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비평해드립니다”
2020 / 02 / 13
기계비평가 이영준이 <비평 마라톤>을 열었다. 의뢰인이 요청하는 무엇이든 비평해주는 행사다. / 이 영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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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마라톤: 무엇이든 비평해드립니다>에서 비평을 진행 중인 이영준
<비평 마라톤>(1. 6~1. 11 복합문화공간빌라해밀톤)은 5일 동안 아침부터 밤까지 사람들이 들고 오는 것은 무엇이든지 비평해준다는 무모한 프로젝트였다. 이런 무모한 계획의 근저에는 2000년대 초반부터 ‘이미지비평’이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 모든 이미지와, 나아가 모든 현상에는 의미가 있고 그 의미들은 비평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나의 생각이 깔려 있었다. 또한 2006년 이후로는 ‘기계비평’이라는 직함을 만들어 이 세상 모든 기계들의 의미를 비평적으로 해석해보자는 의도도 같이 섞여 있다. 결국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총 90명을 위한 비평을 해줬는데 그들이 들고 온 것들은 예술작품에서부터 일상적 사물, 기계 사물 등 실로 다양했다.
사실 그간 수많은 평론 요청을 거절해온 나로서는 시간을 정해놓고 그 사이에 가져오는 것이면 무엇이든 비평해준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간 평론 요청을 거절한 가장 큰 이유가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짧다는 것이었는데 이번의 <비평 마라톤>에서 한 사람당 30분씩 이야기를 나눈 다음 글을 써줬다는 것은 더 앞뒤가 안 맞는 일이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간 내가 거절한 원고 요청은 다 재미없고 비생산적인 틀 속에 갇힌 것들이었다. 잡지에 매달 형식적으로 나가는 전시 리뷰,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의례적인 작가-비평가 매칭 프로그램, 전시 도록에 실릴 주례사 같은 글들이 그런 재미없는 비평의 형태였고, 그런 형식을 답습하기는 싫었다. 나는 식어빠진 음식에 올릴 고명 같은 평론을 쓰고 싶지 않다. 비평가로서 내가 제일 신경 쓰는 것이 새로운 비평의 형식과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비평 마라톤>은 어떤 제도적인 틀과도 상관없이 나와 상대가 아무런 선입견 없이 1대1로 만나는 자리였다. 누가 무엇을 들고 올 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예측 불가능의 생생함을 마주 대하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에서 내가 기대한 바였다. 비평을 부탁받은 사물은 머리카락, 당근, 마들렌 과자, 봉제 인형 등 다양했다. 가장 아쉬웠던 점은 기계 사물이 제일 적었다는 것이다. 옛날 핸드폰과 1953년산 초창기 트랜지스터, 장난감 핫휠 미니카 정도였다. 아직 ‘기계비평’이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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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복간된 『기계비평』(워크룸프레스)에 삽입된 부산 자성대 부두 풍경. 컨테이너를 배에 싣고 내리는 초대형 갠트리 크레인(Gantry crane)과 조종 기사들을 촬영했다.
비평의 대상 영역에는 아무런 한정도 두지 않았지만 제발 작품만은 들고 오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작품에는 창작자의 많은 고민과 노력이 들어가 있고, 그것을 비평하려면 고민과 노력 사이의 좁고 꼬불꼬불한 골목을 따라 들어가야 하는데 그 많은 사람들의 골목을 다 따라 들어갔다가 나온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겨운 일이라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미지비평의 방법을 따라, 예술작품에 따라다니는 아우라나 권위 같은 것은 인정하지 않고 하나의 사물이나 이미지로만 다뤘다. 그래도 확실한 것은 많은 예술가들이 비평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그들이 생각하는 비평의 효능이나 힘이 비평가가 생각하는 것과 다를 수는 있으나, 그럼에도 비평을 받는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새로운 대화의 형식으로서 의미가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평 마라톤>의 성과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비평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짧고 작으나마 비평의 세례를 받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나머지 하나는, 평소에 나 자신에게도 예상치 못한 물건을 접하면서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다음의 글이 그런 경우다. “토미는 선반에 놓인 채 일주일에 한두 번만 눈길을 받는 외로운 장난감 기차다. 실제의 철도 차량은 정비를 위해서건 승객을 위해서건 많은 눈길을 받는다. 세밀하고 비싼 모형 기차도 엄청난 구경거리가 되어 많은 눈길을 받는다. 그러나 저급하고 조야하게 만들어진 싸구려 장난감 기차 토미는 주인의 눈길을 거의 받지 못한다. 토미는 버림받은 기차지만 기계와 인간의 눈길이라는 것이 꽤 복잡한 관계로 얽혀 있음을 알려주는 매우 의미 있는 기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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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비평』에 삽입된 이영준의 어린 시절 모습. 그는 처음 경험한 육중한 비행기의 위용과 굉음에 동경과 공포를 함께 느꼈다고 회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