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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와사진가의'글쓰기'

2021/01/10

장파, 이재헌의 필담 그리고 황예지의 독백 / 최지혜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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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말』 (스틸이미지, 2020)

한국 동시대미술계에서 주목받는 세 작가가 두 권의 책으로 말을 걸어왔다. 작업의 주재료였던 붓과 물감, 카메라와 필름이 아니라 언어를 도구 삼아 자신의 작업 세계를 되짚어보는 시도다. ‘그림 그리기’와 ‘사진 찍기’의 과정, 예술가의 삶과 자의식을 담담한 어조로 밝혔다. 장파와 이재헌의 『화가의 말』(스틸이미지)은 필담과 편집자 이선미의 문답으로, 황예지의 『다정한 세계가 있는 것처럼』(바다출판사)은 에세이 형식을 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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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말』(스틸이미지,2020)

『화가의 말』은 2019년 플레이스막에서 열린 동명의 전시와 맞닿는다. 저술의 목표는 ‘화가’라는 근본적 의미를 자문하고, 작업 과정에서 마주한 고민에 충실히 답해보기. ‘표면과 깊이’, ‘그리는 이유’, ‘감각의 계보’ 등 총 14개 챕터로 구성됐다. 장파는 에너지 넘치는 붓질로 회화 고유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화가는 과거의 그림을 제 것으로 소화한다. 표면만 핥아 맛을 보는 것이 아니라, 씹고 삼켰다 다시 뱉어낸다.” 반면 이재헌은 실존과 미지를 하나의 캔버스에 결합하려는 열망을 화폭에 담아왔다. “정신이 깨어 있는 이라면 이 시대가 무엇으로 향하는지 모를 수가 없을 거야. 하지만 화가는 어떤 면에서 광부와 같아서 자신만의 동굴을 깊이 파 내려갈 때도 있어. (…) 어쩌면 동굴의 방향보다 깊이와 넓이가 중요할지 몰라.”라는 말로 화가의 역할에 대한 나름의 답을 내놓는다. 편집자 이선미는 이들의 대화를 먼저 이해하고 정리했다. 작가 내부의 고민을 외부 세계로 연결해 확장하는 가교 역할을 도맡았다.
『화가의 말』에서 이야기하는 ‘회화’란 무엇일까? 책은 “이루지 못할 것이 마침내 시도될 수 있는 때까지 올 것으로 믿고 기다리는 예술가의 확신”이라 답한다. 작가는 작업으로 말해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다. 하지만 작품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자 언어의 힘을 빌리기도 한다. 전시장에서 작가의 육성을 듣는 것도 흔한 일이 되었다. 그럼에도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무수한 미술이론에서 빠져나와 삶의 빈틈을 담아내는 회화를 이해하게 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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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헌<Viewer004>캔버스에유채194×130cm2007

“이 책을 덮으면 당신은 저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된 것이에요.” 『다정한 세계가 있는 것처럼』은 황예지의 첫 사진 에세이집이다. 22편의 글, 사진, 지면 전시 <병과 악과 귀>로 구성됐다. 이 책을 만든 계기는 <앨리바바와 30인의 친구친구>(2019)다. 고(故) 이도진 디자이너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기획됐던 구독 서비스다. 당시 황예지는 고통스러웠던 가족사를 연재하면서 애써 외면해왔던 심리적 고통을 치유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황예지는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2019년 첫 개인전 <마고> (d/p)로 크게 주목받았다. 그는 가족과 여성이라는 자전적 소재로 삶의 무게를 포착해왔다. 그의 에세이는 더 이상 부끄럽지 않은 일이 된 삶의 단편으로 위로를 전한다. “선 과 형태를 담아오라는 과제로 언니의 사진을 찍어가 장황하게 설명했던 기억, ‘사진에 담은 만큼만 이야기하라’던 교수님의 말, 부끄럽게도 왈칵 터져버린 눈물, 엄마 역할을 대신했던 언니와 십 년 만에 돌아온 엄마, 두 엄마 사이에서 일어난 마찰과 저항 그리고 화해.”
소설가 정세랑은 아래와 같은 추천사를 남겼다. “아픔을 투명하게 갈아 렌즈로 만들고, 흉터를 눈금으로 세상을 재어 이 책이 쓰였다. (…) 혈관처럼 얽혀 있는 상처는 어디서부터 나의 것이고 어디서부터 공유되는 것일까?” 『다정한 세계가 있는 것처럼』은 자신의 근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한 예술가의 독백이다. 그 독백은 마냥 쓸쓸하지만은 않다. 독자의 시선을 오래 머물게 해 글, 사진, 눈 사이의 ‘다정한 세계’를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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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예지<SweetySafety>디지털피그먼트프린트71.12×109.22cm,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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