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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공예의화려한변신

금속공예가 김승희가 옻칠 채화 기법으로 신작 회화를 제작했다. / 김해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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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나의풍경2020-7>채색옻칠,알루미늄,황동85×85×10cm

한국 현대공예의 포문을 연 1세대 금속공예가 김승희. 그는 작가로서 발을 뗀 1970년대 이래 금속공예로 ‘전통의 현대화’를 꾀해왔다. 다양한 공예 기법을 섭렵해 변화를 거듭한 그가 이번에는 전통 옻칠을 배워 신작을 제작했다. 두가헌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너와 나의 풍경 2020>(11. 12~29)은 새로운 시도를 발표하는 자리. 신작 7점과 더불어 초기에 제작한 금속 화병, 브로치, 옥함, 설치작업 등 총 18점을 한데 모아 작은 회고전을 꾸렸다. 
현재 작가는 우리 전통의 적극 재조명을 꾀하지만, 사실 그 시작에는 미국 유학이 있었다. 서울대 응용미술과를 졸업한 직후 그는 미국으로 날아가 날렵하고 매끈하게 금속 표면을 다듬는 ‘판금’ 기술을 익혀 돌아왔다. 하지만 귀국한 김승희의 눈을 끈 대상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전통 기법. 뿌리 깊은 역사만큼 한국 공예사에서 길어올릴 요소가 도처에 널렸다는 지론이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와보니 한국 전통 공예에 놀라운 점이 많았다. 숟가락, 젓가락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금부 기법을 배우려 일명 ‘수저 아저씨’를 찾아가기도 했다. 얇은 식기를 구석구석 매만지는 장인이었다. 우리나라 공예에는 소박하고 진실한 느낌이 묻어 있다. 세계화할 만한 공예 기법이 많다. 사람들이 ‘우리 것’에 관심이 적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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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나의풍경2020-4>채색옻칠,알루미늄,황동60×60×7cm

‘전통’이 작품 세계를 진일보시킨 주제적 트리거였다면, 더 나아가 김승희는 쓰임새 중심의 공예를 심미적인 순수미술로 끌어올린다. 작은 공예품을 대형 설치작업으로 확대했고, 금속을 평면에 붙이고 조립해 알록달록 회화로 만들었다. 이번 신작 <너와 나의 풍경> 시리즈도 ‘금속 회화’의 연장선. 2019년 말부터 전통 옻칠 명장 최종관을 직접 사사한 결과물이다. 작가는 명장의 지도 아래 두부, 찹쌀, 진흙으로 안료 만드는 법부터 삼베에 풀을 먹이고 옻칠하는 방법 등을 배워왔다. 각 면을 따로 제작하고 공들여 건조해, 색과 형태를 이리저리 조합하는 방식으로 완성했다. 옻칠을 배운 이유는 작업에 ‘색’을 더하고 싶어서라고. “금속을 다루다보니 색채의 한계를 느꼈다. 반짝거리는 질감에 대비되는 무광의 색을 원했다. 특히 옻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색이 계속 바뀐다. 며칠 지나면 옻이 저들끼리 부딪히고 움직여 뽀얗게 밝아진다. 서서히 달라지는 그 맛이 마력적이기까지 하다.” 그의 작품에는 차디찬 금속, 울긋불긋 아름다운 색채, 질박한 텍스처가 만나 풍성한 화음을 이루고 있다. 초창기 금속공예의 강한 물성이 서정적인 색과 질감으로 번진 것이다. 
작가의 작업은 일견 점, 선, 면으로 이뤄진 기하추상화처럼 보이지만, 그곳엔 늘 그릇 모티프가 있다. 섬세하게 구부러진 얇은 금속과 채색 패널이 만나 찰랑이는 막걸리 잔, 중후한 와인 병이 되곤 한다. <너와 나의 풍경>에는 둥그런 항아리, 정겨운 막사발, 소담한 물 잔 등이 등장한다. 이 그릇들은 화병과 주전자를 뚝딱뚝딱 만들어내던 공예가의 정체성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는 누구나 사용하는 그릇에서 유별난 것 없는 개개인의 평범한 삶을 떠올렸다. 김승희에게 전통이란 양반의 뻣뻣한 태도, 수묵에 담긴 고고한 사의성이 아니라 함께 맞부딪치고 깨지며 흥을 돋우고 정을 나누는 오래된 그릇이다. 
작가가 그린 우리네 풍경, 여기서 ‘너와 나’라는 인칭대명사는 무수한 변주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금속과 옻칠, 유광과 무광, 구상과 추상, 전통과 현대, 평면과 입체, 공예와 미술이 ‘너와 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 상반되는 요소가 공존하며 살아가는 정다운 풍경이다. 향후 작가는 금속공예, 옻칠 기법, 산화막 기법을 혼용한 회화작업을 시도할 예정. 앞으로 작가의 ‘너와 나’는 어디까지 더 확장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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