횃불에서 촛불로展
2017 / 07 / 04
한국미술 속 ‘광장문화’
광장예술 - 횃불에서 촛불로展 6. 13~8. 6 제주도립미술관(http://jmoa.jeju.go.kr/kor/index.php/contents/show/current?seq=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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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숙 <신탐라순력-제주조점 1> 장지에 채색 54×41cm 2016
지난 1년 동안, 한국의 ‘광장’은 유난히 뜨거웠다. 수많은 촛불이 광장의 밤을 밝혔고, 예술가들의 거침없는 표현이 광장을 거리의 미술관이자 발언대로 만들었다. 광장의 역동적인 장면은 그 자체로 예술가들에게 큰 영감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광장’을 동시대 키워드로 조명한 전시가 열렸다. 제주도립미술관의 기획전 <키워드 한국미술 2017: 광장예술-횃불에서 촛불로>(6. 13~8. 6)로, 총 78인(팀) 200여 점 작품을 한자리에 모았다. 물론 광장은 사회적 정치적 역사적 문화적으로 이미 오랜 시간에 걸쳐 연구되어온 주제다. 이에 전시는 다음과 같이 ‘광장’의 의미를 설명한다. “역사적으로 광장은 권력자의 공간에서 대중을 위한, 대중에 의한 공간으로 발전해왔다. 최근에는 광화문 촛불광장에서 대중의 참여와 화합의 장을 이끌며 여론을 창출시키고 사회를 발전시키는 공론장이라는 공간적 성격을 획득했다.” 이는 사실 새롭다기보다는 지극히 보편적인 제안과 해석에 가깝게 들리지만, <광장예술>전은 ‘광장문화’를 예술 영역에서 담론화시키고자 고민한 전시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전시에는 4명의 협력 큐레이터(강성원 미술평론가, 김지혜 독립큐레이터, 김진아 문화기획자, 이원재 문화기획자, 최금수 네오룩 소장)이 함께했다. 한편, 전시 개막일에는 학술심포지엄 <광장의 예술학>이 진행됐다. ‘광장과 예술의 동행에 관한 미학적 성찰’(강성원), ‘광장의 역사: 동학에서 광화문까지’(주진오), ‘공동자원으로서의 광장의 사회학’(서영표)에 대한 발제를 통해, 전시주제에 대한 비평적 담론적 접근을 시도했다.
<광장예술>전은 광화문 광장의 열기를 미술관 안으로 직접 끌어왔다. 미술관 외관에는 연극연출가 유영봉이 광화문 현장에서 사용한 하얀 깃발이 설치되어 관람객을 맞이하고, 내부 전시장은 김경희 작가(창작그룹 노니)의 설치작품으로 시작한다. 지난 12월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광화문 이순신 동상 뒤편에 설치됐던 304개의 구명조끼가 미술관의 암실 같은 전시장에 촛불과 함께 설치된 것. 노순택 뮌 안규철 안창홍 임응식 정정엽 조습 최원준 홍섬당 등 미술가들의 작품과 더불어 집회기간 동안 광화문에서 시낭송을 벌였던 시인 김수열, 송경동의 시화 또한 전시장에 걸렸다. 광화문 광장의 전경버스에 평화의 꽃이 피어나게 했던 이강훈 디자이너의 <꽃 스티커> 2만 5,000여 장도 새로 제작돼 관람객들이 미술관 유리창 위에 직접 붙일 수 있도록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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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선 <촛불 혁명> 캔버스에 아크릴릭 227×182cm 2017
이에 더해 <광장예술>전은 ‘광장’의 의미를 최근 이슈에만 한정시키지 않고, 한국 현대사의 흐름이라는 거시적인 시각을 제시한다. 동학농민전쟁(1894)부터 만민공동회(1898), 3.1운동(1919), 제주항쟁(1947~8), 4.19혁명(1960), 서울의 봄(1980), 광주민주항쟁(1980), 6월항쟁(1987), 그리고 촛불혁명(2016~17)까지 한국 현대사 속 장면들을 다룬 다양한 세대의 작품이 대거 전시에 포함된 것. 그런데 구본주의 <갑오농민전쟁 2>(1994)의 ‘동학’을 소재로 한 조각작품을 비롯해 1980~90년대 민중미술가들의 작품이 대거 소개되면서 전시의 층이 확장되기 보단, 정작 전시가 보여주고자 한 ‘광장예술’의 의미를 더욱 모호하게 만드는 인상이다. 예술가의 시대정신이 시각적 조형적 의미적으로 어떻게 표출되기에 이를 단순히 물리적 공간성을 넘어선 ‘광장예술’이라 개념화할 수 있는지, 그 답을 오로지 관객의 해석에 맡겼다고 하기에 전시는 너무 방대하다. 전시가 제시하는 ‘광장’의 개념도 “대중을 위한, 대중에 의한 참여와 화합, 여론 창출의 공간”이라는 보편적 의미에 머물 뿐이다. “오랜 역사적 과정을 통해 발전해온 광장과 대비되는 망루, 거리 등에서 관찰되는 수평과 수직의 구조들, 정주와 이동의 매커니즘, 자치와 연대의 시스템 등 추상적인 개념까지 제시함으로써 공공영역의 매개공간인 광장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자리”라는 기획의도와 주제가 전시 자체에서 드러나지 않아 아쉽다. 예술장르야말로, ‘광장’이라는 소재를 직접적인 목소리와 은유적인 성찰이 동시에 펼쳐지는 추상적 ‘개념’으로 확장시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장예술>전은 최근 사회정치적 이슈로서 중요하게 대두된 ‘현장’의 목소리를 공공기관의 ‘전시’로 이끈 첫 번째 전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국미술의 역사적 맥락을 짚어내려는 전시가 최근 부재한 만큼, ‘광장예술’이라는 키워드를 연례기획 주제로 삼아도 좋을 듯하다. 한국의 역사 및 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한 ‘광장예술’을 연구하기 위한 첫걸음이 이제 시작됐다고 보고 싶다. / 장승연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