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을 향한 몸짓
2020 / 07 / 21
전시 <너머의 여정>은 미술, 퍼포먼스, 디자인, 음악을 총체적으로 활용해 ‘시간성’을 환기한다. / 홍 남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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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의 여정> 퍼포먼스 장면
서울시립미술관 SeMA벙커에서 진행한 <너머의 여정>(6. 2~20)은 시각예술가 8인의 작품과 공연예술가 8인의 퍼포먼스로 구성된 전시다. 영문 제목은 <The Journey of Eternity>. 영원성을 구하는 여정이란 일견 거대 서사와 담론을 논하는 전시로 이해된다. 영원성에 다가가는 시도는 각각의 우주만큼 다양하고 궁극적으로 포획되기 어려운 주제다. 이 전시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그 여정은 무엇일까.
전시를 기획한 더 그레잇 커미션(대표 전민경) 콜렉티브는 그간 현대미술뿐만 아니라 음악, 무용, 연극에 이르는 복합 장르 퍼포먼스와 ‘라이브 전시’라는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전개해왔다. 이번 전시도 앞서 행해온 예술적 수행을 실천하고 있다. 특히 시각예술 작가들의 신작과 50여 분에 이르는 퍼포먼스, 음악, 공간 디자인, 연출까지 다양한 예술을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이 전시는 현실과 허구의 시간이 공존하는 ‘조형적 상상의 공간’을 상정하고 이를 시간의 구조, 흐름, 연합, 회고라는 네 챕터로 나누어 영원성을 구체화한다. 이 전시에 초대된 작가들은 시간의 개념을 조형적으로 풀어내는데, 손경화는 자신이 경험한 도시의 풍경이 시간에 따라 변화해 나가는 구조를 보여주고, 곽이브는 삶과 시간의 유한성을 한석봉의 시구가 쓰인 병풍과 패브릭으로 재해석한다. 잡지에 실린 사건 사고, 자연의 풍경을 촬영하고 이를 중첩, 재배치하는 배준현은 어딘가 익숙하지만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미지의 공간을, 송민규는 비행기나 인공위성의 궤적과 시간을 추상적으로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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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의 여정> 퍼포먼스 장면
이와 더불어 전시 기간 동안 계획된 정기 공연에서는 퍼포머들이 전시장 전체를 무대 삼아 솔로, 듀엣 그리고 그룹을 이루어 퍼포먼스를 펼친다. 시각예술 작가들의 작업에서 영감을 받아 안무를 구성하고, 작품의 질료적 소재와 색채를 반영한 소품을 활용해 시간과 영원성의 개념을 몸으로 해석한다. 이 추상적인 움직임은 중간 중간 뿌려지는 향, 흘러나오는 음악과 함께 관객의 오감을 자극한다. 전통적인 디스플레이 방식이 아니라 블라인드를 이용한 느슨한 공간 구획, 바닥 혹은 비스듬히 설치된 작품,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조명은 퍼포머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작품과 공간에 개입하며 이 사이를 연결하도록 했다.
전시가 진행된 SeMA벙커는 원래 1970년대 군사 정권 시기에 만들어졌다. 이 잊힌 공간의 존재는 2005년 여의도 버스 환승 센터 공사 중 우연히 발견되었고, 이후 서울시립미술관의 복합문화공간으로 개방됐다. 수십 대의 버스와 수백 명의 사람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지상 2.2m 아래, 천장, 바닥, 벽 모두 50cm 두께의 콘크리트로 지은 지하 벙커가 있다. 지상과 지하를 명백히 구분한 공간, 보통의 시간이 멈춘 듯한 공기의 흐름, 차단된 시공간에서 느껴지는 일시적인 영원. 이 자체가 시간의 상대성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장치이자 기획자가 말하는 현실과 허구의 시간이 공존하는 장소성이다.
기획자 전민경은 “공간 예술인 전시와 시간 예술인 공연을 통해 현실 너머의 감각과 감정에 몰입하고 기억을 회고하는 전시”를 목표했다. 관객이 공간에 잠기고, 비물질적 요소들을 직접 느낌으로써 감각의 확장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 말이다. 아쉽게도 코로나 사태로 현장 퍼포먼스가 아닌, 인터넷 ‘라이브’ 방송만으로 관객을 만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 장면이야말로 팬데믹 시대, 변하지 않을 오늘의 시간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