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눈으로 본 한국 미술
2021 / 03 / 09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해외 사료로 한국 미술을 다시 보다 / 최지혜 기자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외국 연구자의 한국미술 연구』(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2020)
“자 입보, 호 혜원. 이조 순조 때의 인물로 풍속화에 능했다.” 무려 1915년 일본인 요시다 에이자부로가 조선의 풍속화가 혜원 신윤복에 대해 쓴 글이다. 그는 20세기 초두부터 발 빠르게 조선의 서화가 500명의 짧은 전기를 엮어 『조선서화가열전』을 냈다. 이는 외국인의 시선에서 본 한국 미술사 사료로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K-미술은 언제부터 해외에서 ‘먹힌’ 걸까?
나라 밖 외국인이 들여다본 한국 근현대미술이 한자리에 모였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서 열린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외국 연구자의 한국미술 연구>(2020. 11. 26~4. 24)는 외적 확장에 치우쳤던 과거에서 눈을 돌려 ‘밖에서 안으로’의 관점을 동원한다. 조선시대 말부터 오늘날까지 한국 미술을 연구 및 저술한 외국 연구자 17명의 삶과 연구 성과를 정리했다.
전시는 크게 두 파트로 나뉜다. 먼저 아카이브를 펼쳐 이국에서 본 한국 근현대미술의 흐름을 짚었다. 독일의 안드레아스 에카르트, 오토 큄멜, 디트리히 젝켈, 일본의 세키노 타다시, 아사카와 다쿠미&아사카와 노리타카, 야나기 무네요시, 후루카와 미카, 키다 에미코, 이나바 마이, 미국의 엘렌 프세티 코넌트, 에블린 맥큔, 케이 E. 블랙, 부르글린드 융만, 조앤기, 영국의 제인 포탈, 샬롯 홀릭이 저술한 단행본 및 번역본, 전시 자료, 잡지, 사진 등 100여 점을 총정리했다. 각 연구의 성과와 득실보다는 19~21세기를 아우르는 다국적 연구자의 인명 정보와 주요 논점을 정리하는 것에 무게를 실었다.

옥낙안, 「제2의 조국 한국이여 빛나라!」, 『신태양』(제70호, 1958)
실견하기 어려운 희귀 자료도 함께 나와 눈여겨볼 만하다. 독일의 성 베네딕도회 신부이자 한국학 연구자 안드레아스 에카르트가 최초로 한국 미술 통사를 정리한 『조선미술사』(1929)가 그 예다. 건축, 탑, 불교조각, 그림, 도자기, 수공예품 등으로 구성된 책의 목차는 건축, 미술, 공예에 대한 외국인의 문화사적 관심이 녹아 있다. 벽화 고분을 최초로 발굴하고 명명한 일본 학자 세키노 타다시의 『조선의 건축과 예술』(1941)도 나왔다. 이는 일제강점기, 일본의 제국주의적 야욕을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는 자료다. 평양에서 나고 자란 미술사학자 에블린 맥큔은 『한국의 미술』(1962)에서 한중일의 문화적 차이를 바탕으로 단군 신화부터 조선의 역사를 독립적 흐름으로 정리했다.
또한 전시는 동시대 해외 학자의 연구 결과를 함께 살펴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이방인의 시선을 제시한다. UCLA대학에서 600여 명의 한국 미술사 전공 석사를 키워낸 부르글린트 융만 교수의 『한국 문화로 가는 길』(2014), 처음 서양 문화가 한반도에 유입되던 근대기를 사건 중심으로 재구성한 샬롯 홀릭의 『19세기 이후의 한국미술』(2017)을 전시장에 배치했다. 이는 실시간으로 이뤄지고 있는 해외의 한국 미술 연구 성과다.
다음은 인터뷰 파트다.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권영필,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김홍남, 성신여자대학교 명예교수 송미숙,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이성미의 연구 경험을 육성으로 송출한다. 4인의 생생한 목소리는 외국 연구자의 시선에서 본 한국 미술이 낯설게 느껴질 관객에게 안내 지도를 그려준다. 권영필은 작품의 본질 파악을 강조했고, 김홍남은 한국 미술사에 도사린 국수주의를 경계하며 아시아 전체의 맥락에서 해석될 필요성을 과제로 던졌다. 반대로 송미숙은 미술가 개인에 대한 연구의 중요성을 말하며 한국 미술사의 공백을 지적했다. 이성미는 오늘날 한국 미술사 연구의 트렌드를 짚어 동시대적 연구 상황을 개괄했다.
전시는 한국 미술의 외연 확장, 내부 점검의 역사를 펼쳐 그 가능성을 꼼꼼히 살피려는 기획이다. 김달진 박물관장은 이번 전시의 의미를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문장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것이다”로 대신했다. 한국 미술사의 안팎을 뒤집어 그간 익숙했던 풍경을 마치 생경한 듯 다시 한번 둘러보자.