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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하고떨떠름한‘먹방열풍’

2017/03/07

씁쓸하고 떨떠름한 ‘먹방 열풍’
먹방 열풍을 불러온 배고픈 한국사회의 현실을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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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미감의 미각>전시 포스터

미술관에서 셰프를 만났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미각의 마감>전(2016. 12. 5~3. 19). 전시의 키워드는 ‘음식’이지만 결과물로서의 음식이 아니라 과정으로서의 음식을 보여주는 전시다. 땅에서부터 싹을 틔운 곡식이 자라서 우리의 밥상으로 오기까지 음식의 여정을 담았다. 그 안에는 생산과 소비, 유통이라는 과정과 함께 공동체라는 이름이 자리하고 있다. 전시와 더불어 셰프들과 함께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연계 프로그램까지, 미술관에서도 셰프를 만나게 되니, 셰프의 전성시대가 오긴 했나보다. 
‘식사 하셨어요?’ ‘밥은 먹고 다니니?’ 상대방에 대한 안부 인사에 ‘식사’가 자리잡고 있는 한국을 들썩이고 있는 현상이 있다. 바로 ‘먹방 열풍’이다. ‘먹는 방송’을 뜻하는 먹방에 이어 요리하는 방송 ‘쿡방’까지,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TV 채널은 늘 식사(를 보여줄) 준비가 되어있다. 한국의 먹방 열풍은 이제 국내뿐 아니라 해외 언론에서도 주목할 만큼 기이한(?) 현상이 됐다. 언젠가부터 한국의 대중문화에 깊숙이 침투하게 된 먹방, 그 이유는 무엇일까? 1차적인 이유는 사회적 지위나 학벌, 경제적 능력을 떠나 누구에게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먹는 즐거움’, 즉 음식에 대한 욕구와 쾌감을 만족시켜주기 때문일 것이다. 고단한 삶을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이 비교적 짧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먹는 것’. 비록 자신이 직접 먹는 것은 아니지만 맛깔스럽게 보이는 음식들을 먹는 모습을 보면서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끼거나 맛있는 요리나 레시피, 맛집을 알아냈다는 뿌듯함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대리만족이나 뿌듯함만으로 현재의 먹방 열풍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다양한 콘셉트의 먹방이나 쿡방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의 심리와 정서를 자극하는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유명 셰프나 요식업 대표가 나와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레시피로 그럴듯한 요리를 척척 만들어내는 것을 보고 있으면 ‘나도 할 수 있겠다’라는 자신감과 일종의 도전정신이 어렵지 않게 생긴다. N포 세대,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가 난무하는 한국사회에서 미약하게나마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실제 쿡방이 인기를 끌게 되면서 소금이나 설탕, 각종 소스 등 기본 식자재 판매량이 증가했다. 
먹방 열풍의 배경에는 아프리카TV와 같은 실시간 인터넷방송의 역할을 간과할 수 없다. 컴퓨터 모니터 앞에 음식을 차려놓고 자신의 먹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방송하는 BJ(방송자키)들이 무려 1만 5천여 명이나 된다. 시청자들은 이들과 채팅을 통해 마치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 것과 같은 유대감을 형성한다. 이러한 현상은 소위 ‘혼밥족’이라 불리는 1인 가구들이 혼자 먹는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먹방 열풍은 젊은 세대의 결핍된 욕망 분출, 1인 가구 증가로 인한 사회적 현상, 성취감이 사라진 시대에 유일하게 남은 만족감과 힐링의 방법, 일정 수준의 경제력을 갖춘 이후 단지 끼니에 대한 걱정을 넘어 ‘무엇을, 어떻게 먹을까’라는 고민으로 넘어가는 자연스러운 현상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정도를 지나치는 한국의 먹방 열풍, 단순히 음식에 대한 즐거움을 넘어 피로감마저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먹는 행위는 주변에서 벌어지는 흔한 일이지만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매우 사적인 행위다. 그런데 입을 크게 벌리고 쩝쩝거리는 소리를 내며, 송글송글 땀이 맺힌 모습으로 음식을 먹고 황홀해하는 먹방 출연자들의 모습을 보면 음식에 대한 흥분을 넘어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출연자들은 더욱 더 과도한 액션과 소리, 표정을 지으며 지금 이 음식을 먹는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호소하고 있다. 비대한 연예인들이 모여 누가 가장 많은 음식을 한입에 먹을 수 있는지 대결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음식을 먹는다기보다는 밀어 넣는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 모른다. 이들의 모습은 차라리 ‘퍼포먼스’다. 많은 대중은 그들의 모습에 환호하며 깔깔거린다. 대리만족의 차원을 넘어 가학적 탐욕, 관음증적 시선마저 느껴진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로잘리 카워드가 말한 ‘푸드 포르노’라는 용어가 딱 들어맞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푸짐하게 차려진 음식을 먹는 모습을 TV나 모니터를 통해 보면서 우리가 채우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시간에 쫓겨서, 함께 먹을 사람이 없어서, 혹은 다이어트 때문에 여유롭게 식사 한 끼도 하지 못하는 현실. 먹방을 시청하며 정서적 허기를 느끼는 이유다. / 황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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