영에 대한 감각을 키운 것과 동시에, 작가로서 새로운 질문이 많아진 것 역시 운영 과정에서 얻은 보람 중 하나다.
작가에게 지난 2년은 “공간도 생명력이 있다”는 것을 느낀 과정이었다. 공간의 생명력. 참 의미 있는 말이다. 그는 또한 그 생명력에 대한 책임감도 고민한다. 지금 당장의 활동보다도 중장기적 계획을 세우고, 공간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하려는 것. 자립 성격을 구축해나가며, 그동안 외부에 의해 붙여진 ‘신생 공간’이라는 이름을 스스로의 정체성으로 확장시킬 기회, 그리고 그 중심에 ‘여성’이라는 키워드를 두려고 한다. “지금까지의 합정지구는 지금 이곳에서 예술이 혹은 미술이 적극적으로 사회에 개입할 수 있는 통로와 기회를 마련하고, 그것을 자리잡기 위해 애써 왔다. 앞으로의 합정지구는 여성작가가 운영하는 공간에서 기대할 수 있는 부분에 조금 더 집중해서 고민해보려 한다. 말하자면, 여성이 포착할 수 있는 섬세하면서도 용감한 시선, 그리고 작가이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는 예술의 (불)가능성을 한 해의 전시를 통해 하나씩 풀어나가고 싶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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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합정지구 공사 후 참여작가들과 찍은 기념사진_강동형 권용주 권지운 김연세 김용혁 이제 장현경 홍철기. 운영자 이제는 2002년 국민대학교 회화과, 2004년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갤러리조선(2014) OCI미술관(2010)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2015년부터 합정지구를 운영하고 있다.

젊은작가와 기획자부터 중견작가에 이르는 폭넓은 전시를 선보이는 동안, 미술계는 물론 실제 합정동 인근 주민들까지 관객의 저변을 확장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지구’라는 단어의 무한한 포용력을 실제로 보여주려는 것일까. 거대하고 높은 주상복합쇼핑몰 앞에 작고 낮지만 위풍당당하게 자리한 합정지구는 분명 그들만의 구획과 특정한 영토를 넓히고 확장해가고 있다. 12월 2일부터 이현이 기획한 <백야행성>(12. 2~1. 1)전이 올해 마지막 합정지구의 불을 밝힐 예정이다. / 장승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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