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이토록 황홀한 블랙》과 《빨강의 문화사》
색은 어디에나 있다. 그리고 위대하다.
《이토록 황홀한 블랙》과 《빨강의 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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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황홀한 블랙》(존 하비 지음, 윤영삼 옮김, 위즈덤하우스, 18,000원)
“나는 어디에나 있었고 지금도 어디에나 있다.” 터키소설가 오르한 파묵(Orhan Pamuk)의 대작 《내 이름은 빨강》(민음사 2004)에서 ‘빨강’색이 스스로를 소개하는 인상적인 구절이다. 전사의 칼 장식, 성을 에워싼 군대의 깃발, 만찬의 식탁보, 카펫, 미녀들의 블라우스, 과일과 석류, 싸움닭의 볏, 악마의 입, 꽃, 그리고 시체와 피, 상처, 그리고 이를 표현한 그림 위에서 빨강 자신이 수많은 장인과 견습생에 의해 가느다란 세필로 무수히 칠해졌다고 말이다. 뒤이어 빨강은 다시 되묻는다. 색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냐고 말이다. “색은 눈길의 스침, 귀머거리의 음악, 어둠 속의 한 개 단어다. (…) 나는 빨강이어서 행복하다! 나는 뜨겁고 강하다. 나는 눈에 띈다. 나는 숨기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 섬세함은 나약함이나 무기력함이 아니라 단호함과 집념을 통해 실현된다. 나는 나 자신을 밖으로 드러낸다. (…) 나는 사방에 있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색은 말 그대로 생생한 ‘존재’ 그 자체다. 심지어 우리에게 직접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만큼! 빨강의 독백에서 배어나오는 이토록 자신만만한 태도에 압도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너무나 명확하다. 색은 인류의 오랜 역사를 거치며 이루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의미와 경험과 가치를 담아왔기 때문이다. 색의 역사는 곧 미술사이며 문화사이기도 하고, 분야의 경계를 넘어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내 이름은 빨강》에서 느꼈던 색에 대한 생생한 문학적 체험과 그 인식의 전환을 보다 학술적인 시각으로 확장시켜줄 2권의 책이 올해 번역, 발간되어 이 자리에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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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의 문화사》(스파이크 버클로 지음, 이영기 옮김, 컬처룩, 22,000원)
스파이크 버클로(Spike Bucklow)가 지은 《빨강의 문화사: 동굴 벽화에서 디지털까지》(컬처룩 2017)는 열정과 수난, 삶과 죽음, 빛과 어둠을 닮은 ‘빨강’의 이야기를 한데 풀어놓은 책이다. “유독 다른 색들보다 훨씬 강한 감정, 혹은 열정, 에너지를 환기시키는 빨강의 특징이야말로 인간과 빨강이 깊은 관계를 맺어온 어떤 흔적이 아닐까” 하는 질문으로부터 이 책은 시작됐다. 버클로는 신화 종교 과학 언어학 고고학 인류학 미술 등 분야의 구분 없이 다각적이고 입체적으로 빨강의 근원을 추적한다. 예를 들어 빨간색을 얻는 질 좋은 천연염료인 코치닐이 스페인이 정복한 신대륙에서 대량으로 생산되자 이를 차지하기 위한 쟁탈전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역사적 과정에 대해서, 또한 루주는 언제부터 어떤 경로를 통해 여성들의 주요한 화장품이 되었는지, ‘철학자의 돌’이 빨간색을 띠고 있다고 믿었던 연금술사들이 이를 얻기 위해 어떤 노고를 마다하지 않았는지, 빨강이 만물을 이루는 원소인 흙과 불, 그리고 인체의 핵심인 피와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이 방대한 여정을 거치며 저자는 빨강이란 열정과 수난(피의 속성), 삶과 죽음(흙의 속성), 빛과 어둠(불의 속성)을 모두 내포하고 있는 ‘모순적인 색’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스파이크 버클로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예술사 박사 학위를 받은 후 회화 복원 전문가 과정을 마쳤다. 현재 케임브리지대학 피츠윌리엄박물관 산하 해밀턴커연구소의 수석연구원이다.
한편 다음과 같은 질문에서 시작하는 또 하나의 책이 있다. 당신은 검은색도 ‘색’이라고 생각하는가? 《이토록 황홀한 블랙: 세속과 신성의 두 얼굴, 검은색에 대하여》(위즈덤하우스 2017)이다. 검은색의 방대한 흐름을 좇은 저자 존 하비(John Harvey)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최고문학박사로, 케임브리지대학 엠마누엘컬리지 종신 석학교수이자 소설가, 비평가로도 활동 중이다. 그는 완전한 색으로 정의될 수 없는 모호한 특성으로 인해 검은색은 시대와 문화의 맥락 속에서 다양한 도구이자 상징으로 활용되어왔다고 주장한다. 15세기 부르고뉴 궁정의 검은색은 왕권을 상징했고, 20세기 샤넬의 리틀블랙드레스에 사용된 검은색은 세련미의 극치로 해석된다는 것. 한편 유럽의 백인들이 아프리카 흑인들을 노예로 전락시키는 과정에서 어떻게 검은색의 부정적 연상을 활용했는지를 지적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카시미르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을 비롯해 카라바조 렘브란트 달리 등 대가들이 펼친 ‘검은색의 미술사’ 또한 책 안에 펼쳐진다.
흥미롭게도 두 책은 묘하게 같은 결론을 도달하고 있는 듯하다. 하나의 색은 결코 어떤 하나의 명제로 정의내릴 수 없다는 것. 이는 색이야말로 개개인의 감성과 의도는 물론 시대와 관습에 따라 충분히 좌우될 수 있는 논리 이상의 존재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색이 ‘인류의 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라는 두 저자의 공통된 전제에 대해서는 다소 숙연해질 필요가 있다. 아니, 그 이상의 수식어가 필요할지 모른다. 인류의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고유의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역사적 정리가 시급한 하나의 연구적 과제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