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근대 다시 읽기
2021 / 02 / 09
광저우시대미술관 동아시아 기획전 <전통의 주파수> / 김해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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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영 <섬광, 잔상, 속도와 소음의 공연> 2019 설치 전경
사람들은 무엇을 전통으로 인식하는가? 판소리와 트로트, 태평무와 지르박을 모두 전통이라 부를 수 있는가? 전통은 과거와 현재의 상호 작용으로 ‘발명된’ 인조의 개념이다. 시대의 질서에 따라 호명되기도, 혹은 은폐되기도 하는 근대의 산물 ‘전통’. 따라서 전통은 단순히 과거 자체가 아니라 현대 사회가 적극적으로 재생산하고 있는 문화 권력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아시아의 전통을 메타적으로 재점검하는 기획전 <전통의 주파수(Frequencies of Tradition)>(2020. 12. 12~2. 7 광저우시대미술관)가 개최됐다. 샌프란시스코 소재 카디스트의 수석큐레이터 김현진이 2012년부터 주도해온 ‘근대성’ 연구 기반의 전시. 이번 전시에 앞서 기획한 2019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서 내비친 역사에 대한 관심을 확장한 자리다.
<전통의 주파수>는 비엔날레 기획을 심화한 버전. 김현진이 8년여간 공들인 만큼 아시아의 복잡다단한 전통론을 포괄한 작품이 선별됐다. 특히 19세기 후반 아시아에 불어닥친 서구적 근대화의 열풍, 그 반동으로서 전통 발명을 주제의 구심점 삼았다. 근대기라는 ‘시대’를 비판적 재고에 대한 논쟁의 ‘공간’으로 상정한 것. 전시에는 한중일과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출신 아티스트, 영화감독, 시각문화 연구자 등 19명(팀)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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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다함 <향로> 설치 전경
전시는 전통의 작동 메커니즘과 전승 과정, 동시대적 영향 등 다양한 층위로 짜여 있다. 무, 공허 같은 동양 철학의 개념을 탐닉한 교토파 학자와 태평양전쟁에 참전한 가미카제를 다룬 호추니엔의 영상 <호텔 아포리아>(2020)는 아시아의 정신이 정치와 폭력의 도구로 전락한 사례를 탐구했다. 치아웨이수의 <돌과 코끼리들>(2019), 에리카 탄의 <‘잊힌’ 수직 장인>(2017~19)은 서양 제국주의가 순수, 근원, 원시로 유비한 동양의 공예와 동식물이 대상화된 상황을 담으며, 전통에 스민 식민성을 조명한다.
한편 전통의 전승은 제2차 세계대전 종식 이후, 아시아에서 급물살 탄 산업화 프로젝트로 견인됐다. 대표적 예가 바로 1960~70년대 한국 사회. 전 국토를 갈아엎을 기세로 행해진 군사 독재 정권의 산업화 정책은 비과학적이라는 이유로 전통을 박멸했다. 제주도 출신으로 덴마크에 입양된 제인 진 카이젠의 <이별의 공동체>(2019)는 산업화 과정에서 쉽게 포기된 한국 여성을 다룬 영상. 남성 중심적 아시아 현대사에서 소외된 여성을 전통과 역사의 일부로 편입한다. 동남아시아 작가들 역시 새로운 전통을 상상했다. 말레이시아 출신 사이몬 순은 <마음의 욕망>(2020)으로 동남아시아 공연 예술의 역사를 애니메이션으로 비틀었고, 싱가포르 출신 밍 윙의 공상 과학 형식의 영상 <대나무 우주선 이야기>(2019)는 무대에서 스크린으로 전환되는 광동 오페라의 역사를 다시 썼다.
뜨개질로 제작된 여다함의 <향로> (2020), 중국 고전 시가와 소상팔경을 다룬 에블린 타오 왕의 수묵화 시리즈 <우드 샤를로스의 팔경>(2020)은 전통 매체를 참조해 과거를 재해석했다. 이처럼 <전통의 주파수>는 서양의 오리엔탈리즘과 동양의 옥시덴탈리즘의 교차점인 ‘아시아 전통론’, 그곳에 담긴 혼종적 서사와 미학의 정체를 살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