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Now] 브루스 나우먼展 in London
2020 / 12 / 09
날 바라보는 ‘TV 속 나’
<Bruce Nauman> 10. 7~2021. 2. 21 테이트모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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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Hundred Live and Die> 금속 기둥에 네온, 투명 유리 튜브 299.7×335.9×53.3cm 1984_작가는 네온작품으로 언어의 구조, 의미, 연상, 타이포그래피 등을 탐구했다.
브루스 나우먼은 비디오아트로 소리, 언어, 움직임을 실험한 전설적인 작가다. 그의 테이트모던 개인전이 16년 만에 다시 열렸다. 비디오는 수많은 예술가가 순간의 영감을 즉각 기록하는 매체지만, 특히 나우먼은 스튜디오에서 행한 모든 행위를 예술로 승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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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 Nature/Knows Doesn't Know 228.6×228.6×35.6cm 금속 기둥에 네온, 투명 유리 튜브 1983/1986
전시는 비디오 외에도 신체, 언어, 통제의 키워드로 조각, 사진, 네온사인 등 다양한 매체를 실험한 작품을 조망한다. <Going Around the Corner Piece with Live and Taped Monitors>(1970)는 비좁은 복도 끝에 TV 2대를 설치한 작품이다. 관객은 실시간으로 촬영, 송출되는 자신의 신체를 TV로 관찰하며 모종의 불쾌감을 느낀다. 비디오의 수행성, 자기 반영성을 드러냄과 동시에 사회적 감시의 불합리성을 상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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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hro/Socio (Rinde Spinning)> 혼합재료 가변크기 1992
<Clown Torture>(1987)는 극단에 몰린 인간의 행위와 언어를 재현하는 ‘어릿광대’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전시장을 가득 채우는 모니터와 프로젝션의 반복 재생 영상은 낯선 고립감을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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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ls, Pratfalls and Sleights of Hand (Clean Version)> 혼합재료 가변크기 1993_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보여준 손장난 마술과 라스베이거스 공연에서 본 마임의 동작을 빌려왔다. 느리게 변환된 화면과 사운드는 괴상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찬란한 색과 아우라의 ‘네온사인’ 시리즈는 수수께끼, 말장난으로 언어의 형식을 실험했다. 브루스 나우먼이 허문 미술매체의 경계는 21세기 미술의 범위를 넓혔다. / 최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