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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인듯,조각아닌,조각같은

2020/10/05

2020창원조각비엔날레(9. 17~11. 11)가 창원 용지공원과 성산아트홀에서 열렸다. 올해로 5회째를 맞는 행사의 주제는 ‘비조각-가볍거나, 유연하거나’. 김성호 감독의 총괄하에 본전시 2개와 특별전 2개로 구성되었다. 견고한 조각의 전통에서 벗어난 총 34개국 86명(팀)이 다양한 재료와 표현으로 동시대조각의 새로운 일면을 제시한다. 한국 전위조각가 이승택의 작업 세계를 회고하고, 아시아의 새로운 미디어 조각을 조명하는 특별전도 마련됐다. / 조현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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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마르<결합:평화를위해함께앉기>2020

한국 근대조각의 선구자 김종영과 추상조각의 거장 문신을 배출한 창원. 이곳에서 제5회 2020창원조각비엔날레가 열렸다. 2010년 문신국제조각심포지엄으로 출범한 이래 2012년 비엔날레로 전환, 격년제로 꾸준히 개최돼왔다. 이번 행사는 다수의 국제전을 기획한 미술평론가 김성호가 총감독을 맡았다. 34개국 86명(팀)의 작가가 참여해 각각 2개의 본전시와 특별전을 알차게 꾸렸다.
2020창원조각비엔날레의 주제는 ‘비조각-가볍거나, 유연하거나’. 핵심 주제어 ‘비조각(non-sculpture)’은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가 비풍경, 비건축으로 조각의 경계를 해체한 개념을 김 감독이 변용했다. 동시에 한국 전위조각가 이승택의 ‘비조각’적 실험 정신을 계승하고, 서구 물질문명을 반성하는 동양적 ‘비물질’의 미학을 담으려는 의도도 있다. 견고한 물질로서의 조각에서 벗어나 ‘가볍고 유연한’ 형식과 내용으로 확장하는 동시대조각의 자기모순적 면모를 조명하려는 기획이다.
본전시1 <비조각으로부터(From Non-sculpture)>는 용지공원 일대에 대형 조각을 듬성듬성 펼쳐낸 섹션이다. 정해진 동선이 없는 네트워크형 공간으로 연출되었다. 한껏 부풀어 오른 풍선껌 모양의 <버블 껌 인 창원>은 룩셈부르크 작가 시몬 데커(Simone Decker)의 작품이다. 신축성 있는 재료로 기념비적 공공조각의 고정적, 완성적 형태에 대항한다. 남아공 출신의 스트라이듬 반 데르메아브(Strijdom Van Der Merwe)의 <지구 매듭(자연적 압축지구. 발견적 오브제.)>는 지름 1.8m에 달하는 자연석 조각이다. 태곳적 지구를 연상시키며 “인간은 자연이라는 예술의 일부”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명호는 대형 캔버스를 나무 뒤에 설치하고 촬영하는 사진작업을 지속해왔다. 이번 비엔날레 출품작 <나무 그리고 색_창원 #1>은 흰 캔버스를 벗어던지고 창원의 다채로운 풍경과 색을 반영하는 홀로그램 철판을 배경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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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호<나무그리고색_창원#1>철판,홀로그램,우레탄혼합재료480×480×14cm2020

본전시2 <비조각으로(To Non-sculpture)>는 성산아트홀 1, 2층에 마련되었다. 총 7개 섹션의 전시는 ‘자연-환경-우주-인간-테크놀로지’라는 내러티브에 따라 전개된다. 우선 한국 작가의 출품작을 살펴보자. 1층 중앙홀에는 백남준의 <창원의 꽃>이 당당히 피어 있다. 꽃을 형상한 93대의 TV는 샬롯 무어만(Charlotte Moorman)과 협업한 영상 <살아 있는 조각을 위한 TV 브라>를 송출한다. 살아 있는 조각으로서 무어만, 그가 착용한 TV 브라, 설치된 TV 조각 등 3중 구조로 백남준이 시도한 조각과 비조각의 경계 해체를 되새긴다. <번역된 도자기> 시리즈로 국제적인 활동을 이어가는 이수경도 참여했다. 도자기 파편을 금으로 접합해 전통 도자의 역사와 가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연기백은 구(舊) 진해, 마산 지역의 적산 가옥과 1970~80년대 일반 주택의 벽지에 주목해 거주민의 삶을 미시적으로 살핀다. 진해 여좌동 출신 조경재는 자신이 살았던 집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설치작품 <여좌본부>를 선보였다. 관객은 좁은 통로와 문, 비틀거리는 계단을 오가며 불완전한 유년기의 기억을 곱씹는다.
폴란드 출신의 카리나 스미글라-보빈스키(Karina Smigla-Bobinski)는 관객 참여형 공간 설치작품 <ADA>를 제작했다. 목탄이 알알이 박힌 커다란 투명 공이 전시 공간을 떠다니며 벽에 흔적을 남긴다. 가벼운 헬륨 가스로 채워져 통제가 불가능한 공은 예측할 수 없는 공간 드로잉을 완성해 나간다. 이탈리아 작가 에스더 스토커(Esther Stocker)는 정방형 그리드를 인쇄한 종이를 구긴 조각 <무제>를 선보였다. 엄격한 규칙과 질서가 강요되는 시스템을 물질의 취약성으로 교란하려는 시도다. 베이징을 활동 기반으로 둔 리우수이양(Liu Shui-Yang)의 <철>은 녹아내린 철근 더미 형상이다. 자본주의 욕망이 견고하게 쌓아올린 물질문명의 원죄를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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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1<이승택,한국의비조각>전시전경

예식장으로 운영되던 성산아트홀 지하 1층은 이번 비엔날레를 위해 리모델링되었다. 여기에 꾸려진 특별전1은 전위조각가 이승택 회고전 <이승택, 한국의 비조각>. 그는 부정과 반항의 정신으로 비조각 실험을 개진해왔다. 새끼줄, 헝겊, 돌멩이 등 자연의 산물뿐 아니라 바람, 공기, 불과 같은 비물질적 요소를 끌어들인 대표작 약 60점과 아카이브로 작업 세계 전반을 제시한다. 특별전2 <아시아 청년 미디어 조각>은 협력 큐레이터 박소희, 조수혜, 고은빈이 기획하고 20~45세의 작가 13명(팀)이 참여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 기반의 매체가 조각과 결합했을 때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디지털 가상 세계’라는 비물질 환경이 ‘비조각’ 개념에 가져다줄 무한 확장성을 탐구하는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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