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우리는모두‘광대’다

2019/11/10

광대에서 광인으로 변해 가는 조커. 영화 속 그의 웃는 얼굴은 현실 세계의 시위 군중의 얼굴로 옮겨 온다. / 조현대 기자

https://cdn.sanity.io/images/m65sjp4q/production/ebb4daa8694783631a4c87ec89bd6b0971271d39-500x729.jpg

토드필립스(ToddPhillips)<조커>포스터

예술사에 있어 광기는 오랫동안 중요하게 다뤄져 왔던 화두 중 하나다. 플라톤은 광기를 예술을 창조할 수 있는 비이성적 감정으로 정의하며 후대 미학의 토대를 마련했고, 이를 바탕으로 17세기 계몽주의 시기의 서구 사회가 합리적 세계관을 정립해 나갔다. 신과 직접 연결되었던 중세를 지나 인간 이성 중심의 세계로 재편되어 가는 와중에 ‘감정 조절과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고 충동적 행동을 저질러 기어이 합의된 사회적 규칙을 거스르는’ 미치광이들은 사회 외부로 추방되거나, 통제 가능한 제도와 공간 속에 격리된다.

https://cdn.sanity.io/images/m65sjp4q/production/4148c368dac3707884aed6f5b7c2c66308aa9e3a-500x377.jpg

<조커>스틸컷2019_토드필립스(ToddPhillips).DC코믹스의가장유명한빌런조커의탄생기를그렸다.미국배우호아킨피닉스(Joaquin Phoenix)가살인을반복하며악당이되어가는주인공아서플렉역을,로버트니로(RobertDeNiro)가유명코미디TV쇼호스트머레이프랭클린역을맡았다.제76회베니스영화제황금사자상을수상했다.

영화 <조커(Jocker)>는 도무지 사람들을 웃길 줄 모르는 광대 아서 플렉이 점차 광기에 물들며 고담시의 수퍼 빌런 ‘조커’로 변해 가는 과정을 그린다. 영화는 아서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우연한 만남과 사건의 연속을 통해 서사를 전개시킨다. 각각의 사건은 아서의 심리를 요동치게 만드는 분기점으로 작동한다. 그가 처한 상황을 점점 극단으로 몰아가는 일련의 사건들이 벌어지는 주요한 무대는 바로 ‘병원’이다. 영화 전반부, 아서는 소년 무리에 의해 집단 린치를 당하고 동료 광대로부터 권총을 건네받고, 하필 이 권총을 떨어트리고 마는 곳이 광대 춤을 추며 공연 중이던 아동 병동이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그가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곳도, 자신의 출생에 대한 비밀을 알아 버린 후 입원 중인 모친을 질식시켜 살해하는 장소도 병원이다.
미셸 푸코는 자신의 박사학위논문 <광기의 역사(Histoirede la folie à l’âge classique)>에서 합리적 사고와 행동의 표준에 미치지 못해 비정상 혹은 광인으로 지목된 사람들을 격리 수용했던 요양 시설, 즉 정신병원이 근대성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억압의 장치였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19세기까지 감금되어 왔던 광기는 정신분석학의 태동과 함께 당대의 인간과 사회를 파악하게끔 하는 이론적 틀로 재등장한다. 특히 펠릭스 과타리는 정신분열적 의식과 행위를 통해 사회적 약자를 주변부로 끊임없이 밀어내는 자본주의를 멈출 수 있는 특별한 주체로 광인을 내세우며, 이들에 대한 인식을 전환시킨다.

https://cdn.sanity.io/images/m65sjp4q/production/eb16e5c77f272482fa10384c589bc11f53cc6ca7-500x316.jpg

<조커>스틸컷2019

영화에서도 아서가 월스트리트 3인방을 총으로 쏴 죽인 후 살인을 반복하며 광기를 더해갈수록, 도시 내 부유층과 이를 비호하는 정치권에 반발하는 시위의 규모와 강도가 점증한다. 그러던 중 아서가 선망해 마지않았지만, 끝내 자신을 조롱거리로 만들었던 유명 코미디 TV 쇼 ‘머레이쇼’에 섭외되고, 그 곳에서 자신과 자신의 행적에 대한 대중의 관심의 정점을 찍기 위한 자살을 계획한다. 생방송 도중 그는 자신의 살인 행각을 자백한 후 자신을 비난하는 쇼 호스트 머레이의 머리에 총구를 겨눈다. 그렇게 그는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는 광대에서 미치광이 ‘조커’로 거듭난다. 현장에서 즉시 체포된 조커는 그를 추종하는 시위대에 의해 구출되지만, 그가 다시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병원에 감금된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일각에서는 영화 <조커>를 두고 반사회적 충동을 미화하며, 이를 부추겨 혼란을 가져오지 않을까 염려하는 시선을 내비친다. 염려되는 충동이란 결국 기존의 사회를 유지하는 질서, 다시 말해 이미 공고화한 권력 체계의 수호 전략을 파기하려는 이들을 향한 것이 아닐까? 한편 영화 속 조커를 구출한 시위대가 아닌, 실제 세계 속 시위 군중이 조커 가면을 쓰고 나타나기 시작했다.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홍콩에서, 칠레 산티아고에서 수많은 조커들이 출몰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부당한 정치 권력과 경제 체제로부터 소외, 방치되어 왔던 산물이다. 그들은 외치고 있다. “우리는 모두 광대다.”

가나자와21세기미술관(2024.11.01~)
[만료]고흥군청(2024.11.01~2025.01.08)
[만료]한솔제지(2024.11.13~2025.01.08)
아트프라이스(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