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고을’의 미디어 축제
2019 / 07 / 15
미디어아트 변화의 지표를 확인하는 <ISEA 2019>(6. 22~28)가 광주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렸다. / 신 은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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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랩&노스 비주얼&우디 보넨 <딥 스페이스 뮤직> 실시간 시청각 퍼포먼스 32분 2019_큰 화면에서 유동하는 기하학적 그래픽 비디오와 오디오가 결합한 퍼포먼스.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존 케이지 등 현대음악의 거장들이 작곡한 음악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시청각화했다.
인터넷과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한 예술이 본격적으로 미술사의 범주에 진입한 지 30년이 되어 가는 시점을 맞이하여 세계 곳곳에서 다채로운 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역사와 규모를 자랑하는 <ISEA 2019(국제전자예술심포지엄, International Symposium of Electric Art 2019)>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개최되었다. ‘빛고을’ 광주에서 열리는 올해 <ISEA>는 ‘영원한 빛’이라는 의미의 ‘룩스 아테나(Lux Aeterna)’라는 주제로 국내 유일의 미디어아트 기관인 아트센터나비의 노소영 관장 총괄하에 7일간 64개 세션, 178개의 연구 내용을 발표하는 대규모 일정을 감행했다. 특별전으로는 인터렉티브, 블록체인, 인공지능을 활용한 100여 점의 작품들을 총망라하여 전시한다. 특히 전당의 극장에서 진행된 연계 퍼포먼스는 기존의 미술관에서 시설 문제로 취약할 수밖에 없었던 오디오와 비디오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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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톤 <인 더 그레이> VR 영상, 컴퓨터, 오큘러스 리프트, 프로젝터, 스피커 가변설치 6분_인공지능이 인간을 묘사하기 위해 인간의 꿈을 분석하며, 기계의 오류(Error)와 인간성(Humanity)를 고찰하는 VR 영화다.
인터렉티브나 멀티 프로젝션, 혹은 기계적 설치작품이 주를 이루던 미디어아트 전시에서 크게 진일보한 작품 구성이 이목을 끌었으며 대표적으로 빌 본의 로봇 퍼포먼스와 이이남의 드론 퍼포먼스 그리고 모리스 베나윤의 블록체인 작품과 룸톤의 인공지능 기술이 접목된 작품이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기존 체험의 형태에 그치던 VR 작품의 변화도 돋보였다. 특히 타마라 쇼가올로의 <Another Dream>은 이집트 출신 퀴어 작가가 유럽에서 느끼는 인종과 젠더의 이슈를 서사적으로 풀어낸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ISEA>와 동시에 개최된 아시아문화전당의 연례 행사인 ACT페스티벌 역시 전시와 연계 퍼포먼스에서 기대 이상의 호응을 유도함으로써 ISEA와 함께 상생했다. 다만 두 행사의 성격뿐 아니라 작품의 매체나 작가의 구성까지 너무 비슷한 데다, 키노트 스피커와 메인 전시를 제외한 학술 심포지엄과 공모전 코너에 대한 명확한 일정 안내와 소개가 부족하여 자세한 정보 없이 행사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아쉬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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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본 <코파카바나 머신 섹스> 로보틱 퍼포먼스 30분 2018_몬트리올 기반의 작가 빌 본의 할로겐, LED 조명으로 무장한 뮤지컬 로봇 퍼포먼스. 총 9개의 로봇들은 유혹의 몸짓을 주고받으며 디스코 테크노 앰비언트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맞춰 쇼를 선보인다.
이번 심포지엄은 <ISEA>와 아트센터나비가 그 활동을 시작한 지 약 20년이 되는 시점에 이를 기념하고 그간 미디어아트의 변화된 지표를 가늠해 보는 의미 있는 행사다. 2007년 <P.Art.y(People, Art, Technology)>와 2010년 <인천국제디지털아트페스티벌(INDAF)> 이후 뚜렷한 대외 활동이 없었던 아트센터나비의 야심찬 기획으로 세간의 기대를 모았다. 한때 호황을 누리던 미디어아트 작품들은 이제 매체 특정적 주제의 전시가 아닌 이상 주요 전시공간이나 기관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이와 같은 장르의 예술은 인큐베이팅 프로그램과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지속 가능한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를 선도하던 기관이 운영의 고삐를 늦춘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부디 이번 페스티벌이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미디어아트 씬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아트센터나비가 재도약할 수 있는 발판으로 이어져 향후 기존의 참신하고 세련된 활동을 통해 국내외 예술계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모습으로 돌아오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