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힘’을 다시 말하다!
‘예술의 힘’을 다시 말하다!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들의 검열에 저항하는 ‘실천’을 지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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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관련 문화예술인들의 서울구치소 시위 현장. 박근혜 퇴진 광화문 캠핑촌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인들이 오랏줄에 메인 박근혜 대통령 대형 조형물을 끌고 구치소 진입을 시도했다. 2016년 12월 15일 노순택 촬영.
박근혜 정부가 문화예술인들의 정치적 성향을 조사해 이들의 활동을 검열 및 탄압한 전모가 드러났다. 건국 최초로 ‘문화융성’을 국정기조로 내건 정부의 ‘파국’이 아닐 수 없다. 언론에 공개된 문체부의 2015년 대외비 문서에 따르면, 미술 문학 영화 만화 음악 방송 등 문화예술 전 분야에 걸쳐 9,473명이 정부의 ‘블랙리스트’였다. 리스트 속 인물이 신청한 지원사업 329건을 탈락시키기까지 했다. 결국 지난 1월 21일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과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블랙리스트 작성 및 관리를 주도한 혐의로 나란히 구속 수감됐다. 이 과정에서 문화예술인들의 적극적 폭로와 고발이 눈길을 끈다. 문화연대,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등 12개 문화예술단체가 지난해 12월 12일 조 전 장관, 김 전 실장, 서병수 부산시장 등 9명을 특검에 고발해 블랙리스트 수사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이들 단체는 ‘블랙리스트 소송대리인단’도 별도로 구성했다. 블랙리스트에 기재된 문화예술인 외에도 ‘세월호 참사, 5.18민주화운동, 현직 대통령을 작품에 다뤄서 문체부 혹은 산하기관으로부터 직간접적 피해를 입은 문화예술인 및 단체’를 찾고 있다. 양현미 상명대 교수는 2016년 11월 28일 《경향신문》 기고에서 임옥상의 <하나됨을 위하여>, 홍성담의 <세월오월>, 이상호 안해룡의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박근형의 공연 <소월산천> 등이 국공립문화기관 전시와 상영, 공연에서 배제되거나 극심한 방해를 받고, 민간 문화시설에서의 유통까지 좌절됐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전근대적 검열에 맞선 문화예술인들의 법적 ‘싸움’이 어떤 성과를 가져올지 주목되는 바다.
한편, 국정농단 공론화 이후 현재 13차까지 열린 광화문 촛불집회 현장에서는 문화예술인들의 시위가 살아움직이는 ‘예술’이 되고 있다. ‘박근혜 퇴진과 시민정부 구성을 위한 예술행동위원회’는 지난해 11월 4일부터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문화예술계 300여 단체 총 8,000여 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이 단체는 비정규직, 해고노동자, 일반시민과 함께 하는 ‘캠핑촌’을 결성해 다채로운 문화 이벤트를 열고 있다. 음악공연 ‘하야하콘서트’와 시국토론 ‘광장토론회’ 개최, 가상신문 《광장신문》 발행을 이어간다. 1월 11~12일 진행한 ‘블랙리스트 버스’에서는 예술인 200여 명이 서울 헌법재판소 앞에서 버스를 나눠 타고 세종시 정부종합청사 앞에 집결했다. 이들은 박근혜 조윤선 김기춘을 형상화한 조형물에 먹물을 끼얹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특히 Art 독자들의 흥미를 돋우는 장면은 역시 캠핑촌 한복판에 한시적으로 차려진 미술관과 공연장이 아닐까? 작가 신유아 노순택 이윤엽 등이 모여 작년 12월 24일 개관한 ‘궁핍현대미술광장’은 커다란 2개의 천막을 개조해 만든 전시장이다. 이름부터 로고까지 국립현대미술관을 절묘하게 패러디한 이곳은 ‘초라하고 궁색한 한국 정치의 풍경’을 그려낸다. 개관전 <내가 왜>에서 사진 조각 판화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현 시국을 기록, 개탄, 풍자한다. 1월 7일 문을 연 ‘광장극장 블랙텐트’는 연출가 이해성, 배우 지춘성, 평론가 김소연 등이 주축이다. ‘빼앗긴 극장, 이곳에 세우다’를 모토로 세월호, 위안부 문제 등 박근혜 정부가 기피해 온 사안을 주제로 한 공연을 이어간다.
엉망진창 아수라장의 시국이 일단락되어가는 상황에서 이제 예술인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광장극장 블랙텐트’의 공연 <노란 리본의 그와 그녀의 옷장>에 배우로 출연한 세월호 유가족 박유신 씨는 1월 23일 CBS라디오에서 “전에는 예술가들이 자기만족을 위해서만 활동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그들이 글 음악 노래 등 예술로써 세월호를 알려줬다”며 정부가 “그 메시지가 국민들 가슴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던 것 같다”고 했다. 실천하는 예술의 가능성을 다시 한 번 느끼는 순간이다. 예술실천이 잘못된 정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재고할 수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 채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